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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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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의 열린 입, 마은혁 임명에만 닫힌다

탄핵심판 청구 기각 직후 업무 복귀했지만 마은혁 임명은 회피
헌재 ‘위헌·위법 행위’ 인정하나 파면할 것까진 아니라고 봐
등록 2025-03-28 23:43 수정 2025-03-29 11:31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청구 기각으로 직무에 복귀한 국무총리 한덕수가 2025년 3월2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청구 기각으로 직무에 복귀한 국무총리 한덕수가 2025년 3월2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 권한대행인 국무총리 한덕수는 2025년 3월24일 헌법재판소(헌재)가 그의 탄핵심판 청구를 기각한 직후 관용차를 타고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나와 곧바로 정부서울청사로 이동했다. 오전 10시21분께 청사에 도착해 취재진 앞에 선 한덕수는 “저는 우선 급한 일부터 추스려(‘추슬러’의 잘못)나가도록 하겠다”며 같은 날 오후 경북 의성군 산불 현장을 방문하겠다고 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정책으로 달라질 세계경제 질서에 대응할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한덕수가 말을 마치자 마이크를 들고 있던 기자가 한덕수에게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 여부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이제 곧, 이제 곧, 어…. 또 뵙겠습니다.” 한덕수는 말을 얼버무린 뒤 방기선 국무조정실장의 안내를 받고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같은 날 오전 11시40분께 한덕수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저는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헌법과 법률에 따라 안정된 국정 운영에 전력을 다하는 한편, 이미 현실로 닥쳐온 통상전쟁에서 우리나라 국익을 확보하는 데 저의 모든 지혜와 역량을 쏟아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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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한덕수가 직무 복귀 후 한 일이다. 경남 산청군과 경북 의성군, 울산 울주군 등에서 발생한 산불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 참석, 국무위원들과의 오찬 간담회, 의성군 산불 현장 통합지휘본부와 대피 주민이 임시 거주하고 있는 의성체육관 방문, 국가안전보장회의 소집(이상 3월24일), 통상관계장관 간담회(기획재정부·외교부·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 참석)와 국무회의, 치안관계장관회의(법무부·국방부 장관 직무대행, 경찰청장 직무대행 등 참석) 주재, 중앙재난안전상황실 방문(이상 3월25일). 울산·경북·경남지역 산불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 주재, 산불 재난 관련 대국민 담화 발표(이상 3월26일). 경제6단체장 간담회(3월27일).

여기에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 일정은 없었다. 한덕수는 3월22일 의성군에서 시작해 강한 바람과 건조한 날씨 영향으로 계속 확산하고 있는 산불 재난에 정부가 총력을 기울여 대응하는 중에도 국무위원들과 점심을 먹었고, 국무회의와 통상관계장관 간담회, 치안관계장관회의를 열으며, 기업 회장들을 만났다. 그러면서도 헌재가 “헌법과 법률 위반의 정도가 가볍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힌 헌법재판관 미임명 문제는 해결하지 않고 있다. 헌법과 법률에 따라 안정된 국정 운영에 전력을 다하겠다는 그의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한덕수는 지금 위헌·위법 행위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국무총리 한덕수 탄핵사건 결정을 선고한 2025년 3월2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헌법재판관석 한 자리가 비어 있다. 공동취재사진단

헌법재판소가 국무총리 한덕수 탄핵사건 결정을 선고한 2025년 3월2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헌법재판관석 한 자리가 비어 있다. 공동취재사진단


재판관 4명, 마은혁 임명 거부 위헌·위법 인정 

헌재는 국회의 한덕수 탄핵심판 청구를 기각했다. 2024년 12월27일 국회의 탄핵소추안 의결로 직무가 정지됐던 한덕수의 탄핵소추 사유는 5가지다. ①대통령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를 돕거나, 돕지 않았더라도 최소한 묵인 내지 방조한 점 ②국무회의에서 ‘김건희 특검법’과 ‘채 상병 특검법’을 상대로 총 6차례 재의요구권(거부권)을 의결해 윤석열이 거부권을 행사하도록 한 일 ③2024년 12월14일 윤석열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돼 직무가 정지되기 전인 12월8일 당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공동으로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담화문을 발표한 일 ④국회가 2024년 12월10일 특별검사(특검)가 ‘12·3 내란사태’를 수사하도록 본회의에서 의결했기 때문에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검법)에 따라 국회에 특검 후보자 추천 의뢰를 지체 없이 해야 하는데 하지 않은 일 ⑤국회가 선출한 헌법재판관 후보자 3명(정계선·조한창·마은혁)을 임명하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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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관 8명 중 다수인 문형배·이미선·김형두·정정미 재판관은 ①~④와 관련하여 한덕수가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각 소추 사유가 헌법과 법률 위배라는 점을 인정할 만한 증거나 객관적 자료는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주된 기각 이유다. 반면 ⑤에 해당하는 ‘헌법재판관 임명 거부’는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것이라고 봤다.

한덕수가 헌법재판관 후보자 3명을 임명하지 않는 이유로 제시한 것은 여야 합의 부재였다. 국회가 2024년 12월23일과 24일 인사청문회를 열어 12월26일 본회의에서 헌법재판관 후보자 3명을 선출할 때까지 이 절차에 반대하는 국민의힘이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임명하지 않았고, 임명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보류’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문형배·이미선·김형두·정정미 재판관은 다음과 같이 판단했다. “국회가 가지는 재판관 3인의 선출권은 헌법재판소 구성에 관한 독자적이고 실질적인 것으로서, 대통령은 국회가 헌법에 따라 재판관으로 선출한 사람에 대해 임의로 그 임명을 거부하거나 선별하여 임명할 수 없고 (…) 따라서 대통령은 국회가 헌법에 따라 재판관으로 선출한 사람이 헌법과 헌법재판소법에서 정한 자격요건을 갖추고, 그 선출 과정에 의회 민주주의를 원칙으로 하는 헌법 및 국회법 등 법률을 위반한 하자가 없는 한, 헌법에 따라 그 사람을 재판관으로 임명할 헌법상 의무를 부담한다. 대통령이 궐위 또는 사고로 인하여 그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에는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는 국무총리 또는 국무위원 역시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위와 같은 헌법상 의무를 부담한다.”

이어 재판관 4명은 “당시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3인(이종석·이영진·김기영)이 임기만료로 (2024년 10월17일) 퇴임하고 6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어 헌법재판소법상 심리정족수(재판관 7명 이상의 출석)를 채우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고, 4개월 뒤인 2025년 4월18일에는 남은 6인의 재판관 중 2인(문형배·이미선)도 임기만료로 퇴임이 예정된 상황이었으므로 피청구인(한덕수)이 헌법재판관 3인을 임명하지 않으면 헌법재판소가 헌법 질서 수호라는 본연의 임무를 계속해나가지 못하고 무력화되는 결과가 초래됐을 것”이라며 “더구나 2024년 12월14일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 이루어져 대통령의 권한 행사가 정지된 상태이고 이로 인해 피청구인이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게 됐는데, 피청구인이 재판관 3인을 임명하지 않아 헌법재판소가 탄핵심판을 하지 못하게 된다면 국정 최고 책임자의 공백 상태가 언제 해소될 것인지 예측할 수 없는 불안정한 상태가 지속되고 이로 인한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타격이 걷잡을 수 없이 극대화됐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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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재판관 4명은 이런 한덕수의 위헌·위법 행위를 인정하면서도 파면을 정당화할 수 있을 정도로 중대한 위반 행위는 아니라고 봤다. 그 판단 근거 중 하나가 “피청구인의 헌법재판관 임명 거부가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을 진행하는 헌법재판소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목적 또는 의사에서 기인했다고까지 인정할 증거나 객관적 자료는 발견되지 않는 점”이었다.

대통령 권한대행인 국무총리 한덕수(왼쪽 둘째)가 2025년 3월2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산불 예방 관련 대국민 담화를 마친 뒤 브리핑실을 나서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대통령 권한대행인 국무총리 한덕수(왼쪽 둘째)가 2025년 3월2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산불 예방 관련 대국민 담화를 마친 뒤 브리핑실을 나서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피청구인의 행위의 ‘의도’ 적극 고려한 헌재

헌재가 말하는 ‘탄핵심판 청구가 이유 있는 경우’란, ‘피청구인이 그 직무 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로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로 중대한 헌법이나 법률 위배가 있는 때’를 가리킨다. 헌재는 위헌·위법의 중대성을 판단하는 기준을 ‘손상된 헌법 질서를 회복’한다는 측면과 ‘국민의 신임, 즉 민주적 정당성을 임기 중 박탈’한다는 측면에서 찾는다. 헌재는 민주적 정당성이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국회의원으로 구성된 국회와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대통령에게만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국회와 대통령의 관여로 구성되는 비선출 권력인 행정부나 사법부에도 간접적으로 부여된다고 본다.

그런데 헌재가 탄핵심판 피청구인의 위헌·위법 행위가 중대한지를 판단할 때 헌법 질서를 훼손한 행위 자체가 아니라 행위의 ‘의도’, 즉 피청구인이 ‘헌법 질서에 역행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사’가 있었는지를 적극적으로 고려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이 헌법학자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신옥주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피청구인의 헌법 및 법률 위반 정도가 가볍다고 보기 어렵다’는 재판관 4인 의견은, 그 내용만 보면 (탄핵심판 청구) 인용 결정(한덕수의 파면을 뜻함)으로 귀결되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헌재는) 그처럼 가볍지 않은 헌법과 법률 위반 행위가 있어도 ‘헌법재판소를 무력화하기 위한 목적 또는 의사에 기인하였다고까지 인정할 만한 증거나 객관적 자료는 발견되지 않는 점’ 등을 들어 (한덕수의 헌법재판관 임명 거부가)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피청구인의 가볍지 않은 헌법·법률 위반 행위보다 그런 (헌법 질서에 부정적 영향이나 해악을 미치려는) 목적 또는 의사가 있었는지 아닌지가 탄핵 인용 여부 판단 기준으로 엄격하게 활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위헌·위법 행위의 중대성을 따질 때는 행위의 결과와 같은 객관적인 지표를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 맞다. 피청구인의 주관적인 요소인 의도, 목적에 너무 비중을 두고 판단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한덕수의 헌법재판관 임명 거부는) 현재 윤석열 탄핵심판 선고가 지체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당연히 임명했어야 할 헌법재판관을 임명하지 않아 여야 정쟁을 야기한 측면이 있고, 이는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조속하게 정국을 안정시킬 책무를 저버린 행위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한덕수의 위헌·위법 행위는) 국민 신임을 상실하고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에 이른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헌법재판관들이 2024년 3월24일 국무총리 한덕수 탄핵사건 결정 선고를 하기 위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앉아 있다. 왼쪽부터 정계선, 김복형, 정정미, 이미선, 문형배, 김형두, 정형식, 조한창 재판관. 한겨레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헌법재판관들이 2024년 3월24일 국무총리 한덕수 탄핵사건 결정 선고를 하기 위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앉아 있다. 왼쪽부터 정계선, 김복형, 정정미, 이미선, 문형배, 김형두, 정형식, 조한창 재판관. 한겨레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한덕수·최상목의 중대한 위헌 행위 짚은 정계선

헌법재판관 8명 중 유일하게 “피청구인을 파면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힌 정계선 재판관은 다음과 같은 의견을 피력했다.

“최상목(한덕수 직무 복귀 전 대통령 권한대행)은 현재까지도 마은혁을 재판관으로 임명하지 않고 있고 이로써 헌정 질서 수호 위기를 초래하고 있는데, 이는 피청구인 행위에서 비롯된 것이다. (…) (한덕수의 헌법재판관) 임명 거부의 실상은 (…) 헌법재판소의 내부적 상황을 이용하여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사건 진행을 지연시키거나 방해하고자 하는 여당의 의사를 고려한 것으로, 이는 결국 피청구인이 형식적 명분으로 내세우는 ‘여야의 합의’나 ‘실질적 대의제 실현’이 아닌 소수 여당의 의도나 계획에 부합하는 일방적인 국정 운영이다. (…) 따라서 피청구인을 파면하여 임명권자인 대통령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부여받은 국민의 신임을 박탈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피청구인의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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