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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수 기업 열전] 지식인 장군이요, 아고라 멍군이요

10년간 넷 위에서 서로의 허를 찌르는 아이디어로 경쟁해온 다음 vs 네이버
등록 2008-09-10 11:46 수정 2020-05-03 04:25

2000년 4월14일 토요일치 경제면에 특종기사 하나가 실린다. ‘네이버컴, 3개 인터넷업체 합병… 이해진·김범수 공동대표.’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밋밋했다. 시장 반응은 차가웠다. 영원할 것 같은 닷컴 기업들이 하나둘씩 무너져 닷컴 거품이 꺼져갈 때였다. 각종 벤처 게이트도 여기저기서 쑥쑥 터져나왔다. 사람들은 고만고만한 기업의 인수·합병쯤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새 천년은 네이버엔 시련의 계절이었다. 당시 브랜드 가치 평가 기관인 브랜드스톡이 네티즌 대상으로 검색 포털 브랜드를 조사했다. 결과는 야후코리아가 전 부문에서 1위를 거머쥐었다. 만족도 부분에선 엠파스가 야후와 어깨를 겨뤘고, 인지도에선 라이코스가 2위, 한미르가 3위에 올랐다. 어디에서도 네이버는 없었다. 단지 82억원이라는 적자만이 있었을 뿐.

두 회사의 카페테리아에서 직원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다음·네이버 제공

두 회사의 카페테리아에서 직원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다음·네이버 제공

날개가 된 한게임, 국민 이메일 한메일

시장 환경도 좋지 않았다. 당시 흐름은 콘텐츠였다. 다음, 아이러브스쿨, 프리챌 등은 풍성한 콘텐츠와 새로운 커뮤니티 서비스를 내놓으면서 누리꾼을 불러모았다. 라이코스는 검은 개 한 마리가 검색어를 물어오는 광고로 치고 나왔다. 만화·영화·드라마와 같은 각종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도 올려놓았다. 네이버는 보여줄 콘텐츠가 없었다.

하지만 한게임과의 인수·합병은 네이버에 날개를 달아주게 된다. 마치 현재 네이버의 마스코트인 날개모자처럼. 두 회사의 합병은 검색업체와 게임업체의 만남 그 이상이었다. 합병 시너지는 크고 짭짤했다. 한게임 이용자들에게 네이버를 초기 화면으로 설정하도록 유도하는 마케팅은 방문자 수를 끌어올렸다. 한게임 유료화는 더 짭짤했다. 유료화 첫날 매출이 7천만원이었다. 닷컴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우려를 한 방에 날려버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네이버는 사행성 게임인 포커와 화투로 수익을 올린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00년 연말 하루 페이지뷰 1억, 회원 수 1500만 명을 넘어서며 네이버는 떠오른다. 하지만 네이버 앞에는 다음이 버티고 서 있었다.

1999년 ‘광개토대왕님, 야후는 다음이 꺾겠습니다’라는 문구를 내세우며 다음은 사람들에게 다가온다. 광고 문구처럼 다음은 야후를 꺾었다. 야후가 곧 인터넷으로 통했을 때였다. 웹브라우저를 움직일 때 야후가 안 뜨면 인터넷이 안 된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방문자 수와 가입자에서 야후를 꺾은 다음은 토종 포털이라는 이름도 덤으로 얻게 된다.

다음은 곧바로 또 큰일을 친다. 국민 이메일이라는 ‘한메일’ 서비스를 내놓은 것이다. 누리꾼들의 반향은 폭발적이었다. 공짜인데다, 세계 어느 곳에서나 누구에게도 편지를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뒤 아무도 빨간 우체통을 거들떠보지 않게 됐다.

한메일 서비스를 시작한 지 1년 만인 98년 가입자 수는 100만 명을 넘어섰다. 다음은 한메일에 이어 또 하나의 히트작을 내놓는다. 다음 카페가 바로 그것이다. 다음 카페는 PC통신의 커뮤니티를 웹으로 옮겨놓은 서비스였다. 곧 하이텔·유니텔과 같은 PC통신들은 전멸한다. 사람들은 넷으로 정보를 얻고 소통하게 됐다.

한때 4등 기업에서 한게임과의 합병으로 올라선 네이버와 세계 최대 검색업체 야후를 꺾은 다음은 1위 자리를 놓고 맞붙는다. 다음은 네이버 앞에 무너진다. 네이버가 잘한 것도 있지만 다음이 못했다는 편이 맞는 말이다.

두 회사의 전략은 달랐다. 네이버는 잘하는 곳, 핵심 역량에 집중했다. ‘이주의 검색어’ ‘실시간 인기검색어’와 같은 서비스를 속속 내놓았다. 뼈아픈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네이버가 검색에서 다른 쪽 사업으로 눈길을 돌리려 할 때 엠파스는 ‘야후에서 못 찾으면 엠파스’를 기치로 자연어 검색 서비스를 들고 나왔다. 네이버는 한때 휘청했었다.

“답답한 대기업 나와서 벤처하자” 제안

다음은 야후를 제치며 1등 자리에 올랐다. 2003년 다음 회원 수는 3400만 명에 이르렀다. 주가가 20만원에 육박했다. 사업도 이것저것 벌였다. 보험, 쇼핑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했다. 2004년에는 미국의 라이코스를 약 1112억원에 사들이는 대형 사고를 쳤다. 하지만 실수였다. 다음은 시장의 신뢰를 잃고 추락한다. 2005년 6월에는 주가가 1만6천원까지 떨어졌다. 다음은 네이버에 1등 자리를 내주게 된다.

전지현이 날개모자를 쓰고 나왔던 네이버 광고(왼쪽/네이버 제공). 야후를 꺾겠다는 도전적인 광고 다음 (다음 제공).

전지현이 날개모자를 쓰고 나왔던 네이버 광고(왼쪽/네이버 제공). 야후를 꺾겠다는 도전적인 광고 다음 (다음 제공).

사실 다음 창업자인 이재웅 전 다음 대표와 네이버 창업자인 이해진 의장은 서로 친구다. 고등학교 때 같은 아파트 아래윗집에 살았다. 벤처기업을 먼저 차린 이 전 대표가 이 의장한테 “답답한 대기업에 묻혀 있지 말고 나와서 벤처를 해보는 게 어떠냐”고 제의했고, 이 의장은 잘나가던 삼성SDS에서 나와 네이버를 세웠다.

두 사람은 닷컴 시장의 젊은 개척자였다. 이 전 대표는 프랑스에서 유학하다 노엄 촘스키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인터넷을 떠올린다. 곧바로 귀국해 부모에게 빌린 돈 5천만원을 갖고 달랑 친구 3명과 함께 다음을 만들었다. 다음은 ‘다음 세대’라고 할 때처럼 ‘넥스트’(Next)란 뜻과 ‘다양한 목소리’(多音)의 공간이란 뜻을 함께 갖고 있다. 다음 카페 역시 이 전 대표가 프랑스에서 소통의 공간인 노천카페를 보고 따왔다.

이 의장도 삼성SDS에서 검색엔진을 개발하던 동료 5명과 함께 대기업을 박차고 나와 회사를 만들었다. 3억5천만원의 퇴직금이 사업 종자돈이었다. 네이버는 항해자를 뜻하는 내비게이터(Navigator)의 앞글자에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er’를 붙여 만든 이름이다. 네이버의 공식 회사명인 NHN은 ‘넥스트 휴먼 네트웍스’(Next Human Network)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들었다.

두 회사가 다시 맞부딪친 것은 촛불 정국에서였다. 다음의 아고라에 불이 붙었다. 하지만 네이버의 검색은 가라앉았다. 다음은 아고라에서 펄펄 뛰는 네티즌들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소통의 장을 마련했다. 하지만 네이버 뉴스는 촛불집회와 관련해 정보와 뉴스를 잘 전달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두 회사의 기업 전략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네이버가 정보유통 채널을 지향하는 반면, 다음은 이용자의 생생한 정보를 전달하며 참여와 토론, 소통의 장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촛불 정국에서 넷심은 다음을 선택했고, 다음은 주가도 따라 올랐다.

사회공헌도 경쟁하며 다음 세대를 향해

10년이라는 짧은 역사지만 이들은 사회공헌 활동도 활발하게 벌인다. 정지은 다음 커뮤니케이션팀장은 “다음은 인터넷 업계에서 유일하게 비영리 문화재단인 다음세대 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이 재단은 지난 2001년 기부 문화 확산을 위해 다음의 주주·임직원들이 스톡옵션, 주식 등을 기부해 설립했다”고 말했다. 이 재단은 지금까지 130여 개 문화 사업을 지원했다. 원윤식 네이버 언론홍보팀장은 “네이버는 2004년 2월 사회공헌팀을 만들고 2005년에는 ‘아름다운 재단’과 함께 국내 최초로 ‘기부’를 모토로 한 포털 서비스 해피빈을 출범시켰다”고 말했다. 네이버는 지난 2005년 55억원을 기부했다.

10년이라는 짧은 기간, 두 기업은 1등을 놓고 엎치락뒤치락했다. 두 회사의 사명에는 모두 ‘넥스트’(Next)라는 뜻이 감춰져 있다. 그렇다면 ‘넥스트 10년’에는 누가 앞설지에 관심이 쏠린다. 넷심을 잘 읽고 이들을 위한 서비스를 치고 나오는 쪽일 것이다.


홍보팀장 맞짱 토크

네이버는 평정했고 다음은 진보라니요?

원윤식 네이버 언론홍보팀장(왼쪽)과 정지은 다음 커뮤니케이션팀장.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원윤식 네이버 언론홍보팀장(왼쪽)과 정지은 다음 커뮤니케이션팀장.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네이버는 삼성 같고, 다음은 현대 같다’는 말이 있다. 네이버는 자신이 잘하는 분야에 집중하며 사업도 조심조심 차분하게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다음은 현대처럼 큰일을 펑펑 잘 터트려 그런 말을 듣는다.
그런데 원윤식 네이버 언론홍보팀장(왼쪽)과 정지은 다음 커뮤니케이션팀장은 정반대다. 원 팀장은 현대 출신이고, 정 팀장은 삼성 출신이다. 8월10일 두 사람은 회의실에서 맞장 토론을 벌였다. 두 사람 모두 언론에 나와 직접 토론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홍보쟁이’ 아니랄까봐 말을 술술 잘했다.
처음부터 어려운 질문을 꺼냈다. “포털은 권력이란 말이 있다. 뉴스 편집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포털이 대통령을 만든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처음부터 센 질문을 받은 두 사람은 처음엔 당황한 듯했다. 하지만 곧바로 차분히 정리해나갔다. 먼저 원 팀장. “네이버는 권력을 얻기 위해 뉴스 서비스를 하는 게 아니라 이용자에게 정보를 주기 위해 서비스를 하고 있다. 하지만 뉴스 편집권에 대해 말들이 많다. 그래서 내년 1월부터 이용자들이 직접 뉴스 편집을 할 수 있는 서비스로 전환할 계획이다.” 정 팀장이 받았다. “다음은 이용자들이 서로 소통하고 정보를 공유하기 위한 장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추구할 뿐이다. 이용자들이 어젠다(의제)를 만든다. 다음이 직접 어젠다를 만들지는 않는다.”
독자들이 궁금할 것 같은 질문을 던졌다. “뉴스 메인화면에서 기사 배치는 어떤 기준으로 하나?”
정 팀장은 “공정하고 중립적인 서비스 운영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원 팀장도 “편집팀이 있어 자체 기준을 갖고 배치를 한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구체적인 편집 지침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두 기업의 이미지에 관해 물어봤다. “네이버는 실용·편리라는 이미지, 다음은 친근·유쾌라는 이미지가 있는 것 같다. 어떤 이들은 네이버가 보수적이고 다음은 진보적이라고 하는데?”
원 팀장이 펄쩍 뛰었다. “그렇지 않다. 진보와 보수의 스펙트럼을 1~10으로 놓고 본다면 네이버는 딱 5다. 중도다. 무색·무미·무취한 것이 포털의 특성이다.” 정 팀장도 비슷한 톤이었다. “기업이기 때문에 정치적 성향을 가질 수는 없다. 다만 기업 철학이 즐겁게 세상을 바꾸자는 것인데, 뭔가 변화를 추구한다는 측면에선 진보적이다. 하지만 정치적인 진보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홍보팀장들에게 더 곤혹스러운 질문을 던졌다. “촛불집회 때 네이버와 다음은 네티즌들에게서 서로 다른 평가를 받은 것 같은데?”
정 팀장. “이용자들이 아고라의 토론 서비스를 활발하게 이용해주고 사랑해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다음이 네티즌을 움직인다는 비판이 있었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다. 다음은 장터를 마련해준 것뿐이다.” 원 팀장. “이용자들의 신뢰를 지키기 위해 중립적인 대응을 했다. 하지만 일부 오해도 있었다. ‘네이버를 평정했다’는 발언이 있었다. 그런 말을 한 여당 정치인에 소송을 걸었다. 신뢰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회사가 가장 힘들 때는 어떨 때인가”를 묻자, 원 팀장이 받았다. “항상 힘들다. 계속적으로 뭔가 보여줘야 한다. 네이버에 대한 시선과 관심이 많다 보니 정치적인 문제나 저작권 같은 법적 문제에도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정 팀장. “한때 우리는 1등에 안주했다. 그러다 네이버에 1등을 내줬다. 이제 우리가 1등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서비스를 잘 못하면 이용자가 떠나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다. 지금이 힘들지만, 2등은 1등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기는 곧 기회다.”
맞장 토론은 ‘소주 한잔’으로 이어졌다. 두 사람은 맞수 기업의 홍보팀장이었지만, 술자리에선 사교육비, 건강, 집값 얘기를 늘어놓았다. 영락없는 30대 후반의 전형적인 직장인이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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