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모직공업주식회사.’ 1954년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은 ‘공업’을 넣어 회사 이름을 지었다. 이 회장은 한 해 전 ‘제일제당공업주식회사’를 만들었다. 두 회사는 무역사업을 해왔던 삼성물산과는 사업 성격이나 규모가 전혀 달랐다. 대규모 자본과 노동력이 들어가는 제조업체였다. 당시 섬유는 지금의 반도체만큼이나 고부가 상품이었다. 양복지는 홍콩이나 마카오에서 수입해왔다. 마카오 양복 한 벌은 웬만한 봉급생활자의 월급 석 달치보다 비쌌다. ‘마카오 신사’라는 유행어까지 나왔다.
제일제당은 곧바로 흑자를 냈지만, 제일모직은 적자를 이어갔다. ‘비싸도 외제가 좋다’라는 인식이 팽배했을 때다. 이런 상황에서 제일모직은 ‘골덴텍스’ 신화를 만들어낸다. 이 회장은 기술자들에게 더 가는 실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늘수록 기술이 까다롭다. 56년 제일모직은 장미표 골덴텍스를 시장에 내놓는다. 장미는 이 회장이 좋아한 꽃이었다. 이 회장은 장미처럼 미려한 색상의 실을 기대했던 것이다. 회사를 설립하고 10년 뒤 이 회장은 “나는 제일모직의 설립을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회상했다 한다. 사업 초기 적자로 마음고생을 많이 한 이 회장은 그만큼 회사에 대해 애착심을 갖고 있었다.
‘반도패션’. LG패션의 첫 이름이었다. 구인회 LG그룹 회장은 53년 무역회사인 락희산업을 세웠다. 락희산업은 이듬해 사무실을 반도호텔(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로 옮긴다. 당시 반도호텔은 서울 최고의 호텔이었다. 해방이 되자 주한미군 군정장관인 하지 중장이 이곳에 숙소를 정했다. 여러 외국계 기업들이 이곳에 입주해 있었고 삼성물산도 사무실이 있을 만큼 우리나라 무역의 본산지였다.
신사복 갤럭시 대 마에스트로56년 락희산업은 회사 이름을 반도상사로 교체한다. 반도상사는 당시 수출 주력상품으로 각광받던 가발을 만들어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69년에는 부평공장을 세워 가발과 함께 청바지를 만들어 의류사업에 뛰어든다. 74년 서울 명동에 반도패션 1호점을 열었다. 수출에서 쌓은 경험과 기술로 당시 소규모 의상실 수준에 머물던 국내 패션사업을 한 단계 성숙시켰다. 고급 숙녀복도 만들어 멋쟁이 여성들의 잠들어 있던 심미안을 자극했다.
“70년대 말 반도 숙녀복 가운데 유별나게 인기가 좋았던 품목이 있었습니다. 겨울에 여자들이 입는 트렌치코트였습니다. 그 코트는 요즘 항공사 스튜어디스들이 겨울에 입는 코트를 연상시키는 그런 종류였습니다. 코트 스타일 번호가 5701이었는데, 고객이 백화점에서 그 코트를 찾을 때 5701을 달라고 했다 합니다. 따로 말하지 않아도 ‘5701이요!’ 하면 그걸로 통했다고 합니다.”(김인권 LG패션 팀장)
‘남자를 신사로 만드는’ 정장에서 두 회사는 1·2위를 다툰다. 편안하면서 몸에 착 달라붙는 옷을 만들기 위한 경쟁이다. 제일모직은 83년 ‘갤럭시’를 내놓는다. 2년에 걸친 치밀한 기획 준비 기간을 거쳤다. 갤럭시는 신사복 부문에서 한참 늦은 후발주자였으나 곧바로 남성복 1위 자리에 오른다. 갤럭시의 성공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체격과 취향에 맞춘 옷을 내놓은 데 있다. LG패션은 86년 ‘마에스트로’를 선보인다. 마에스트로는 ‘마스터피스 763’ 라인을 통해 고객에게 다가섰다. 기존 정장에 비해 어깨를 7mm, 가슴 부위는 6mm, 허리 라인은 3mm씩을 줄여 착용감이 좋고 날씬해 보이도록 했다.
캐주얼은 자전거 광고로 맞불캐주얼에서도 두 회사는 ‘빈폴’과 ‘헤지스’로 맞선다. 캐주얼 붐이 일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주 5일 근무제를 시작한 미국 실리콘밸리에서였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처럼, 금요일 일을 마치고 집에 가지 않고 곧바로 여행을 떠날 때 입을 수 있는 옷이다. 형식보다 창의성을 중시하고 실용적인 면을 우선하는 벤처회사의 사고방식이 캐주얼 시장 확대에 기여한 셈이다.
89년 나타난 빈폴은 자전거를 타고 가는 영국 신사의 모습으로 다가와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속으로 들어왔다’라는 광고 문구로 강한 인상을 남긴다. 빈폴은 미국 브랜드 폴로를 겨냥했지만 오히려 폴로를 뛰어넘어 캐주얼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LG패션의 헤지스는 2000년에 나왔다. 프로답게 일하면서 레저와 문화, 여가를 즐길 줄 아는 20~30대를 타깃으로 삼고 있다. 2004년 헤지스는 도발적인 광고를 내세우며 폴로와 빈폴에 도전장을 내민다. 헤지스 매장으로 들어간 여성이 빈폴 이미지의 자전거를 버려둔 채 가버리며 ‘굿바이 폴’이란 메시지를 던진다.
두 회사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위기에 대응한다. 80년대 들어 섬유산업은 사양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중국 등 후발 개도국들이 바짝 추격해오고 있었다. 제일모직은 새로운 먹을거리 사업을 찾아나선다. 이병철 회장이 그 변화를 주도했다. 86년 이 회장은 “직물과 패션은 업종상 성장 한계가 있다. 극단적으로 회사 생존의 한계가 있을지 모른다. 아예 새로운 업종으로 변신을 해보라”라고 지시한다. 이 회장이 타계하기 직전 제일모직은 석유화학사업에 참여한다. 제일모직 사람들은 이를 ‘선대회장이 남긴 마지막 유산’이라고 말한다.
제일모직이라는 회사가 사라질 뻔한 위기도 있었다. 94년 삼성그룹은 전자, 기계, 화학, 금융 등 4개 업종을 전문화하고 소비재와 경공업을 제외한다는 방침을 정한다. 때마침 제일제당도 계열 분리된다. 제일모직은 삼성물산 의류사업부에 통합된다는 확정되지 않는 말들이 나돌았다. 당시 이건희 삼성 회장은 “모직은 삼성의 명예다. 그 명예를 손상시키지 않도록 회사를 키워줬으면 좋겠다”는 말로 깔끔히 정리한다.
불황 극복 미래 전략도 차별화LG패션은 패션사업 전문화로 위기를 극복한다. 90년대 초 세계적인 경기 불황으로 의류업계는 극도의 불황을 겪는다. 의류업계의 불황은 이미 예고된 것이기도 했다. 서울올림픽 앞뒤로 수출 부진의 돌파구를 내수시장에서 찾으려 한 섬유수출 업체들이 의류사업에 대거 뛰어들었다. 의류업계 전체가 공급과잉과 과당경쟁, 그로 인한 판매 부진 등 악순환 속에 빠져들었다. 의류업계의 불황은 구조적 양상을 띠고 있었다.
LG패션은 수익성이 떨어지는 브랜드를 과감히 철수시켰다. 만시라스 등 10개 브랜드가 사라졌다. 대신 특화 브랜드를 집중 육성하기 위해 유통망을 재정비한다. 새로운 마케팅 방식으로 고객에게 다가선다. ‘적토마’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매장에서 고객이 찾는 사이즈나 색상이 없을 경우 즉시 인근 매장에서 제품을 구해 오토바이로 집까지 배달해주는 서비스다. 퀵서비스의 원조 격이었던 셈이다. 이렇게 2년 동안 경영혁신과 적극적인 고객밀착형 마케팅을 펼친 결과, 의류사업은 93년 말 매출 증가 15%를 기록하며 3년 만에 흑자로 돌아서는 성과를 올렸다.
두 회사의 미래 전략도 차이를 보인다. 제일모직은 다각화, LG패션은 집중화 전략이다. 제일모직은 의류뿐만 아니라 화학제품과 전자재료에도 패션을 입히고 있다. 김완수 제일모직 상무는 “패션과 화학·전자재료 분야에서 신사업 개발과 사업 다각화를 통해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휴대전화, 디지털TV, 냉장고 등 정보통신과 가전제품의 플라스틱 외장 케이스가 그것이다. 제일모직은 흠집이 잘 나지 않는 플라스틱을 개발해 ‘보르도TV’에 입혔다. 보르도가 LCD TV 1위에 오르게 하는 데 조연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라고 말했다. 제일모직의 지난해 매출액(3조1124억원) 비중은 화학재료(49.8%)와 패션(33.1%), 전자재료(14.2%) 차례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LG패션은 ‘패션’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LG패션은 패션 브랜드 가치를 세계적 수준으로 높여 2015년까지 매출 1천억원 이상 브랜드를 10개 이상 만들어낸다는 전략이다. 브랜드 매니지먼트 회사가 목표다. 신영식 LG패션 상무은 “단순한 의류업체가 아니라 파워 브랜드를 보유하고 관리하는 ‘매니지먼트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개별 브랜드의 역량을 높이기 위한 전략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서로 다른 전략으로 패션을 디자인하는 두 회사가 그려나갈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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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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