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경제 예측은 왜 자꾸 빗나가나

등록 2007-09-14 00:00 수정 2020-05-03 04:25

정부 정책 등의 변수 때문에 정확히 맞히기는 무리…현재 어느 국면에 있는지 파악하는 게 더 중요

▣ 정남구 한겨레 논설위원 jeje@hani.co.kr

2001년 말, 국책연구소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02년 우리 경제의 성장률이 5.8%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2002년 실제 성장률은 그보다 꽤 높은 7.0%에 이르렀다. 2003년 성장률은 5.3%가 될 것으로 전망했으나 이번에는 전망치보다 크게 낮은 3.1% 성장에 그쳤다. 박사급 연구원 수십 명이 달라붙어 예측을 했는데도, 전망이 크게 빗나간 것이다. 언론은 연구소들의 예측이 엉망이라며 비판의 펜을 휘둘렀지만, 사실 1년 전에 이듬해 성장률 수치를 정확히 맞히라는 건 무리다.

예측 자체가 경기에 영향 주기도

KDI의 경제 전망이 빗나간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예상과 달랐던 ‘정부 정책’ 탓이었다. 대통령 선거가 있던 그해, 정부는 강력한 경기부양 정책을 썼다. 무엇보다 신용카드 사용액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 경제 전망을 빗나가게 했다. 소비가 활기를 띠면서 성장률은 예상보다 높아졌지만, 그 후유증은 이듬해 곧 나타나 경제 전망을 또 한 번 빗나가게 했다. 신용카드사들이 카드 사용 한도를 대폭 줄이면서 신용불량자가 늘었고, 소비는 급격히 위축됐다. 예측하기 어려웠던 변수가 나타나면, 전망은 수정해야 한다.

경제 예측이 빗나가는 이유는 이 밖에도 많다. 2003년 말 경제관리들은 신용카드 사용액이 빠르게 늘고 있음을 기자들에게 넌지시 알렸다. 계속 줄어들기만 하던 신용카드 사용액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것은 언론이 관심을 갖기에 충분했다. 소비 회복의 청신호로 해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소비지표는 몇 달이 지나도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소비자들이 소비액은 늘리지 않고, 다만 결제 수단으로 현금보다 신용카드를 더 선호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신용카드 사용액에 대해 연말 세금정산 때 공제를 해주니, 한 푼이라도 절세를 하기 위해 신용카드를 더 쓴 것이다. ‘신용카드 사용액의 증가는 소비 증가를 예고한다’는 과거 등식이 더 이상 맞지 않아 예측이 틀렸던 것이다.

사회과학의 실험실은 통제돼 있지 않다. 예측 자체가 실제 움직임에 영향을 주기까지 한다.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는 예측은 경제 주체들을 고무한다. 그것이 소비와 투자를 늘려 실제 경기를 더 좋게 만들 수도 있다. 그래서 ‘경제는 심리’라는 말도 있다. 이런 심리적 요인을 배제한다면, 예측은 경제의 움직임에 일정한 패턴이 있음을 전제로 이뤄진다.

제조업의 경우 재고와 출하의 추이를 보고 경기가 좋아질지 나빠질지를 점쳐볼 수 있다. 재고가 바닥에 이르고 출하가 늘기 시작한다면 경기는 회복세로 돌아설 것이고, 반대로 출하는 더 이상 늘지 않고 재고가 쌓여간다면 경기는 나빠질 것이다. 주택 건설 경기도 분양 주택 수를 출하로, 미분양 주택을 재고로 보고 예측할 수 있다. 미분양 주택이 계속 쌓여가는 것은, 주택 경기가 계속 둔화돼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3~6개월 뒤 종합적인 경기상황을 예고하는 지표가 경기선행지수다. 이 지표는 앞에서 말한 재고순환지표뿐 아니라, 구직·구인 비율, 소비자 기대지수, 기계수주액, 자본재수입액, 건설수주액, 종합주가지수, 금융기관 유동성, 장단기 금리차, 순상품 교역조건 등 모두 10개 지표를 종합해 만든다. 기업들의 구인이 늘어나면 기업 활동은 활발해질 것이다. 소비자가 앞으로의 경기상황이나 자신의 소득, 소비지출 전망을 좋게 본다면 소비가 늘어날 것이다. 기계 수주액이 많거나 자본재 수입이 많아지는 것은 투자 활동이 활발해질 것임을 예고한다. 건설 수주가 많다면 건설 경기가 활성화될 것이다. 선행지수는 이처럼 생산, 투자, 소비가 어떻게 움직일지를 점칠 수 있는 개별 지표를 종합한 것이다.

본격적 상승세로 들어서려면?

하지만 신용카드 사용액이 늘어도 소비 회복과는 무관한 일이 있는 것처럼 경제지표를 해석할 때는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예컨대 다른 변수는 변하지 않는데, 종합주가지수가 큰 폭으로 오를 경우 선행지수는 상승한다. 그런 일이 몇 달 이어졌다고 해서 경기가 반드시 회복될까? 주가는 경기와 무관한 이유로 오르내릴 수 있다. 경기가 좋아지기보다는 주가가 다시 떨어지는 일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소비자 기대지수도 논란이 많다. 통계청은 소비자 기대지수의 증감과 실제 소비 사이에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강조하지만, 소비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기대지수가 소비의 선행지표로 별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소비자는 경기 예측 능력이 낮아 언론이 경기 전망을 어떻게 보도하느냐에 따라 대답이 흔들릴 수 있다.

예측이나 전망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경기가 ‘회복’하든 ‘후퇴’하든 긴 흐름에서 현재 어느 국면에 있는지, 회복이나 후퇴의 세기는 어느 정도인지를 먼저 파악하는 일이다. 2000년 정보기술 거품 붕괴 뒤 우리나라 경기는 2005년 초부터 상승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반짝 상승 뒤 반짝 후퇴를 거듭하며, 상승세가 매우 완만하다. 가계 소득의 증가 속도가 성장률을 밑돌고, 부채가 늘어 이자 부담도 커서 소비 여력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소비 증가를 바탕으로 경기가 본격적인 상승세로 들어서려면,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