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6월1일 교보문고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지하 1층, 2700평 매장은 단일 면적으로 세계 최대 규모였다. 서가 길이는 24.7km, 광활한 ‘책의 바다’였다.
평소 서점을 하고 싶었던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은 이날 교보생명 창립자인 신용호 회장의 손을 한참 동안 붙들고 있다가 “참 훌륭합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신 회장은 2차 대전 패전국인 독일과 일본이 눈부신 발전을 일궈낸 힘을 독서라고 여겼다고 한다.
한 해 전인 1980년, 광화문에 교보빌딩이 세워졌을 때 이 건물의 지하는 최대 관심사였다. 유동인구가 많은 이곳에 상가를 세우면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돈을 벌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지하 1층의 임대 요청은 줄을 잇고 있었다.
하지만 신 회장은 임직원들 앞에서 “서점을 차리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임직원들은 수익성이 없다며 반대했다. 당시 재무부도 반대했다. 서점에서 손해가 나면 모회사인 보험회사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신 회장은 “청소년의 정신역량을 키워놓고 생기는 손해는 내가 안고 가겠다”며 지하 1층을 서점으로 꾸몄다. 이곳을 찾는 방문객은 연간 4천만 명. 우리나라 인구수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현재는 전국 12개 도시에 교보문고가 세워졌다. 교보라는 브랜드는 ‘국민 책방’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인터넷 책방’의 시작도 지하였다. 1998년 6월 예스24는 서울 양재동 스포타임 빌딩 지하 1층 한켠 사무실에서 7명으로 출발했다. 그저 인터넷이 좋았고 책이 좋았던 사람들이었다. 도서 유통을 아는 사람도 없었다. 출판사에서 책을 구입해 고객에게 책을 잘 전해주면 끝나는 사업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때만 해도 생소한 인터넷 서점이다. 출판사들은 “듣도 보도 못한 회사에 책을 줄 수 없다”며 책을 내주지 않았다. 고심 끝에 예스24는 어음 결제를 없애고 현금 결제를 도입했다. 출판업계 최초였다.
유성식 예스24 멀티사업본부 본부장은 “임직원들이 좋은 책을 찾기 위해 1500여 군데 출판사를 돌아다녔다. 하지만 사업 얘기는 꺼내지도 못했다. 출판사 사람들은 술 한잔하자며 술집으로 손을 끌고 갔다. 술잔이 몇 순배 돌고 나서야 책을 달라고 할 수 있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창고에 없는 책이 접수되면 직원들이 직접 서점에서 책을 사다가 배송했다. 2000년대 초반 와 같은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나오거나 연말이나 새해, 방학 시즌에 돌입하면 직원 모두 물류센터로 출근했다. 넘쳐나는 주문 물량을 해소하기 위해 모두가 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려야 했던 시절이었다. 예스24는 듣도 보도 못했던 인터넷 서점이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있었다.
도전은 철저히 후발주자의 몫이다. 2000년대로 들면서 예스24와 알라딘 등 인터넷 서점들은 책값의 20~30%를 깎아주는 경쟁을 벌인다. 세계 최대 인터넷 서점인 아마존도 처음에는 그랬다. 일종의 바이러스 마케팅이다. “인터넷에서 책을 사면 싸다”는 것이 바이러스처럼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야 했다.
교보문고는 당시 참 곤혹스러웠다. 오프라인 서점들은 할인 공세에 도서정가제로 맞섰다. 하지만 교보문고는 이미 인터넷 서점도 운영하고 있었다. 어느 한쪽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애매한 처지였다. 디지털로 무장한 인터넷 서점의 앞선 서비스도 강력한 도전이었다. 예스24는 ‘블로그 서비스’ ‘마이 리스트’ ‘검색센터’를 잇따라 선보였다. 임수정 마케팅팀 파트장은 “이런 서비스를 통해 고객들의 커뮤니티가 형성되기 시작했고, 독자서평과 서로의 추천이 책을 선택하는 데 중요한 기준으로 떠오르게 됐다”고 강조했다.
교보는 2004년 개점 이래 최초로 광화문점 매출이 0.91% 줄었다. 인터넷 교보문고의 성장률도 최저(11.6%)였다. 장기 불황으로 서민들이 지갑을 열지 않았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온 위기였지만 교보문고는 ‘고객 가까이에서, 고객의 눈높이’로 서비스 수준을 높이며 위기를 헤쳐나간다. 류호광 교보문고 상무는 “영업점 곳곳에 고객들이 편하게 독서할 수 있도록 ‘고객 독서대’를 만들고, 첩첩이 쌓인 책 더미 속에서 고객에게 꼭 맞는 책을 찾아주는 북마스터(북컨설턴트) 서비스를 확대 강화했다”고 말했다.
예스24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가격할인 경쟁으로 매출은 늘었으나 수익은 마이너스였다. 2003년에는 100억원가량의 적자를 내면서 자본잠식 상태에 빠지게 된다. 팀장들이 자발적으로 임금을 깎는 등 비상경영 체제에 들어갔다. 이때 예스24를 인수한 것은 갭·아메리칸이글 등의 브랜드 옷을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으로 수출하는 한세실업이다. 김동녕 한세실업 회장은 예스24를 무려 9배의 프리미엄을 주고 인수했다. 김 회장의 처조카는 알라딘의 조유식 대표다. 예스24를 인수하기 전 김 회장은 조 대표와 만나 인터넷 서점에 관한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김 회장은 인터넷 서점의 미래 성장 가능성을 확신해 과감히 인수에 나섰다고 한다.
김 회장은 “예스24에 우수한 직원이 많아 놀랐다. 하지만 성장에만 치중하느라 경영 마인드는 약했다”며 회사의 경영 패러다임을 매출에서 손익으로 바꿨다. 책의 실제 판매량을 예측할 수 있도록 해 재고와 반품을 줄였고 물류를 개선해 물류비도 덜었다. 그는 한세실업의 직원을 단 한 명도 파견하지 않고 홀로 예스24에 와서 1년 만에 적자 기업을 흑자로 돌려놨다.
예스24와 한세실업의 기업문화도 다행히 비슷했다. 한세실업은 담당 팀장과 직원에게 업무권한을 대폭 위임하는 편이었는데, 예스24 역시 그랬다. 유성식 예스24 본부장은 “두 회사는 다른 회사에 견줘 기획부서가 거의 없는 편이다. 현장에 있는 사람이 가장 빠르게 잘 알고 있다고 보고 현장 실무자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였다. 비슷한 기업문화 덕에 온라인-오프라인 업체의 갈등은 예상과 달리 없었다”고 말했다.
‘떠나라 낯선 곳으로/ 그대 하루하루의/ 낯선 반복으로부터’ ‘가는 데까지 가거라/ 가다 막히면 앉아서 쉬거라/ 쉬다 보면 새 길이 보이리’ ‘사랑이여 건배하자/ 추락하는 모든 것들과/ 꽃피는 모든 것들을 위해.’
아이와 꿈 키울 공간 vs 문화포털광화문 교보생명 본사 외벽에 대형 글판이 걸리기 시작한 것은 1991년 1월이었다. 광화문 글판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시의성 있고 정감 어린 글귀로 삭막한 도심에서 문화의 오아시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외환위기로 전 국민이 실의에 빠져 있을 땐 우리 사회에 희망의 메시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현재는 서초동 교보타워를 비롯해 대전·인천·부산·광주·천안까지 교보생명 전국 7개 사옥으로 확대됐다. 정길정 교보문고 대리는 “2000년에는 2년 임기의 ‘광화문 글판’ 문안선정위원회가 출범하기도 했다. 작가, 교수, 언론인 등으로 꾸려진 선정위원회는 분기에 한 번 모여 문안 심의 및 선정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의 예스24지만 항상 아날로그와 소통하려 한다. 예스24는 2003년부터 200여 명의 독자들이 작가와 함께하는 문학캠프를 열고 있다. 교보문고와 같은 오프라인 서점에서 이뤄지는 문화행사를 할 수 없는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이 행사는 매년 진행한다. 김훈, 신경숙, 황석영, 공지영, 은희경 등 작가들이 독자들과 함께 금강산이나 지리산 등 문학적 장소에서 정기적인 만남을 열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저자 강연회를 매월 정기적으로 열어 고객과 소통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두 회사는 단순히 책을 파는 서점에서 벗어나려 한다. 교보문고는 부모가 아이의 손을 잡고 책을 즐기며 ‘꿈을 키우는’ 복합 지식문화 공간으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예스24는 책뿐만 아니라 공연, 영화, 이벤트 등 문화생활에 목말라 있는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든 쉬었다 갈 수 있는 문화포털 공간을 추구한다. 디지털의 속도와 아날로그의 추억에서 고객들은 어느 책방으로 발길을 옮겨야 할지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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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가 예스24 홈페이지에서 책을 산 뒤, 마우스로 결제를 클릭한다. 곧바로 컴퓨터 모니터 뒤편, 랜선을 따라 두 개의 주문 정보가 흐른다. 하나는 예스24의 메인 컴퓨터로 가서 그 사람의 결제 기록으로 남는다. 고객의 구매 패턴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정보가 된다. 또 다른 주문 정보는 랜선을 타고 경기 파주의 물류센터 컴퓨터로 간다. 축구장 넓이의 1.5배인 3천여 평의 물류창고 안에는 100만 권의 책이 있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만 240여 명이다. 주문서는 1시간마다 출력돼 물류센터 직원들 손으로 들어간다. 그 뒤 직원들이 주문지를 들고 직접 책을 고른다. 많이 팔리는 베스트셀러의 경우 자동으로 책을 찾아주는 디지털분류시스템(DAS)을 이용한다. 주문한 책을 다 찾으면 바코드 작업을 거쳐 박스 포장을 한 뒤 택배 차에 싣는다.
보통 하루 10만 권의 책이 이곳에서 전국으로 나간다. 근무시간 기준(17시간)으로, 1분당 98권이 보내지는 셈이다. 서울의 경우 오전 10시에 주문하면, 11시30분까지 박스로 포장이 완료되고, 낮 12시30분에 택배로 보내진 뒤, 오후 2시엔 택배 터미널에 모이고, 저녁 6~7시쯤 집에 배송 완료된다.
오프라인 매장의 책은 어떤 기준으로 전시될까. 교보문고 광화문점의 경우, 새로 나온 책들은 최소 2주 동안 진열을 한다. 진열 방법에는 평평한 진열대에 책을 눕혀 책표지를 보여주는 ‘표지 진열’과 책을 세워 책장에 꽂아 보여주는 ‘측면 진열’이 있다. 표지 진열하는 책이 사람들 눈에 잘 띄어 더 잘 팔린다. 광화문점의 경우 신간 평면 진열대 24개를 갖춰놓고 있다. 3개월 안에 1~2권 정도 팔리는 책은 대체로 측면으로 진열해놓는다.
뭐니뭐니 해도 잘 팔리는 명당 자리는 베스트셀러로 뽑힌 책들이 있는 곳이다. 경쟁이 치열하다. 그래서 교보문고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 몇 개의 적용 기준을 보자. 주문 한 건당 한 부만 인정한다. 기업이나 단체에서 300~500여 권을 한꺼번에 주문하더라도 한 권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동일인이나 같은 주소지, 서점 납품을 통한 판매는 반영하지 않는다. 특정 지점이나 특정 시간대, 특정 날짜에 집중 판매된 책도 분석해낸다. 사재기를 막기 위해서다. 인터넷 판매분(예약 판매 포함)은 발송된 것만 인정한다. 예약을 취소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스테디셀러는 출간 뒤 2년이 지난 책 가운데 베스트셀러 기준을 똑같이 적용해 집계한다.
서점을 찾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도 있다. 어린이 동화와 주부잡지, 건강·요리책 등은 서로 가까운 데 둔다. 엄마들이 아이들을 보며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참고서와 사전도 학생들의 동선을 고려해 가까이 갖춰놓는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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