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 미국의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로 가치 하락… 이대로 누적되면 머잖아 붕괴할 수도</font>
▣ 정남구 한겨레 논설위원 jeje@hani.co.kr
달러는 ‘미국의 통화’에 머물지 않고, 국제 결제나 금융거래의 기본이 되는 통화다. 세계 3대 석유시장의 결제가 모두 달러로만 이뤄지는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국내총생산(GDP) 합계의 무려 40% 가까이를 점하는 거대한 미국 경제는 달러가치를 뒷받침하는 힘이다. 미국은 달러의 발권국으로서 알게 모르게 많은 이득을 얻고 있다. 몇 푼 들이지 않고 찍어낸 달러를 외국에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만으로도 연간 100억달러 이상의 이득을 얻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도 무제한의 무이자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해 갖고 있는 셈이다. 그 달러의 가치가 최근 몇 년 새 쉼 없이 떨어지고 있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달러가치 떠받쳐
달러와 유로의 가치를 비교해보자. 2002년 초만 해도 1유로는 0.9달러면 살 수 있었다. 지금은 1유로를 사려면 1.4달러를 내야 한다. 그사이 유로는 달러에 견줘 가치가 50% 이상 높아졌다. 달러는 2004년 말부터 2005년 말 사이에 유로에 견줘 잠시 강세로 돌아선 적이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기준금리를 계속 올리던 무렵이다. 그러나 유럽중앙은행이 미국을 뒤따라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유로화의 강세는 다시 이어졌다. 게다가 지난 9월18일 미국 연준이 4년 만에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내리자 달러가치는 더욱 떨어지고, 유로화 가치는 사상 최고치로 치솟았다.
유로와 달러를 보면, 금리가 그 나라 통화가치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금리는 어떻게 환율을 움직이는가? 채권시장에 참여하는 국제 금융시장의 투자자들은 상대적으로 금리가 더 높은 채권을 사서 수익률을 높이려고 한다. 예컨대,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려 미국 국채의 수익률이 오르면 투자자들은 미국 채권을 사기 위해 달러를 필요로 한다. 달러 수요가 늘어나니 달러값은 오른다. 즉, 금리 인상은 그 나라 통화가치를 끌어올리는 요인이 된다. 최근 몇 해 동안 달러에 견줘 일본 엔화가 약세를 보인 것도, 미국이 금리를 올린 데 반해 일본은 금리를 올리지 않은 탓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처럼, 채권시장이 크지 않고 외국인 투자자들의 채권시장 참가도 많지 않은 나라에서는 금리가 환율에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1997년 외환위기 때 국제통화기금(IMF)은 우리나라한테 콜금리를 급격히 올리도록 요구했다. 금리를 올려야 달러가 들어온다는 논리였다. 실제로 고금리 정책이 시행돼, 연 30%가 넘는 초고금리 시대가 한동안 이어졌다. 하지만 고금리 한국 채권을 사려고 달러가 우리나라에 들어왔다고 보기는 어렵다. 고금리는 국내 수요를 급격히 위축시켜 대외 수입을 줄였고, 그 결과 경상수지가 대규모 흑자를 내 우리나라의 달러 보유고를 높였을 뿐이다.
사실 금리보다는 경상수지 추이가 환율 움직임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만약 우리나라의 경상수지가 흑자라면 우리나라에 달러 공급이 늘어날 것이고, 달러값은 떨어질 것이다. 최근 몇 해 동안 달러가치가 계속 떨어지고 있는 것도 미국의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 탓이 크다. 2006년 미국은 GDP의 6.6%에 이르는 8700억달러의 경상수지 적자를 냈다. 우리나라의 2006년 국내총생산은 8880억달러인데, 그 6.6%라면 520억달러다. 만약 우리나라가 그런 규모의 경상수지 적자를 냈다면 외환위기를 몇 번 맞고도 남았을 것이다.
미국의 엄청난 경상적자만 보면, 달러가치는 대폭락을 해야 맞지만, 2004년 미국이 ‘강한 달러 정책’을 포기한 이후에도 달러가치는 비교적 완만하게 하락해왔을 뿐이다. 중국, 한국, 일본 등 경상수지 흑자를 내는 동아시아 국가들이 미국 국채를 계속 사서 달러가치를 떠받쳐왔기 때문이다. 달러를 대규모로 보유하고 있는 이 나라들은 달러가치가 급락하면 큰 손실을 볼 수밖에 없다. 수출 경제를 뒷받침하려면, 미국에 계속 돈을 빌려주며 미국인들이 소비(수입)를 급격히 줄이지 않도록 할 필요도 있었다.
달러가치가 떨어지면서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폭은 조금 줄었다. 하지만 그 규모는 여전히 엄청나다. 미국이 빚을 내, 세계의 소비시장 구실을 하는 동안 미국의 순해외부채(해외부채에서 해외자산을 뺀 것)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2006년 미국 GDP의 26%에 이르는 미국의 순해외부채는 이대로 가면 2011년 GDP의 51%로 늘어날 것이라고 국제통화기금은 예상하고 있다. 그렇게 돼도, 세계 각국이 미국 달러를 믿을 만한 통화로 봐줄까?
석유상들, 이제 결제는 유로화로?
사실 여러 경제학자가 미국의 경상수지, 재정수지 적자가 이대로 누적되면 머잖아 달러가치가 붕괴할 수 있다고 경고했으나, 그런 일은 아직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달러를 대체할 만한 통화가 뚜렷이 부각되지 않았고, 누구도 달러가치 폭락으로 인한 파국을 원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달러’의 권위에 손상이 생기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원유시장의 석유상들은 이제 달러 대신 유로로 결제하자는 말을 심심찮게 입에 올리고 있다. 자국의 통화가치를 달러가치에 묶어뒀던 쿠웨이트와 시리아는 올 들어 달러 페그를 포기하기도 했다. 미국 연준이 기준금리를 또 내려, 달러가치가 더욱 떨어지면 ‘달러’를 둘러싼 세계 각국의 고민은 한층 깊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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