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소득 증가가 고성장 이룬다는 진리를 망각하고 기업·주주 이익 극대화로
▣ 정남구 한겨레 논설위원 jeje@hani.co.kr
‘자동차 왕’ 헨리 포드의 위대함은 효율적인 대량생산 공정을 만들어낸 데 그치지 않는다. 차를 팔려면 노동자들이 차를 살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걸 깨닫고, 이를 앞장서 실행에 옮긴 것이야말로 그를 더욱 빛나게 한다. 포드식 사고의 바탕 위에서 미국은 고성장을 이뤘고, 중산층도 두터워졌다.
외환위기는 운이 나빴던 탓인가
오늘날 지구촌을 지배하는 기업가와 국가 지도자들은 그를 잊은 지 오래다. 기업가들은 저임금을 찾아 온 지구를 떠돌고, 국가 지도자들은 떠나려는 기업들을 붙잡거나 투자기업을 유치하려고 누가 노동자들을 더 잘 쥐어짤 수 있는지 다툰다. 그 결과는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몫이 쉼없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레이건과 영국의 대처 정부에 의해 그런 정책이 본격화한 1983년부터 2006년 사이 서방 선진 7개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임금 비율은 5.8%포인트 줄었다. 그만큼의 몫이 주주에게 돌아갔다. 대처는 “모두가 주주가 되라”고 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주식을 잘 고르는 능력을 키우는 일은 노동의 숙련도를 높이는 일처럼 생산적이지 못하다. 주주에게 돌아가는 몫이 커질수록 주식은 소수 부자의 손에 더욱 쏠리기 마련이다. 기업들은 노동자에게서 혁신의 동력을 찾기보다는 저임금을 찾아 자꾸만 외국으로 떠나고, 악순환은 되풀이됐다. 저성장은 경제의 체질로 굳었고, 소득 격차가 커지고 빈곤이 늘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세계화’를 앞세우기 시작한 것은 김영삼 정부였다. 김영삼 정부 말기에 우리 경제가 외환위기를 맞은 것은 단순히 운이 나빴던 탓만은 아니다. 그래도 ‘국가경쟁력 강화’를 내세워 임금을 깎고, 세금을 줄이는 일이 본격화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맞아 국제통화기금의 구제금융을 받는 조건으로 김대중 정부가 시행한 정책들은 1980년대 초반 이후 레이건·대처가 추진한 정책을 고스란히 따른 것이었다. 결과는 서방 선진국들과 똑같았다. 1996년 63.4%이던 우리나라의 노동소득 분배율은 2002년 58.2%로 5.2%포인트나 떨어졌다. 그래도 김대중 정부 시절 가계는 저금리를 등에 업고 빚을 내서 소비를 하면서, 내수를 떠받쳤다.
내수 부진의 골은 노무현의 참여정부 들어 더욱 깊어졌다. 역시 노동자들의 소득 부진에 그 원인이 있다. 2003~2006년에 우리나라의 민간소비 증가율은 한 번도 경제성장률 수준을 웃돈 적이 없다. 도시근로자 가구의 실질소득 증가율이 경제성장률의 절반에 불과한 상황에서 소비가 활발하게 이뤄지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가계의 소비 여력 부족은 특히 자영업자들에게 큰 어려움을 안겨줬다. 정부는 내수 부진을 수출로 만회하려고 애썼다. 이를 위해 환율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려고 외환시장에 적극 개입하다 수조원을 날리기도 했다. 높은 환율은 소비자물가를 끌어올리고 가계의 실질소득을 갉아먹는다. 고환율 정책이 펼쳐진 2003년과 2004년 소비자물가는 3.5%나 올랐다.
참여정부 들어 2006년까지 노동소득 분배율은 3.2%포인트 다시 높아졌다. 하지만 노동자들에게 돌아간 몫이 커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2002~2006년에 자영업 부문 종사자가 전체 취업자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6.0%에서 32.8%로 급감했다. 반대로 취업자 중 임금근로자의 비율이 그만큼 늘었다. 결국 주주의 몫이 노동자에게 넘어간 게 아니라, 자영업자의 몫으로 계산되던 것이 노동자의 몫으로 옮겨간 계정상의 차이가 생겼을 뿐이다.
레이건·대처의 악몽 속으로
이명박 정부는 경제를 살릴 것이라는 기대를 등에 업고 출범했다. 그런데 그 철학은 역대 어느 정부보다 레이건·대처 정부의 것과 닮았다. 구호조차도 비슷하다.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기업의 세금 부담을 덜고, 각종 규제를 없애며, 노동조합의 불법행위를 엄단한다는 것이다. 투자를 살려, 일자리를 늘림으로써 문제를 풀겠다는 것이다. 새 정부는 기업의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0%까지 내리기로 했다. 세율 인하가 마무리되면 현재 가치로 연간 6조원의 돈이 기업에 돌아간다. 1200여 개 기업이 감세 혜택의 75%를 차지하게 된다. 주주들의 배당소득이나 주식 평가익은 늘어날 것이나, 그것이 소비로 연결되기는 어렵다. 상장사 지분의 3분의 1을 외국인이 갖고 있고, 재벌 총수나 주식 부자들은 소비 성향이 아주 낮기 때문이다.
내수 소비가 활성화되려면 가계의 소득이 늘어야 한다. 무엇보다 실질임금 증가율이 최소한 경제성장률 수준으로는 올라야 한다. 새 정부는 참고 기다리라고 말한다. 서방 선진 7개국 노동자들은 20년 넘게 기다렸지만, 인내의 열매는 달지 않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올해 적정 임금 인상률을 2.6%로 정해 회원사에 권고했다. 3%를 크게 웃도는 물가상승률을 고려해보면, 실질임금을 오히려 낮추라는 얘기다. 노동조합에 적대적인 이명박 정부가 임금 인상에 호의적일 리는 없다. 헨리 포드가 이미 100여 년 전에 알고 있던 상식을 우리나라의 지도자들이 깨달을 날은 과연 언제일까?
*‘정남구의 스토리 경제학’을 이번호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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