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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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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수 기업 열전] 화장하는 GS, 요리하는 CJ

뻐꾸기 시계로 시작한 홈쇼핑 13년… CJ는 해외로, GS는 인터넷으로
등록 2008-11-28 16:30 수정 2020-05-03 04:25

마수걸이는 만능 리모컨이었다. 1995년 8월1일, 아침 9시부터 1시간 동안 GS홈쇼핑(옛 한국홈쇼핑) 첫 방송에서 팔린 상품이었다. 리모컨 하나로 TV와 비디오를 작동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 제품이었다. 첫 방송 뒤 주문은 10개가 채 안 됐다. 10개 가운데 상당수는 사내 직원들이 샀다.
또 다른 마수걸이는 뻐꾸기 시계였다. CJ홈쇼핑(옛 39홈쇼핑)도 같은 시각 첫 홈쇼핑 방송을 내보낸다. 가격은 7만8천원. 1시간 동안 7개를 팔았는데 그 가운데 4개를 직원들이 구매했다.
그렇게 두 회사는 홈쇼핑 시대를 여는 첫 방송을 쏘았다. 그러나 실적은 미미했다. 95년 GS홈쇼핑과 CJ홈쇼핑의 매출 합계는 34억원에 그쳤다. 홈쇼핑 방송을 시작한 지 3년이 지났을 때도, 업체별 매출은 1천억원을 채 넘기지 못했다. 상품을 직접 만져 보지 못한 채 TV 화면에서 보고 전화 주문하는 방식을 사람들은 낯설어했다.

화장하는 GS, 요리하는 CJ

화장하는 GS, 요리하는 CJ

13년이 흐른 뒤 TV 홈쇼핑은 백화점·할인점과 함께 국내 유통산업의 한 축으로 성장했다. 두 회사는 매출 규모에서 세계 3·4위를 다툴 만큼 비약적인 성장을 일궈낸다. 2007년 취급 매출액에선 GS홈쇼핑(1조8천억원)이 CJ홈쇼핑(1조5천억원)에 앞선다. 하지만 영업이익은 CJ홈쇼핑(708억원)이 GS홈쇼핑(667억원)보다 많다.

‘요람(유모차)에서 무덤(상조 서비스)까지’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다양한 상품과 홈쇼핑 특유의 반품·환불·덤 서비스는 고객들의 지갑을 열게 만들었다. 문화적인 차이도 홈쇼핑 성장에 한몫했다. 미국과 일본의 홈쇼핑은 제품 기능에 초점을 맞춰 반복 설명한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 홈쇼핑 방송은 다양한 방송 포맷에 화려한 화면과 엔터테인먼트적 요소가 풍부하다.

쇼핑호스트 인기 직업 떠올라

홈쇼핑의 시작은 77년 미국 플로리다 라디오 방송사에서였다. 한 광고주가 광고비를 못 내자 방송사에 자신들이 만든 전기 병따개를 넘겼다. 방송사 사장은 병따개를 어떻게 처분할까 고민하다, 라디오 방송 디스크자키에게 팔아줄 것을 요청했다. 디스크자키는 자신이 진행하던 토크쇼에서 “여러분, 여기 멋진 깡통따개가 있으니 구입하시려면 연락주십시오”라고 소개했다. 곧바로 100여 개가 개당 9달러 95센트에 모두 팔린다. 이 예상치 못한 성공이 홈쇼핑의 시초가 됐다.

GS홈쇼핑의 사업 초기 얘기. 처음 콜센터 직원은 30여 명에 그쳤다. 모든 주문은 노트에 펜으로 썼다. 판매 결과를 즉시 알 수도 없었다. 마케팅 계획을 세우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신영범 GS홈쇼핑 부장은 “이듬해 업계 최초로 영업 시스템을 전산화했다. 방송을 진행하는 동안 실시간으로 물건의 판매 상황을 알 수 있게 됐다. 프로듀서(PD)나 상품기획자(MD)가 상품의 옥석을 가릴 수 있게 됐다. 쇼핑호스트들도 판매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멘트를 바꿀 수 있는 등 전산화는 홈쇼핑 마케팅의 디딤돌이 됐다”고 말했다.

홈쇼핑의 꽃, 쇼핑호스트도 새로운 인기 직업으로 태어났다. 쇼핑호스트들은 카메라 앞에서 대본도 없이 물건만 놓고 팔아야 하는 열악한 상태에서 방송을 했다. 당시 GS홈쇼핑엔 16명의 쇼핑호스트가 있었는데, 생소한 직종이다 보니 미국에서 활동 중인 쇼핑호스트를 데려와 교육을 받아야 할 정도였다. 쇼핑호스트들은 방송을 통해 자기만의 영역을 만들어가야 했다. 이 과정에서 쇼핑호스트는 단지 물건만 파는 게 아니라, 소비자들과의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외환위기를 기회로 활용

홈쇼핑에서 가장 많이 팔린 상품은 무엇일까? 시기별로 CJ홈쇼핑에서 가장 많이 팔린 상품을 짚어보면, 초기인 90년대 말 히트 상품은 대부분 요리, 청소, 세탁 등 집안 살림에 쓰이는 제품들이었다. 손쉽게 요리할 수 있는 ‘돌삿갓 요리박사’, 핸드 믹서기 ‘도깨비방망이’, ‘돌침대’ 등도 이 시기에 첫선을 보인 상품이다. 크리스털 홈 세트는 90년대 혼수 품목으로 히트 상품에 올랐으나, 2000년대 뒤로는 실용적인 식기류로 트렌드가 바뀌었다. 2000년대에 들어선 여행상품이나 공연관람권, 콘도이용권 등 서비스 상품이 처음 등장한다. 홈쇼핑의 새로운 수익원으로 각광받은 보험 상품 방송을 처음으로 시작한 것도 2003년 말이다. 장영석 CJ홈쇼핑 팀장은 “2000~2004년은 가전제품이 가장 많이 팔리던 시기이기도 하다. 김치냉장고와 컴퓨터가 방송 단골 메뉴였다. 김치냉장고에 대한 주부들의 욕망이 큰 때였고, 인터넷이 보편화되기 시작하면서 가정용 컴퓨터 구매 수요가 급증했다”고 말했다.

97년 들이닥친 외환위기는 홈쇼핑 업체엔 오히려 기회였다. 경제위기로 많은 기업들이 위기에 처했고, 특히 중소기업엔 더욱 큰 시련이었다. 판로를 찾던 중소기업과 품질 좋은 상품을 원했던 홈쇼핑 업계는 서로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중소기업의 싸고 질 좋은 상품들이 홈쇼핑의 전파를 타게 된다. 소비자들도 카드를 긁기 시작한다.

진짜 위기는 외환위기 다음에 찾아왔다. 홈쇼핑 사업이 나날이 성장을 거듭하자, 정부는 우리홈쇼핑(현 롯데홈쇼핑)과 농수산홈쇼핑, 현대홈쇼핑 등을 신규사업자로 선정했다. 2개 업체가 시장을 양분하다 5개 업체의 경쟁이 시작됐다.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케이블TV 시청 가구 수도 포화되기 시작했다. 고객 수가 정체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2003년 신용카드 사태까지 터지면서 홈쇼핑은 직격탄을 맞게 된다. 홈쇼핑의 결제 수단은 대부분 카드였다. 2004년 홈쇼핑 업계는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하게 된다.

CJ홈쇼핑은 발 빠르게 글로벌 시장으로 눈길을 돌린다. 2003년 8월 중국 상하이에 합작회사인 ‘동방CJ홈쇼핑’을 설립했다. 박영암 CJ홈쇼핑 상무는 “시장잠재력이 크고 문화가 유사한 중국 시장에선 다른 나라보다 훨씬 경쟁력이 있다고 평가해 중국에 진출했다. 동방CJ홈쇼핑은 2006년 흑자를 내기 시작할 정도로 단기간에 높은 성과를 올렸다”고 말했다. 동방CJ홈쇼핑은 지난해 매출 1천억원, 순이익 30억원을 올렸다.

GS홈쇼핑은 인터넷으로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인 GS이숍과 연계한 서비스도 진행 중이다. 조성구 GS홈쇼핑 상무는 “올해 3월 인터넷 종합 쇼핑몰 디앤샵을 인수했다. 기존 GS이숍과 함께 종합 쇼핑몰 업계 1·2위를 다투던 두 쇼핑몰을 모두 보유하게 된 셈이다. ‘넘버원 홈쇼핑’에서 ‘온라인 커머스 리더’로 사업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고 말했다.

상하이 진출하고 온라인몰 인수하고

GS홈쇼핑과 CJ홈쇼핑은 경쟁우위 상품에서 차이를 보인다. GS홈쇼핑의 경우 한때 같은 계열사였던 LG생활건강과 LG전자의 영향을 받아 화장품과 가전제품에 강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반면 CJ홈쇼핑은 모기업인 CJ의 영향으로 식품 부문을 잘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GS홈쇼핑이 올해 가장 많이 판 상품은 애경이 만든 화장품 ‘루나by조성아’였다. GS홈쇼핑 히트 상품 톱10 가운데 화장품이 5개나 차지한다. 화장품이 강세인 것은 홈쇼핑 이용 고객이 20∼30대 여성으로 젊어지고, 화장품은 방송에서 제품 설명과 시연이 쉽기 때문이다. CJ홈쇼핑에선 한방 샴푸 ‘댕기머리’가 3년째 선두 자리를 지키고 있다. 댕기머리는 미용실을 중심으로 입소문이 난 중소기업 제품을 발굴·판매해 대박을 터뜨린 상품이다. 안동 간고등어는 지난해 3위에서 2위로 올랐다. 제주은갈치와 해남고구마가 새롭게 4위와 10위에 오르면서 톱10 상품 중 세 가지가 식품이다.

현재 두 회사는 토크쇼와 뉴스 형식을 빌린 새로운 쇼핑 프로그램을 속속 내놓고 있다.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라는 홈쇼핑 형식에서 벗어나 재미와 정보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다.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프리미엄 브랜드를 잇달아 선보이며 상품 고급화에도 나서고 있다.

앞으로 CJ홈쇼핑과 GS홈쇼핑은 인터넷TV(IPTV)와 인터넷, 휴대전화 등 디지털 뉴미디어에서 신성장 동력을 찾으려 한다. TV홈쇼핑에서 쌓은 노하우로 디지털 매체에 맞는 쇼핑 문화를 선보여 새로운 ‘단골’을 데려와야 한다. 두 회사 가운데 어느 집 앞이 고객들로 북적거리게 될까?



숨어 있는 1인치 마케팅
오전 11시엔 저가품, 밤 11시엔 고가품

TV홈쇼핑 곳곳에 마케팅 전략이 녹아 있다. 홈쇼핑 업체들은 철저한 분석과 통계로 고객에게 다가간다.
홈쇼핑의 골든 타임은 오전 11시대다. 주 고객인 주부가 편안히 쇼핑을 즐길 수 있는 시간대다. 주문량이 가장 많은 때이기도 하다. 하지만 홈쇼핑 업체들은 이 시간대에 가격이 저렴한 제품을 많이 내놓는다. 고가품일 경우 주부 혼자 결정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황규란 GS홈쇼핑 과장은 “고가품을 주로 내놓는 시간은 밤 11시대다. 공중파의 드라마가 끝난 뒤다. 아내와 남편이 홈쇼핑을 보면 함께 구매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홈쇼핑 업체들은 오전 11시대에는 실속형 생활용품을, 밤 11시대에는 가전이나 컴퓨터를 집중 편성한다.
음악에도 과학이 실려 있다. 홈쇼핑 고객의 구매욕을 가장 자극하는 음악은 ‘귀에 익숙한 리메이크 댄스곡’이다. 주 고객층이 30대 주부들이기 때문이다. 최신곡일 경우, 음악에 집중하느라 상품 집중도가 떨어질 수도 있다. 컴퓨터와 레포츠 상품에는 테크노, 패션 상품에는 펑키, 보석과 침구 상품에는 재즈가 주로 방송된다.
화면 배치는 어떨까? 시청자가 심리적으로 가장 안정감을 느끼는 삼각 구도로 상품을 늘어놓는다. 또 화면에서 아른거릴 수 있는 체크무늬나 줄무늬의 테이블보, 침구류 등은 자제한다. 빨강이나 노랑 등 원색도 화면에서 번져 보이기 때문에 잘 쓰지 않는다.
홈쇼핑의 일대일 맞춤형 마케팅도 눈에 띈다. GS홈쇼핑은 홈쇼핑에서 구입한 기저귀가 거의 떨어질 즈음, 고객에게 기저귀 상품 판매를 안내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준다. 구매한 기저귀의 양과 시기를 분석해 다음 구매 시기를 예측하는 것이다. 기저귀를 구입한 고객의 출산일을 거꾸로 예측한 뒤, 현재 자녀의 개월 수나 나이를 추산해 그때그때 필요한 상품을 문자메시지로 알려주기도 한다.
CJ홈쇼핑은 벤츠 등 고가의 차를 홈쇼핑으로 판매한다. 고객은 가계약금 20만원만 걸면 전국 어디에서나 시승차를 타볼 수 있다. 고객이 차를 사지 않으면 가계약금을 돌려받는다. 고객이 차를 타보기만 한 뒤 구매를 하지 않으면 손해가 아닐까? 김성중 CJ홈쇼핑 과장은 “꼭 손해만은 아니다. 차에 관심이 많은 고객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어 앞으로 맞춤형 마케팅 자료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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