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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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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수 기업 열전] 온라인 게임의 넥스트 선점하는 퍼스트

‘카트라이더’로 불문율 깨뜨린 넥슨과 ‘아이온’으로 제2 도약 성공한 엔씨소프트
등록 2009-03-26 15:20 수정 2020-05-03 04:25

1994년 12월 겨울 넥슨(NEXON)이 문을 연다. 회사 이름은 ‘넥스트 제너레이션 온라인 서비스’란 뜻으로 정한다. 자본금 6천만원이 종잣돈이었다.
김정주 넥슨홀딩스 대표는 게임에 미친 10여 명과 함께 이렇게 뭉쳤다. 이 가운데에 카이스트 동기였던 송재경 XL게임즈 대표도 있었다. 멋진 게임 한번 만들어보겠다는 열정이었다. 하지만 변변한 사무실도, 넉넉한 자금도 없었다.

‘카트라이더’로 불문율 깨뜨린 넥슨과 ‘아이온’으로 제2 도약 성공한 엔씨소프트

‘카트라이더’로 불문율 깨뜨린 넥슨과 ‘아이온’으로 제2 도약 성공한 엔씨소프트

김정주 대표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뒤 카이스트에서 박사과정을 하다 말고 벤처를 차렸다. 게임이 좋아 학위도 뿌리치고 창업 전선에 뛰어든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개발 기간이 긴 온라인 게임 특성상 개발 과정에 자금이 달리는 것은 당연했다. 당시엔 벤처 투자라는 것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외부 투자도 받기 힘들 때였다. 회사 설립 1년 뒤 넥슨은 직원들 월급도 주지 못할 정도로 벼랑까지 몰렸다. 그해 12월 넥슨은 ‘바람의 나라’를 내놓는다.

‘바람의 나라’와 ‘리니지’ 빅히트

그때는 PC통신 시대였다. ‘단군의 땅’과 ‘쥬라기공원’이라는 텍스트 위주 게임이 PC통신에 등장하고 있을 때였다. 선발주자가 있었다. 후발주자가 도전하려면 하나가 더 필요했다. 차별화. 그것은 기술로 극복해야 했다. 게임에 그래픽을 입혔다. 세계 최초의 그래픽 온라인 게임이다. ‘바람의 나라’가 그것이다.

하지만 그래픽 온라인 게임을 이해시키는 것조차 어려웠다. 넥슨 직원들이 서비스를 위해 천리안·하이텔을 찾을 때, 그곳에서조차 온라인 게임을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다.

“너, 그거 해서 밥 벌어 먹고 살 수 있겠냐?”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은 서울대 전자공학과 85학번이다. 우연한 기회에 컴퓨터를 접하면서 1학년 때부터 소프트웨어 쪽으로 빠져들었다. 회로를 디자인하고 수학 문제를 푸는 것보다 프로그래밍이 훨씬 더 맞았다. 친구들은 그런 그를 걱정했다. 소프트웨어 기업이 거의 전무했을 때였다.

김 사장은 컴퓨터연구회에서 활동하면서 이찬진 현 드림위즈 사장 등과 함께 아래아한글 개발에 참여했다. 타자교사 프로그램(한메타자교사)을 만들면서 그 안에 들어가는 게임을 만들었는데, 바로 베네치아였다. 컴퓨터 화면 위에서 비 오듯 쏟아지는 낱말을 치며 타자를 연습하는 게임이었다.

97년 엔씨소프트(NCSOFT)가 만들어진다. ‘넥스트 컴퍼니’(차세대 기업)이라는 뜻을 담았다. 공교롭게 두 회사 모두 넥스트가 들어가 있다.

엔씨소프트도 차별화를 한다. 이미 네이버와 다음을 비롯해 여러 인터넷 업체가 벤처기업으로 커나가고 있을 때였다. 당시 대부분의 벤처기업들은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라는 틀에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김택진 사장은 “남들 잘하는 것에 끼어들어서 ‘조금 더 잘하네’라는 소리 듣는 것은 싫었다”며 “인터넷을 진짜 다르게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남들이 인터넷을 ‘정보망’으로 여길 때 김 사장은 ‘엔터테인먼트망’으로 발상을 전환한다.

김 사장은 당시 아이네트에서 게임을 개발하던 송재경 대표를 영입한다. 송 대표의 손에서 ‘리니지’가 나온다.

PC방 창업 열풍과 스타크래프트 맞물려

엔씨소프트는 98년 리니지 서비스를 시작한다. 하지만 사업자금을 확보하기 힘들었다. 김 사장은 어쩔 수 없이 집을 은행에 맡기고 집을 줄여 이사하고 남은 돈으로 직원 월급을 줬다. 서버를 사고, 남은 자투리 돈마저 직원들의 추석 보너스로 썼다. 집에 들어간 김 사장은 깜깜한 방에서 자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잘못돼서 (감방에) 들어가면 우리 어머니·아버지가 잘 키워주시겠지”라는 생각까지 했다.

두 회사를 살린 건 97년 외환위기와 PC방, 그리고 ‘스타크래프트’였다. 구조조정 칼날로 많은 회사원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그들이 생계 수단으로 선택한 것이 PC방 운영이었다. 졸업을 앞둔 청년들도 막막했다. 그들은 PC방에서 게임을 하며 애써 힘든 현실을 잊었다. 당시 불어닥친 ‘스타크래프트’ 열기는 PC방 창업을 부추겼다. PC방도 게임과 결합하면서 비즈니스 모델을 찾을 수 있었다. PC방 창업 열풍과 ‘스타크래프트’ 바람이 불면서 넥슨과 엔씨소프트는 난관을 헤쳐나간다.

‘바람의 나라’와 ‘리니지’에는 스토리텔링 요소가 녹아 있다. ‘바람의 나라’는 김진의 만화가 원작이다. 고구려의 국내성을 배경으로 스토리로 짜놓았다. 혈맹이란 뜻의 ‘리니지’도 신일숙의 동명 만화를 배경으로 잃어버린 왕의 혈통을 되찾는 것이 주제다. 10세기 유럽을 배경으로 한다. 누구나 성주(리더)가 될 수 있고, 세금을 과하게 거두는 악덕 성주는 민초들이 몰아내기도 한다.

등장인물인 캐릭터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바람의 나라’ 캐릭터는 단순하고 귀여운 3등신이지만, ‘리니지’는 화려한 액션과 이펙트가 가능하도록 쭉쭉빵빵 8등신의 캐릭터를 사용한다. 캐릭터 사업 관점에서 보면, 3등신의 넥슨 캐릭터들이 팬시상품으로 만들기 쉽다.

이어 넥슨은 ‘카트라이더 신화’를 만들어낸다. 사실 자동차경주 게임은 안 된다는 게 온라인 게임업계의 불문율이었다. 자동차경주 게임은 실력 차이가 극명해 초보자들이 적응하기엔 너무 문턱이 높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넥슨은 ‘카트라이더’를 내놓으며 이러한 불문율을 깨버린다. 우선 복잡하고 어려운 조작키를 최소한으로 줄였다. 초보자는 방향키와 아이템 사용키만으로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시간도 3~5분 안쪽으로 짧게 줄였다. 이 때문에 ‘밥내기 카트 한판’ ‘떡볶이 내기 카드 한판’ 등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다.

이재교 넥슨 실장은 “‘카트라이더’는 ‘스타크래프트’에 빠져 있던 넥타이 부대와 고스톱만 치던 여성을 그 어렵다는 자동차게임으로 몰아갔다. 2004년 12월 ‘카트라이더’는 PC방 점유율에서 14.84%를 기록해 ‘스타크래프트’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고 말했다. 서비스를 내놓은 지 4개월 만이다. ‘카트라이더’는 그해 삼성경제연구소 선정 10대 히트상품 중 7위에 선정됐다.

2008년 11월11일 새벽 6시. 엔씨소프트의 ‘아이온’이 첫선을 보이는 순간이었다. 이재성 엔씨소프트 상무는 “김택진 사장을 비롯해 전 직원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3, 2, 1, 0. 이날 엔씨소프트 사무실에선 화면으로 아이온 접속 인원을 확인해볼 수 있었다. 100주 동안 PC방 점유율 1위 자리를 지켰던 ‘서든어택’을 단숨에 밀어내고 오픈 첫날 PC방 왕좌로 떠오른 기록도 세웠다”고 말했다.

글로벌 확장 사업에 승부수 던져

사실 엔씨소프트는 ‘리니지2’ 이후 5년 만에 ‘아이온’을 내놓았다. 중간에 내놓은 게임은 연속으로 실패했다. ‘리니지’로 10년 동안 버틴다는 비아냥거림도 들어야 했다. ‘아이온’이 처음 언론에 공개된 것은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김택진 사장은 “‘리니지’와는 전혀 다른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두 회사엔 빛과 그림자가 있다. 해킹이나 불법 프로그램을 통한 개인 정보 유출, 게임 아이템을 사고파는 현금 거래, 게임 아이템을 모으기 위해 조직적으로 운영되는 불법 영업장, 그래픽 표절, PC방과의 갈등 등은 그림자다.

하지만 컴퓨터와 초고속 인터넷, 네트워크 산업의 성장을 이끌고 일자리를 만들었다. 게임에서 캐릭터 산업으로 커가고 있으며, 한국의 온라인 게임을 세계에 수출하고 있다. 이는 온라인 게임의 빛이다.

두 회사의 ‘넥스트’는 바로 ‘글로벌’이다. 넥슨은 세계 60개국에 20여 개 온라인 게임을 서비스하고 있다. 넥슨이 매년 올리는 매출의 50% 이상을 해외에서 벌어들이고 있다. 일본과 유럽 시장은 물론 브라질과 같은 남미에도 진출해 한국 온라인 게임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엔씨소프트는 윤송이 최고전략책임자(CSO) 겸 부사장이 해외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윤 부사장은 올 초 서울 사옥에서 미국, 대만, 타이, 일본, 중국, 유럽 등 6개 해외법인장을 모아 글로벌 전략회의를 수차례 열었다. 해외시장 공략의 교두보가 될 ‘아이온’도 중국을 필두로 북미, 일본 등으로 진출할 예정이다.



같은 과 선후배 김택진 사장과 김정주 대표
트리플에 눈독, 캐주얼에 애착


김택진(42·왼쪽) 엔씨소프트 사장과 김정주(41) 넥슨홀딩스 대표

김택진(42·왼쪽) 엔씨소프트 사장과 김정주(41) 넥슨홀딩스 대표

김택진(42·왼쪽) 엔씨소프트 사장과 김정주(41) 넥슨홀딩스 대표는 같은 대학 같은 과 선후배 사이다. 두 사람은 지난 10년 동안 선의의 경쟁을 펼쳐왔다.
하지만 두 사람의 스타일은 확연히 다르다. 김택진 사장은 공대생답게 꼼꼼하고 치밀하다. 원리를 중요시한다. ‘아이온’도 개발 기간 내내 꼼꼼하게 챙겼다. 게임 개발에만 역량을 집중하는 스타일이다. 그의 꼼꼼함을 잘 보여주는 사례 하나. 엔씨소프트 설립 초기엔 게임 서버가 회사 안에 있었다. 그런데 사무실에 종종 비가 샜다. 서버에 물이 들어가면 서비스가 중단되기 때문에 엔씨소프트 사람들은 서버에 물이 들어가지 않게 막아야 했다. 김 사장은 집에 가서 쓰러져 잠을 자다가도 비만 오면 눈이 떠져 회사에 가곤 했다.
김 사장은 ‘리니지’와 ‘아이온’ 등 스케일이 큰 대작 중심의 작품을 내놓고 있다. 게임성이 뛰어나고 흥행 성적이 뛰어난 이른바 트리플A 게임을 선호한다.
반면 김정주 대표는 경영 감각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정주 대표는 부분유료화 요금제를 처음으로 시장에 도입해 온라인 게임의 수익모델을 만들었다. 사업가적인 마인드가 뛰어나다. 그러나 털털하다. 히피 같다는 말도 듣는다. 이재교 넥슨 실장은 “김정주 대표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라고 말했다.
김정주 대표는 회사 건물에서 직원에게 내쫓길 뻔한 일화도 있다. 김 대표가 볼일이 있어 사무실을 찾았다가 개발팀에 들렀다. 마침 저녁 시간이라 대다수 직원이 저녁을 먹으러 가고 몇몇 직원만 남아서 일을 하고 있었다. 김 대표는 한 직원의 뒤에 서서 직원이 테스트 중인 게임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 직원이 뒤를 돌아보고 깜짝 놀라며 “여긴 어떻게 들어오셨어요? 여긴 개발실이라 외부인이나 잡상인이 함부로 들어오면 안 돼요”라고 소리쳤다. 개발팀은 게임회사에서 보안을 가장 중시하는 곳이다. 김 대표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 직원들에게 떠밀리듯 나와야 했다.
김 대표는 뛰어난 순발력과 창의성을 자랑한다. 게임에서도 아기자기한 재미를 추구하는 캐주얼 게임을 선호한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맞수 기업 열전’은 이번호로 연재를 마칩니다. 조만간 ‘글로벌 맞수 기업 열전’으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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