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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자 기업만 좋은 기업인가

등록 2008-01-11 00:00 수정 2020-05-03 04:25

경제적 부가가치는 순이익·급여·법인세 합친 것…적자 기업도 사회에 기여한다

▣ 정남구 한겨레 논설위원 jeje@hani.co.kr

1997년 말 겪은 외환위기는 많은 이들에게 크나큰 고통을 안겼다. 실업과 고용불안, 자산 가격의 폭락은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을 그 후유증에 신음하게 하고 있다. 그뿐 아니다. 정부는 모두 168조원에 이르는 공적자금을 금융기관에 투입했다. 그 가운데 지금까지 89조원을 회수했을 뿐이다. 회수하지 못하는 돈과 투입한 공적자금의 이자의 상당 부분은 국민이 세금으로 떠안아야 한다. 공적자금 투입의 이런 뼈아픈 경험은 ‘수익을 많이 내는 기업이 좋은 기업’이라는 인식을 알게 모르게 사람들의 머릿속에 깊이 심어놓았다.

공적자금에 대한 오해

기업이 수익을 많이 내는 것을 나쁘게 볼 이유는 물론 없다. 그러나 순이익이 기업 활동의 유일한 성과물은 아니다. 기업은 노동과 자본을 결합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조직이다. 그 부가가치는 노동의 몫과 자본의 몫으로 각각 분배된다. 노동의 몫이 임금이고, 자본의 몫이 순이익이다. 자본의 몫에 대해서는 그 일부가 세금(법인세)으로 공동체에 귀속된다. 급여와 순이익, 법인세를 합친 것을 ‘경제적 부가가치’라고 하는데, 이 경제적 부가가치야말로 기업이 사회에 기여하는 바를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수치라 할 수 있다.

기업이라면 당연히 흑자를 내야 할 것 같지만, 사실 흑자를 내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국세청 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법인 기업 셋 중 하나가 적자를 낸다. 창업 초기 단계부터 곧바로 흑자를 내는 기업은 많지 않다. 경기가 나빠지면 괜찮은 기업들도 적자를 내는 일이 흔하다. 하지만 적자를 낸 기업들도 노동자에게 일자리와 급여를 제공하므로 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있다.

적자를 내는 기업이 문제라는 생각은 공적자금에 대한 오해에 뿌리를 두고 있다. 기업이 파산했다고 해서,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 기업에 무리하게 돈을 빌려준 채권자들이 돈을 못 받게 될 뿐이다. 채권자인 금융회사가 부실해지면 극단적인 경우 금융회사도 파산할 수 있고, 또 그 금융회사의 채권자들 가운데도 돈을 떼이는 곳이 생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가가 나설 이유는 없다. 다만, 이런 상황을 방치할 수 없는 때가 있다. 외환위기 때는 금융기관이 부실화돼 연쇄 파산하면서 경제 시스템 전체가 무너질 위험이 컸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공적자금을 투입했던 것이다. 미국에서도 1980년대 저축대부조합의 연쇄 파산 때, 그리고 1998년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가 파산 위기에 처했을 때 공적자금을 투입한 적이 있다. 그런 일을 막기 위해 기업 회계를 투명하게 하도록 요구하고,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정부가 관리한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 삼성전자의 경제적 부가가치는 얼마나 될까? 삼성전자는 2006 회계연도에 7조9260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또 8만2909명(평균 인원)의 노동자에게 모두 4조4151억원의 급여를 지급했고, 법인세로 1조2901억원을 냈다. 삼성전자가 창출한 경제적 부가가치는 13조6312억원이다. 이 가운데 58%가 주주에게 돌아갔고 32%가 노동자에게, 그리고 나머지 10%가 세금으로 분배됐다. 기업이 주주 몫인 순이익을 늘리는 과정에서 더 많은 고용을 창출하고, 더 많은 세금을 내게 되는 것이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일이다.

외국계 기업의 경우는 어떨까?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사가 최대주주인 에쓰오일(S-oil)은 2006년 7585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2348명의 노동자에게 돌아간 임금(복리후생비는 제외)은 1389억원이다. 법인세는 2961억원을 냈다. 에쓰오일이 창출한 경제적 부가가치의 36.4%가 노동자와 국가에 돌아갔으니 주주 몫을 빼고도 우리 사회에 큰 기여를 한 셈이다.

협력업체, 또다른 부가가치

에쓰오일은 경영권을 가진 최대주주가 외국계라는 점에서 삼성전자와 다르지만 외국 자본의 지분 비율은 2008년 1월2일 현재 삼성전자가 46.9%, 에쓰오일이 47.2%로 비슷하다. 주주 몫 가운데서도 한국인 주주에게 돌아가는 몫은 별 차이가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기업의 경영권이 외국 기업에 넘어가는 것에 부정적인 시각이 있는 것은 왜일까? 하나는 노무관리에 대한 우려다. 주주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고용이나 급여를 줄이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있다. 배당 정책을 둘러싸고도 미묘한 시각차가 생길 수 있다. 삼성전자는 2006년 순이익의 9.4%를 배당하고 나머지는 이익잉여금으로 쌓았다. 재투자에 쓴 것이다. 에쓰오일의 경우는 순이익의 32%를 배당했다. 외국계 기업 가운데는 재투자보다는 고배당 정책을 써서 투자금을 서둘러 회수하려고 시도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기업은 직접적으로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할 뿐 아니라, 부품업체·협력업체가 또다른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도 간접적인 기여를 한다. 기부금을 내 별도의 ‘사회공헌’ 활동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기업들은 아직 ‘사회공헌’ 활동이 활발하지 않은 편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2006년에 1752억원의 기부금을 냈으나, 이건희 장학기금 출연 등을 뺀 순수한 의미의 사회공헌 기금은 그리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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