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물일가의 법칙’을 통해 본 반값 아파트와 반값 골프장
▣ 정남구 한겨레 논설위원 jeje@hani.co.kr
영국의 경제주간지 는 세계 120여 개 나라에서 팔리는 햄버거 가격을 분기마다 조사해 이를 달러 가치로 비교해 보여준다. 미국 맥도널드사의 ‘빅맥’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빅맥지수’라고 부른다. 빅맥은 어느 나라에서든 품질과 크기, 재료가 표준화돼 있다. ‘환율은 각국 통화의 구매력에 따라 결정된다’는 이론에 따라, 빅맥 가격을 달러 가치로 환산해 비교하면 각국의 통화 가치가 저평가됐는지 고평가됐는지 알 수 있다는 게 빅맥지수를 산출하는 의미다. 즉, 미국에서 1달러 하는 빅맥이 한국에서는 1.5달러라면 원화의 가치가 그만큼 고평가돼 있는 것이다. 물론 환율은 통화의 구매력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어서 빅맥지수가 통화 가치의 적정 평가 여부를 정확히 반영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단순한 재미를 넘어, 대략의 윤곽을 보여주는 의미가 있다.
기존 주택가격 떨어뜨리지 못해
빅맥지수는 ‘하나의 상품은 하나의 값을 갖는다’는 ‘일물일가의 법칙’을 전제로 하고 있다. ‘무차별의 법칙’이라고도 부르는 일물일가의 법칙은 시장에서 같은 종류의 상품에는 하나의 가격만이 성립한다는 것을 말한다. 완전경쟁이 이뤄지는 시장에서, 하나의 상품이 값이 다르다면 사람들은 너도나도 싸게 파는 상품을 살 것이다. 높은 값에 내놓은 상품은 사려는 사람이 없어져 값을 내리게 되고, 결국 값이 같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치다. 그런데 이런 원칙을 무시하는 주장이 있다. 이른바 ‘반값 아파트’ ‘반값 골프장’이다.
똑같은 상품인데, 값이 절반인 아파트가 있다면 사람들은 ‘제값(?)’ 아파트를 살 리가 없다. 기존 아파트는 점차 값이 떨어지고, 반값 아파트는 점차 값이 올라 두 아파트는 값이 같아져야 한다. 하지만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이 제안한 ‘반값 아파트’는 결코 반값이 아니다. 그저 가치가 떨어져서 값도 싼 것일 뿐이다. 반값 아파트는 정확히 말하면, ‘대지 임대부 분양주택’이다. 땅에 대한 소유권 없이 건물만 사는 것이니 기존 집값보다 싼 것은 당연하다. ‘일물(같은 상품)이 아니니 ‘일가(같은 값)’가 될 까닭이 없다. 그러니 반값이라는 말 자체가 애초 성립하지 않는다.
이런 집이 주택시장에는 어떤 영향을 줄까? 집값은 대지 가격과 건물 가격으로 구성된다. 건물은 시간이 흐를수록 낡아 값어치가 떨어지지만, 대지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인구밀집 지역, 토지의 가치가 점차 높아지는 지역에서는 건물 가치의 하락폭보다 대지 가치가 훨씬 큰 폭으로 오르면서 전체 집값이 상승한다. 그런데 대지 임대부 분양주택은 건물의 감가상각이 반영돼 갈수록 값어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임대료를 한꺼번에 내는 사실상의 장기 임대주택일 뿐이다. 집을 샀다가 훗날 매매차익을 얻으려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집은 매력이 없다. 기존 주택 가격을 떨어뜨리는 데도 별 영향을 주지 못한다. 물론 임대료 수준이 기존 임대주택보다 싸다면, 임대료의 안정에는 도움을 줄 수 있다.
반값 골프장은 어떨까? 정부는 경작이 어려운 농지를 농민이 현물출자해 대중 골프장을 지으면, 농지전용부담금과 법인세 등 각종 세금을 감면해주고,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샤워실과 카트 등 부대시설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골프장 이용료를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게 정부가 내놓은 구상이다. 이 골프장은 우선 서비스를 축소함으로써 골프장 이용료를 낮출 수 있을 것이다. 또 각종 부담금과 세금 감면 혜택에 기대 골프장 이용료를 낮출 여지를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원가 절감 요인이 고스란히 가격 인하로 반영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됐다.
가격은 원가의 크기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다이아몬드 광산을 새로 발견했는데, 생산비가 다른 광산의 절반으로 낮아졌다고 하자. 그렇다면 이 광산업자는 다이아몬드 원석 값을 반으로 내릴까? 결코 그럴 리 없다. 그는 시장 가격으로 다이아몬드 원석을 팔아 높은 이윤을 얻으려고 할 것이다. 물론 그는 원석을 더 많이 팔기 위해 값을 조금 낮출 수도 있다. 공급이 늘면 전체 시장 가격이 조금 낮아질 수는 있다. 그것뿐, 일물일가의 원칙은 흔들리지 않는다.
골프장 업계가 반발하는 이유
골프장 이용료도 마찬가지다. 부담금과 세금의 부담을 던 골프장 업자도 손님을 더 많이 끌어들이고 수익을 극대화하는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를 따져, 그 정도까지만 이용료를 낮추게 마련이다. 골프장 조건과 서비스 품질이 크게 떨어져 이용료가 반이라면, 그것은 정상가격일 뿐이다.
‘반값 골프장’이 사업성이 있는지는 계산하기 어렵다. 경기도는 “이용료를 반값으로 낮추면 어차피 적자가 난다”고 주장하지만, 손님 수의 증가와 세금 및 부담금의 경감 혜택을 엄밀히 따져보지 않고 답을 내릴 수는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반값 골프장’의 등장은 기존 골프장 업자에게는 짐이 된다는 사실이다. 기존 업자들은 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골프장 이용료를 낮춰야 한다. 그 결과 같은 지역의 같은 조건을 갖춘 골프장들은 같은 이용료를 받게 된다. 그 과정에서 골프장 이용료 수준이 전반적으로 조금 낮아지기는 할 것이다. 반값 골프장 방안에 기존 업계가 거세게 반발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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