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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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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수 기업 열전] ‘검은 황금’ 캐는 쌍끌이, 차세대 에너지 충전

투명경영 SK에너지와 오일쇼크 돌파한 GS칼텍스 ‘제2 엘도라도’ 격돌
등록 2008-11-07 17:12 수정 2020-05-03 04:25

영화 에서 제임스 딘은 광활한 미 텍사스 대평원에서 유전을 찾아나선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위스키를 들이켜고 시추작업을 하던 그에게 거대한 굉음이 울린다. 검은 기둥이 하늘을 향해 분수처럼 치솟는다. 석유를 뒤집어쓴 채 그는 환호성을 지른다.
SK에너지와 GS칼텍스는 ‘21세기 엘도라도’를 꿈꾸며 ‘검은 황금’을 캐는 맞수 기업이다. SK의 석유사업은 ‘기회는 준비된 자의 몫이다’로 결론 맺는다. 고 최종현 선경 회장은 1973년 ‘석유에서 섬유까지’라는 수직계열화를 천명하며 석유사업에의 의지를 다져나간다. 선경은 그해 15만 배럴 규모의 정유공장을 설립하려 했다. 하지만 중동전이 발발하면서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그 뒤 최 회장은 중동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에 눈을 돌렸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무역거래를 튼 뒤 왕실 사람들과 인연을 맺어간다.

SK에너지 베트남 해상광구, SK주유소(왼쪽부터)

SK에너지 베트남 해상광구, SK주유소(왼쪽부터)

최 회장의 ‘오일외교’는 2차 오일쇼크가 터지면서 불이 타오른다. 79년 2월 이란에서 혁명이 일어난다. 이란의 석유 수출 중단과 함께 국제 석유 가격이 급등했다. 당시 우리나라 원유 재고는 열흘분밖에 남지 않았다. 국가 위기 상태였다. 최 회장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인들에게 간곡히 석유를 요청해 그들을 움직였다. 결국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벨기에로 향할 예정이던 5만 배럴 물량을 우리나라로 돌린다.

유공 인수한 선경 재계 5위로 점프

당시 다국적 석유기업 걸프는 원유 확보에 심각한 타격을 받는다. 걸프는 62년 우리 정부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최우선 과제로 설립한 한국석유공사(유공)의 지분 50%를 갖고 있었다. 80년 8월 걸프는 자신들이 보유한 유공 지분을 모두 팔아치우고 우리나라에서 철수해버린다.

정부는 유공 민영화를 결정한다. 그때 유공은 국내 기업 최초로 매출액 1조원을 돌파한 기업이었다. 기업들이 눈독을 들이는 것은 당연했다. 석유 파동을 겪으며 원유 확보의 중요성을 절감한 정부는 인수 자격으로 원유의 장기적·안정적 확보 능력을 우선적으로 내걸었다. 결국 80년 12월 선경그룹이 쟁쟁한 대기업들을 제치고 유공 인수자로 최종 결정됐다. 재계 10위 안팎을 맴돌던 선경은 일약 재계 5위로 떠올랐다. 그 뒤 유공은 SK(주)로, 다시 SK에너지로 이름을 바꾸며 성장한다.

GS칼텍스의 시작은 동업이었다. 65년 초 구인회 럭키 창업회장은 구평회 전무와 한성갑 기획부장을 불러 “새로운 사업 방향에 대해 연구해보라”고 지시했다. 럭키그룹은 그해 가을 석유사업 청사진을 담은 95쪽짜리 ‘한국석유화학공업(주) 사업계획서’를 만들어낸다. 계획서는 곧 경제기획원과 상공부에 제출됐다. 하지만 정부 반응은 한마디로 냉담했다. 정유 사업에 민간 기업을 참여시키지 않겠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외부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경제가 발전하면서 석유 수요가 급격히 늘어났다. 결국 정부는 66년 5월 여수에 제2 정유공장을 세우는 계획을 발표하고 사업자 공모에 들어갔다. 신청서는 마감 1시간 전까지 한 건도 접수되지 않았다. 마감 직전, 여섯 건이 무더기로 접수됐다. 사운을 걸고 달려든 입찰전이었다. 국내 최초의 민간 정유사는 ‘호남정유’를 회사 이름으로 써낸 럭키에 돌아갔다.

자본이 없어 차관이 반드시 필요했던 그때, 럭키는 칼텍스(현 쉐브론)와 손을 잡는다. 지분은 50 대 50으로 정확히 반으로 나눴다. 두 회사의 합작은 오일쇼크 때 빛을 냈다. 73년 1차 오일쇼크가 터지자 국내에선 원유를 못 구해 정유공장의 가동률이 60∼70%로 뚝 떨어졌다. 하지만 호남정유 여수공장은 94%의 가동률을 보였다. 칼텍스의 지원으로 원유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원유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유공에도 두 차례에 걸쳐 170만 배럴의 원유를 공급해주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칼텍스 회장에게 감사 편지를 보낼 정도였다.

호남정유 설립뒤 칼텍스와 손잡아

86년 9월 쉐브론은 지분 50%는 그대로 유지하되, 경영권은 LG에 넘기겠다고 발표한다. 공동 경영에서 단독 경영 체제로의 전환이었다. 두 회사의 신뢰가 바탕이 됐다. 합작회사는 호남정유-LG정유-LG칼텍스정유-GS칼텍스로 변화·성장해간다.

GS칼텍스는 고도성장으로 석유 수요가 폭증하자 81년 하루 15만 배럴 규모의 정제시설을 증설했다. 그러나 곧바로 2차 오일쇼크에 맞닥뜨렸다. 국내 석유 수요가 급감했다. 이때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은 국내에서 원유를 정제해 해외에 내다파는 ‘임가공 수출’이라는 생소한 해법을 들고 나왔다. 정유업계에 ‘수출’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던 시절이었다. GS칼텍스는 석유 수출이라는 역발상을 맨 처음 실천에 옮겨 83년 정유업계 사상 처음으로 수출 2억불탑을, 97년에는 10억불탑을 받기도 했다.

GS칼텍스 주유소, 여수공장 전경(왼쪽부터)

GS칼텍스 주유소, 여수공장 전경(왼쪽부터)

미 위스콘신대 화공학 박사인 허 회장은 국제사회에서 전문성과 영향력을 인정받아 ‘미스터 오일’(Mr. Oil)이라는 애칭으로 통한다. 최근에도 그의 위기대응 능력은 돋보였다. 지난 9월 고객 1100만여 명의 개인정보 유출사고가 났을 때, 허 회장은 “숨김없이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김명환 GS칼텍스 전무는 “회장의 그같은 지시로 회사의 엄청난 이미지 실추와 고객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GS칼텍스는 개인 피해 방지와 수습 방안 마련에 발 빠르게 대처하며 경찰 수사에도 적극 협조했다. 이 때문에 수사는 빠른 속도로 진전돼 착수 이틀 만에 용의자를 찾아냈다.

2003년 닥친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 사태로 SK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이게 된다. SK글로벌의 분식회계와 비자금 조성 혐의로 최태원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경영 공백이 생기고 계열사의 주가가 급락했다. 이런 상황에서 소버린은 SK㈜ 지분 14.99%를 확보하며 경영권을 위협했다. 이만우 SK에너지 상무는 “그룹이 외국인 기업사냥꾼 손에 넘어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직원들이 똘똘 뭉쳐 소버린의 경영권 위협을 극복해냈다. 경영 일선에 복귀한 최 회장은 소극적인 방어가 아닌 대대적인 지배구조 개선으로 투명경영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소버린 사태 때 신헌철 SK에너지 부회장(당시 SK㈜ 사장)은 최 회장과 호흡을 맞춰 소버린에 맞섰다. 신 부회장은 석유공사에 입사해 영업전선을 두루 누빈 뒤 SK가스와 SK텔레콤 등에서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2004년 친정으로 컴백한 정통 정유맨이다.

두 회사 모두 ‘산유국의 꿈’을 찾으려 세계 곳곳을 부지런히 누비고 있다. SK에너지의 해외 자원 개발은 도전과 응전의 역사였다. 시작은 83년 인도네시아 카리문 광구였다. 8개월 동안 8개의 탐사정을 뚫었지만 실패였다. 다음해에는 아프리카 모리타이아 9광구 개발에 나섰다. 역시 성과를 얻지 못했다. 잇단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해외 자원개발 사업을 꾸준히 추진했다. 마침내 84년 북예멘 마리브 광구에서 추정 매장량 10억 배럴에 이르는 유전개발에 성공했다. 홍경표 SK에너지 부장은 “전세계 17개국 32개 광구에서 확보한 원유 환산 매장량이 5억 배럴에 이른다. 전 국민이 250일 동안 쓸 수 있는 양”이라고 말했다.

전세계 광구 누비는 수출 효자

GS칼텍스는 2003년부터 자원 개발에 나선다. 출발은 늦었지만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현재 참여 중인 광구는 캄보디아 블록A광구, 타이 육상광구, 베트남 122광구 등 12 광구(GS홀딩스 포함)다. 이명구 GS칼텍스 부장은 “동남아, 중앙아시아, 중동 등 주요 전략지에서도 추가 탐사사업을 추진 중이다. 2015년까지 회사 원유 도입량의 10%(하루 생산량 7만 배럴)를 자체 조달한다는 목표다”라고 밝혔다.

석유제품은 올해 우리나라 수출품목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두 회사는 내수기업이라기보다 수출기업에 가깝다. 고도설비에 막대한 투자를 쏟아부었다. 고도설비는 원유정제 과정에서 생산된 값싼 벙커C유(중질유)를 다시 휘발유와 경유로 바꿔주는 시설이다. 고도설비로 부가가치를 높인 석유제품은 중국과 동남아 등으로 수출된다.

SK에너지와 GS칼텍스는 정유업체를 뛰어넘어 차세대 에너지 기업으로 변신을 서두르고 있다. 수소에너지, 2차 전지와 같은 꿈의 에너지 개발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쉽지 않다. 물에서 수소를 얻는 가장 손쉬운 방법인 전기분해의 경우, 얻어내는 수소에너지보다 전기분해 자체에 들어가는 에너지가 더 많다. 하지만 도전하는 쪽은 언젠가 새로운 에너지의 불을 활활 태울 것이다. 의 제임스 딘처럼.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브랜드 경쟁도 활활
문근영·이기용 등 스타모델 총동원


문근영·이기용(왼쪽부터)

문근영·이기용(왼쪽부터)

GS칼텍스와 SK에너지는 브랜드와 광고 등의 분야에서도 불꽃 튀는 마케팅 경쟁을 벌인다.
GS칼텍스는 1995년 1월 ‘테크론’을 내놓으면서 휘발유 브랜드 전쟁에 불을 댕겼다. 테크론이 선보일 당시 경쟁사들은 ‘기름에 무슨 브랜드냐’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테크론의 브랜드 마케팅은 짭짤한 성과를 거뒀다. 시장점유율 1%포인트 올리기가 어려운 휘발유 시장에서 GS칼텍스 점유율은 95년 2%포인트 높아졌다. 테크론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95년 10월 SK에너지는 ‘엔크린’이란 휘발유 브랜드를 출시하며 따라왔다. SK에너지는 청정, 연비 개선, 세정 기능 등을 앞세우며 엔크린을 고품질 휘발유 이미지로 굳혀나갔다.
광고전쟁도 볼거리다. GS칼텍스가 95년 테크론 모델로 배우 이승연을 기용하자, SK에너지도 이에 질세라 엔크린 모델로 박중훈을 내세우며 맞불 작전을 폈다. 뒤이어 당시 한화에너지(현 SK인천정유)는 미국 영화배우 샤론 스톤을 내세워 ‘강한 걸로 넣어주세요’라는 화끈한 카피까지 등장시켰다.

GS칼텍스는 ‘국민 여동생’ 문근영(왼쪽)을 앞세워 재미를 봤다. 왕초보 운전자인 문근영이 길을 잃고 헤매다 초록색이 선명한 GS칼텍스 주유소를 만나 도움을 받게 된다는 내용이다. GS칼텍스는 월드컵 마케팅 효과를 위해 축구스타 박주영을 광고모델로 내세우기도 했다.

SK에너지는 98년 고소영을 시작으로 엄정화·이효리·이기용(오른쪽)·윤지민에 이르기까지 ‘빨간 모자 아가씨’들을 내세워 ‘SK주유소=빨간색’이라는 연상 이미지를 이끌어내며 컬러마케팅 경쟁에 불을 지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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