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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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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수 기업 열전] 신세계적 생활, 롯데풍 문화

신세계는 ‘박리다매’ 이마트 독주, 롯데쇼핑은 ‘고급화’ 전략으로 백화점 수성
등록 2008-10-03 15:07 수정 2020-05-03 04:25

“백화점은 ‘문화’를 팔고, 할인마트는 ‘생활’을 판다.”
백화점과 할인마트의 차이를 단순하지만 명쾌하게 드러내는 말이다. 백화점은 고객에게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고 잠재 욕구를 끌어내는 전략을 쓴다. 백화점 물건값이 비싸도 구입하게 되는 이유다. 할인점은 물건은 대량으로 구매해 ‘20년 전 가격으로 드립니다’처럼 싼값에 파는 전략을 쓴다. 이를 발판 삼아 할인마트는 사람들의 일상으로 파고들어갔다. 가족들이 주말에 함께 할인마트에서 쇼핑하는 것은 일상의 풍경이 되고 있다.

백화점과 할인점으로 대표되는 유통업계 맞수는 롯데쇼핑과 신세계다. 2007년 매출액은 신세계가 10조1028억원, 롯데쇼핑이 10조851억원, 영업이익은 신세계가 7655억원, 롯데쇼핑은 7561억원으로 엎치락뒤치락하며 유통 1위를 놓고 다투고 있다. 시가총액은 신세계가 10조원대, 롯데쇼핑 8조원대다. 백화점과 할인점 매출 규모를 놓고 보면, 롯데가 7 대 3이고, 신세계는 반대로 3 대 7 정도다.

서울 충무로 신세계백화점 본점 전경과 이마트 매장(왼쪽).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건물과 백화점 매장.

서울 충무로 신세계백화점 본점 전경과 이마트 매장(왼쪽).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건물과 백화점 매장.

영업실적·매출액서 엎치락뒤치락

애초 백화점은 신세계가 빨랐다. 1930년 국내 최초 백화점인 미쓰코시 경성지점(현 신세계 본점)을 그 출발로 삼고 있다. 미쓰코시 백화점은 그 뒤 동화백화점으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63년에 삼성그룹이 동화백화점을 인수하게 된다.

우리나라 사람이 세운 현대식 백화점은 박흥식이 서울 종로2가에 문을 연 화신백화점이다. 30년대 에스컬레이터를 갖춘 지하 1층, 지상 6층짜리 최신식 백화점을 자랑하던 화신은 80년대 무너지고 백화점의 최고 자리는 롯데쇼핑이 잇게 된다.

79년 문을 연 롯데백화점은 80년 450억원의 매출을 올려 백화점 업계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한 뒤, 30여 년 동안 국내 유통업계 강자로 군림해왔다. 신격호 회장이 지은 롯데라는 이름은 괴테의 소설 에 나오는 구원의 여인 ‘샤를로테’에서 따왔다.

롯데백화점은 91년에는 업계 최초로 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99년에는 본점 하나가 매출 1조원을 달성했다. 서울 을지로와 명동이라는 입지의 영향이 컸지만, 롯데의 끊임없는 노력도 뒤따랐다. 김만수 롯데쇼핑 이사는 “롯데백화점은 단순히 쇼핑만 하는 공간이 아니라 생활·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노력해오고 있다. 이를 위해 문화센터, 유아 휴게실, 장애인 전용시설 등 편의시설과 웨딩센터, 뷰티숍 같은 문화시설을 확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백화점은 단지 물건을 구매하는 장소를 넘어 휴식을 취하고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는 것이다. 백화점은 서울을 찾는 외국인들도 한 번쯤 찾아보는 관광명소 구실도 하고 있다.

백화점이야말로 마케팅 실험의 각축장이다. 많이 알려진 얘기지만 백화점에는 시계와 창문이 없다. 고객들이 시계나 창밖의 풍경으로 시간의 흐름을 인식하게 되면 시간에 쫓겨 서둘러 백화점을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1층 화장실이 없는 것은, 볼일이 급한 사람이 화장실만 이용하고 나가버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음악 마케팅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주말이나 세일 기간에는 고객의 회전율을 높이기 위해 빠른 템포의 댄스음악을 들려준다. 고객이 적은 평일에는 느긋하고 조용한 발라드풍 음악을 틀어준다. 매출이 안 오를 때는 슬픈 음악을 틀어 고객 마음을 공허하게 해 구매 의욕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신세계는 91년 삼성그룹에서 분리 독립했다. 당시 삼성은 반도체 등 전자사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었다. 유통 사업은 투자순위에서 한참 밀려 있었다. 백화점 부문에서 롯데에 밀리고 있던 신세계는 현대백화점이 서울 압구정 본점과 무역센터점을 세우며 치고 나오자 2위 자리마저 내주게 됐다.

다국적 공룡과의 싸움에선 모두 완승

하지만 위기는 기회의 또 다른 말이다. 신세계가 승부수를 던진 건 할인마트였다. 93년 1호점인 서울 창동점을 세웠다. ‘매일 할인판매’(Everyday Low Price)라는 미국 월마트의 슬로건에서 첫 알파벳인 ‘E’를 따와 이마트로 이름을 지었다. 처음에는 성공 가능성에 반신반의했지만 결국 대박을 터뜨렸다.

박주성 신세계 상무는 “97년 불어닥친 금융위기(IMF)도 기회가 됐다. 당시 선택과 집중을 위해 삼성전자 주식, 프라이스클럽, 신세계카드 등을 팔았고 신세계종금 등 금융업에서도 철수하며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했다”고 강조했다. 매각을 통해 들여온 돈으로 때마침 대기업들이 헐값에 내놓은 전국 알짜의 상권 터를 헐값에 사들였다. 이를 발판으로 이마트는 점포수를 확장해나간다. 2007년 말 기준으로 이마트 매장은 전국적으로 121곳에 이른다. 이마트가 쑥쑥 성장하자 롯데쇼핑도 롯데마트를 통해 공격적으로 나선다.

할인점의 진검승부는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시작됐다. 바로 다국적 유통 공룡과의 싸움이었다. 결과는 국내 업체들의 완승이었다. 2006년 4월 프랑스의 대형 유통업체인 까르푸도 이랜드에 인수됐다. 월마트 매장 16곳은 곧 이마트로 간판을 바꿔달았다. 롯데쇼핑은 까르푸 인수에 나섰으나 이마트에 밀렸다. 브랫 빅스 월마트 본사 전략담당 수석부사장은 “한국 시장의 환경상 월마트가 지향하는 수준의 성장을 달성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철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시장 전략에서 다국적 유통업체들은 국내업체에 철저히 깨졌다. 우선 국내 마트업계는 가정주부의 눈높이와 욕구에 철저히 맞추는 전략을 썼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보통 시장에 갈 때 생선·정육·야채·과일 등 신선식품을 꼭 산다. 외국계 유통업체들은 신선식품의 마진이 높지 않아 이를 외면한 채 공산품 위주의 판매를 고수했다. 반면 국내 업체들은 신선식품에 공을 들였다. 박스째로 파는 외국 유통업체들과 달리 박스를 풀어 낱개 단위로 팔기도 하고, 공장 같은 분위기가 아닌 백화점 같은 분위기의 인테리어를 꾸미기도 했다. 월마트나 까르푸는 매장 구성에서 창고처럼 물건을 천장까지 쌓아놓았지만, 한국형 할인점은 선반 형태의 시원시원한 매장 구성으로 가져갔다. 구매 상품 가운데 절반이 신선상품이고 고급스러우면서도 동선이 짧은 매장을 좋아하는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성향을 정확히 읽은 것이다.

외국 대형 유통업체들은 ‘현지화’에도 실패했다. 외국인 경영진을 고집해 국내 소비자의 욕구를 수용하는 데 걸림돌이 됐다. 의사결정이 늦었고, 자신들만의 글로벌 경영 방식을 지나치게 고수해 한국의 유통 문화와 법규 체계 등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

할인마트 경쟁에서 국내 업체들은 기선을 잡았다. 저렴한 생필품 공급은 물가를 낮추고 생산성은 높였다. 미국에선 월마트가 소비자 물가를 인하하는 효과를 일컬어 ‘월마트 효과’라고 한다. 하지만 월마트 효과의 이면에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제조업체와의 불공정 거래, 자영업자의 몰락, 월마트 노동자들에 대한 저임금 등 암울한 그림자도 포함돼 있다.

글로벌 전략 ‘올인’과 ‘병행’ 차별화

글로벌 전략에서도 두 회사는 차이를 보인다. 롯데쇼핑이 롯데마트와 백화점 동시 진출을 추진하는 데 견줘, 신세계는 할인마트 영업에 ‘올인’하고 있다.

신세계는 97년에는 할인점 최초로 해외 진출에 나서 중국 상하이에 ‘이마이더’(易買得)라는 이름으로 1호점을 열었다. 이마이더란 ‘쉽게 사고, 사면 살수록 이익이 된다’는 뜻의 이마트 중국 이름이다. 신세계는 오는 2014년까지 중국에 5천억원을 투자해 현지 이마트 점포를 100개까지 늘릴 계획이다.

롯데쇼핑은 2007년 9월 국내 백화점 업계 최초로 해외 점포 1호점인 러시아 모스크바점을 열고, 2008년 8월에는 중국 최대 번화가인 왕푸징 거리에 베이징점을 오픈했다. 또 롯데쇼핑은 2007년 12월 네덜란드계 중국 대형마트 체인인 마크로의 지분 100%를 인수했다. 마크로는 중국 베이징에 5개, 톈진에 2개점을 운영하고 있다.

유통 사업에서 한국 시장은 이젠 좁다. 두 회사는 세계를 무대로 만들어가는 새로운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다. 바로 글로벌 사업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유통 양대산맥 사령탑
신동빈 VS 정용진 자존심 대결


신동빈(53·왼쪽) 롯데그룹 부회장과 정용진(40) 신세계 부회장

신동빈(53·왼쪽) 롯데그룹 부회장과 정용진(40) 신세계 부회장

신동빈(53·왼쪽) 롯데그룹 부회장과 정용진(40) 신세계 부회장은 ‘맞수’인 두 기업의 오너로 자주 비교된다. 두 사람이 차세대 먹을거리 사업에 강한 추진력을 걸고 있는 점에서다. 두 사람 모두 중국 등 글로벌 사업에 강한 애착을 갖고 있다.
정 부회장은 지난 4월 중국 상하이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중국에서의 지난 10년간의 성장 속도는 실망스럽다. 성에 차지 않는다. 앞으로 10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중국 사업에 속도를 더 내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2004년부터 정책개발과 미래전략을 담당하는 롯데그룹 정책본부장에 취임한 신 부회장도 해외 진출에 적극 나서고 있다. 브릭스(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를 대상으로 백화점과 할인점 사업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모스크바와 베이징에 백화점을 열었고, 앞으로는 인도와 브라질, 베트남 등지에서 사업을 확대한다는 복안이다.
두 사람의 경쟁은 자존심 싸움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 부회장이 지난 1월12일 태안 기름유출 봉사활동 현장에서 “국내에서는 몰라도 중국에선 롯데가 우리의 경쟁 상대가 못 된다”고 말했다. 롯데 쪽이 발끈하며 정 부회장을 향해 “뭘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정 부회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와 동갑내기다. 사촌지간인 두 사람은 경복고 동창이다. 정 부회장은 95년 미스코리아 출신 인기 탤런트 고현정씨와 결혼했다가 2004년 이혼해 많은 화제를 낳기도 했다.
신 부회장은 노무라증권에서 일하다 88년 일본 롯데상사의 이사로 롯데에 입사했다. 97년 2월 한국롯데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그는 일본 롯데 지바 마린스의 구단주 대행도 맡고 있는데, 2005년 이승엽 선수를 영입해 재팬시리즈에서 우승했다.
정용진 부회장의 어머니인 이명희 신세계 회장은 삼성 이병철 회장의 막내딸이다. 신세계 본점 건물에 이병철 회장 흉상을 세우게 할 정도로 선대 회장에 대한 애정이 깊다. 이 회장은 이병철 회장의 8남매(3남5녀) 중 막내다. 이 회장의 오빠이기도 한 맹희씨는 자서전 에서 “내가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말을 못하고 있으면 늘 지갑을 열고 가지고 있던 돈 전부를 나에게 쥐어준 것도 명희였다”며 고마움을 털어놓기도 했다.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장녀인 신영자 롯데쇼핑 부사장은 지난 4월 인사에서 롯데쇼핑 및 롯데호텔 면세사업부 사장에 선임됐다. 73년 롯데호텔 이사로 경영에 발을 들여놓은 지 35년 만이다. 그는 부산여고와 이화여대 가정학과를 나왔다. 유통업계 라이벌 이명희 회장과는 대학 동창이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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