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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공급 규제의 함정

등록 2007-11-02 00:00 수정 2020-05-03 04:25

법률 서비스 수요자의 처지에서 보면 로스쿨 총정원을 국가가 통제할 합리적 이유 찾기 어려워

▣ 정남구 한겨레 논설위원 jeje@hani.co.kr

“수요 증가는 가격 상승 요인이고, 공급 증가는 가격 하락 요인이다.” 이것만 제대로 알아도 경제학의 절반을 안다는, ‘수요 공급의 법칙’이다. 이윤을 줄이더라도 더 싼 값에 상품이나 서비스를 팔려는 공급자가 새로 나타날 때, 공급은 늘어난다. 그러면 가격이 떨어져 공급자의 이윤이 줄어든다. 이런 원리를 잘 아는 공급자들은 할 수만 있다면 공급을 통제하려고 애쓴다.

변호사 한 명당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

공급 조절에는 여러 방법이 있다. 우선 공급자들끼리 서로 짜서 총생산량을 묶거나 줄이면 된다.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회원국별로 물량을 할당해 총공급량을 제한하는 것이 그 예다. 생산자 수를 제한하는 방법도 있다. 국가로 하여금, 자신들이 영위하는 산업에 새로 진출하려는 이들에게 까다로운 허가 조건을 두게 하여, 아무나 쉽게 공급자가 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중세의 길드(Guild)를 보면 옛 사람들도 이런 원리를 잘 알고 있었음이 확인된다. 같은 직업에 종사하는 수공업자들이 직업별로 조직한 동직길드(craft guild)는 길드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에게 수공업 경영을 금지했고, 도제의 수를 제한해 생산을 늘리지 못하게 했으며, 제품 가격을 통일시켜 자신들의 이익을 지켰다. 길드는 사망한 장인의 아들이나 친척 등만 신규 회원이 될 수 있게 제한하기도 했다. 오늘날 길드 같은 독점체는 공정거래를 해친다 하여 나라가 법으로 금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특정 산업이나 자격증이 필요한 직업에 대해 법으로 시장 공급을 제한하는 장치는 여전히 남아 있다.

새로 도입되는 로스쿨의 총정원을 두고, 최근 법조계와 대학 사이에 거센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엄밀히 따지면, 법률 서비스의 공급자인 법조계와 수요자인 국민 사이에서 벌어지는 논란이다. 기존 법조계는 변호사 자격자의 공급을 최대한 제한해 서비스 가격을 높게 유지하려 한다. 반면, 국민은 변호사 공급을 크게 늘려 서비스 가격을 낮추라고 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변호사 한 명당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다. 미국은 변호사 한 명당 인구가 267명, 프랑스는 1332명인데, 우리나라는 5758명이나 된다. 일본은 5517명으로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하지만 일본은 민사소송이 상대적으로 적다. 변호사 한 명당 민사소송 건수는 일본이 연간 24.3건인데, 우리나라는 189건이나 된다. 우리나라의 변호사 수가 인구나 민사소송 건수에 견줘 이렇게 적은 것은 그동안 나라가 사법시험 합격자 수를 통제해 변호사 자격자의 배출을 억제해왔기 때문이다. 그 결과 수요자들이 부담하는 법률 서비스 비용은 매우 비싸고, 변호사들은 엄청난 고소득을 누린다. 2만 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사법시험 준비생의 존재는 몇 년을 투자해서라도 한 번 시험에 합격하기만 하면 그동안의 투자를 충분히 보상받는다고 계산하는 이들이 그만큼 많은 데서 나온다.

우리나라의 경우 변호사 시험 합격자는 한 해 몇 명쯤 배출하는 게 좋을까? 이런 질문은 어리석은 것일 수도 있다. 변호사 시험은 자격시험이다. 기준점수를 넘으면 몇 명이든 모두 합격시키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렇게 하면 변호사의 질이 떨어질 것이라고 법조계는 주장한다. 공급자 중심의 논리일 뿐이다. 상대적으로 능력이 떨어지는 변호사들은 자연스럽게 서비스 가격이 싼, 간단한 법률 서비스를 소비자에게 제공하게 될 것이다. 수요자들에게 득이 될 뿐, 나쁠 까닭은 없다.

자격시험은 시험의 난이도를 통해 합격자 수를 조절할 수 있다. 한때 공인중개사 시험 합격자가 크게 늘어나자, 출제위원회가 시험을 매우 어렵게 내서 합격률을 낮춘 일이 있다. 이미 시험에 합격한 공인중개사들의 요구에 따른 것이었다. 시험 관리가 법조계의 손에 쥐어져 있는 한, 변호사 시험도 그렇게 될 위험이 얼마든지 있다. 시험의 난이도를 어느 정도로 할지에 대해서도 법률 서비스 수요자들의 뜻을 반영할 수 있어야, 기득권자들의 교묘한 공급 억제를 막을 수 있다.

법조인들의 기득권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로스쿨을 마친 사람만 변호사 자격 시험을 볼 수 있게 하는 것도 공급 규제 장치라 할 수 있다. 현행 사법시험은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도 응시할 수 있다. 로스쿨 과정을 정상적으로 마친 사람에게만 시험 응시 자격을 주자는 것은 법률가의 질을 높이자는 취지다. 의과대학을 마친 이들에게만 의사면허시험 응시 자격을 주듯이. 이런 규제가 의미 있는 것이라고 해도, 비싼 학비를 대기 어려운 이들의 로스쿨 입학이 심각하게 제약받는다면 이는 정당화되기 어렵다.

로스쿨 총정원 제한도 변호사 시험 응시 가능자를 미리 제한하는 강력한 공급 규제 장치다. 법률 서비스 수요자의 처지에서 보면 로스쿨 총정원을 국가가 통제할 어떤 합리적 이유도 찾기 어렵다. 국가는 로스쿨에서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질 수 있게 교수와 학생의 비율 등 일정 기준을 요구하는 데 그쳐야 한다. 로스쿨 총정원에 대한 빠듯한 규제로 법조인들의 기득권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달라지는 것이라곤 사법시험 대신 로스쿨 입학에 매달리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뿐이다. 로스쿨의 총정원을 늘리는 것은 타협은 될 수 있다. 그러나 법률 서비스 수요자들이 진정 바라야 할 것은, 합리적인 이유없는 변호사 공급 규제 장치를 모두 깨뜨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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