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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은 거짓말쟁이

등록 2007-08-31 00:00 수정 2020-05-03 04:25

‘납세자 1인당 평균 세부담’ 줄어들면 누가 이익을 보나

▣ 정남구 한겨레 논설위원 jeje@hani.co.kr

옛날 중국의 한 장군이 진군하던 도중 강을 만났다. 물살이 세서 병사들은 강을 건너기를 주저했다. 장군은 참모에게 강의 평균 수심과 병사들의 평균 키를 알아보라고 했다. 조사해보니 병사들의 평균 키가 평균 수심을 넘어섰다. 장군은 강을 건너 진군을 계속하라고 명령했다. 결과는 뻔했다. 많은 병사가 강을 건너다 물에 빠져 죽었다. ‘평균의 함정’에 대한 우스갯소리다.

세금의 형평성 문제 덮어버려

우리는 수많은 ‘평균’ 수치를 통해 세상을 본다. 국민총소득을 인구수로 나눈 1인당 국민소득은 대표적인 평균값이다. 2006년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1756만원이다. 4인 가구라면 연간 소득이 7024만원이란 얘긴데, 그렇게 소득이 많은 가구는 많지 않다. 왜 그럴까? 한국은행이 계산하는 1인당 국민소득에는 가계가 직접 내지는 않지만 나라가 거둬들인 세금이 포함돼 있다. 또 기업이 벌어서 주주들에게 배당하지 않고 유보한 돈도 포함돼 있다. 그래도 1인당 국민소득은 국가 간 소득수준을 비교하는 데 유용하다. 하지만 계층마다 소득의 변동률이 달라서, 평균치의 증가가 내 생활수준의 개선을 뜻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지난 7월 미국의 외교전문지 는 ‘경제학자들의 거짓말’이란 글을 실었다. 는 가장 대표적인 경제학자들의 거짓말로 “높은 생산성과 낮은 실업률이 모두를 잘살게 해준다”는 것을 꼽았다. 실상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미국은 2001년 이후 6년간 노동생산성이 15%나 올라갔지만, 미국 중산층의 임금은 4%가 떨어졌다”고 는 지적했다.

평균값이 진실을 덮어버리거나 왜곡하는 사례는 세금 관련 통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해마다 내년도 세입 예산이 결정되면 언론은 1인당 세금이 얼마인지를 따져 보도한다. 물가가 오르고 나라 경제도 성장하니, 1인당 세금은 해마다 ‘사상 최대’가 되기 마련이다. ‘1인당 세부담’이라는 평균값은 세금을 누가 얼마나 내는가, 다시 말해 세금이 과연 형평에 맞게 부과되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덮어버린다. 대신, ‘국민의 세금 부담이 계속 커지니 잘못돼가는 것’이라는 인상을 사람들에게 심어준다.

납세 의무자가 1200만 명에 육박하는 근로소득세는 다른 어떤 세금보다 관심을 끈다. 우리나라 근로소득세는 최종 결정세액 기준으로 2005년 10조원 가까이가 부과됐다. 전체 국세총액의 8.1%로, 전체 세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낮다. 소비 정도에 비례해 내는 부가가치세나 유류세보다는 소득이 많을수록 더 높은 세율이 적용되는 소득세가 ‘좋은 세금’이지만, 우리나라는 나쁜 세금의 비중이 매우 높다. 누가 내는지 잘 드러나지 않는 간접세가 걷기 쉽기 때문이다. 세금 총액이 같다면, 전체 세금에서 소득세가 차지하는 비중을 높이는 게 바람직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

여론은 오히려 정반대로 움직인다. 최근 몇 년간 근로소득세 세수는 빠르게 늘었다. 정산을 거쳐 최종 확정된 근로소득세는 2005년까지 최근 4년간 연평균 8.15% 증가했다. 국세총수입 증가율 7.8%보다 높다. 그러다 보니 ‘봉급쟁이는 봉’이란 말이 더욱 거세지고, 근로소득세 경감을 주장하는 정치인들의 목소리에도 힘이 실려왔다. 사실 자영업자, 특히 고소득 전문직 자영업자들의 소득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아 봉급쟁이가 불만을 가질 만은 하다. 하지만 봉급쟁이들의 근로소득세 부담이 계층별로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살펴보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고소득 계층일 수록 혜택 크다

근로소득세 납부자 가운데 소득 상위 10%가 낸 근로소득세가 소득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002년 9.47%였다. 그런데 그것이 계속 높아져 2005년에는 10.9%에 이르렀다. 그다음 상위 10~20% 계층은 2002년 소득의 4.36%를 세금으로 내다가 2005년 4.89%를 냈다. 이 두 계층을 제외하면 나머지 계층은 소득에서 차지하는 근로소득세 비중이 모두 낮아졌다. 근로소득세수가 크게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계층별로 따져보면 상위 20% 계층만 세금 부담이 커졌고, 나머지 계층은 반대로 세금 부담이 줄어든 것이다. 2005년의 경우 전년보다 근로소득세를 8651억원 더 매겼는데, 그 가운데 70.2%를 납세자 중 소득 상위 10% 계층이 부담할 정도였다.

이를 보면, ‘납세자 1인당 평균 세부담’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노리는지 알 수 있다. 평균을 앞세워, ‘세금을 줄이라’는 주장의 동조자를 얻는 것이다. 그 결과, 세제가 개편되면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사람은 당연히 세금을 많이 내는 고소득자들이다. 2008년부터 과표 구간 조정으로 근로소득세 부담이 줄어든다. 당연한 얘기지만, 고소득 계층일수록 혜택이 크다. 근로소득세 납세 의무자 가운데 절반은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다. 세금을 안 내거나, 조금밖에 내지 않는 사람들이 ‘봉급쟁이는 봉’이라는 말에 동조하는 것은 자칫 제 발등을 찍는 일이 되기 쉽다. 고소득자의 세금 부담이 줄면, 자신에게 돌아올 복지 혜택이 줄거나, 간접세 부담이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참고〕통계청의 가계조사 결과로 보면, 2006년 우리나라 가계의 평균소득은 연 3682만원이다. 가구원은 3.31명으로, 1인당 연간소득은 1112만원이다. 1인당 국민소득의 63%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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