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외환위기부터 급증해 OECD 최고가 된 자살률…사회안전망 없이 고령화로 내몰린 한국의 선택</font>
▣ 정남구 한겨레 논설위원 jeje@hani.co.kr
수학능력시험 성적표가 배부된 다음날인 지난 12월10일, 수능시험을 치른 쌍둥이 자매가 아파트에서 떨어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서를 따로 남기지는 않았으나, 문자 메시지 등 여러 정황으로 보아 시험 성적이 좋지 않은 것을 비관해 투신한 것으로 경찰은 추정했다. 앞서 수능시험이 끝난 이틀 뒤인 11월17일에도 한 삼수생이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숨졌다. 수능시험이 끝난 뒤면 해마다 일어나는 안타까운 사건들이다. 언론에는 사회문제를 배경으로 한 자살 사건이 비교적 자주 보도된다.
취업에 실패한 청년의 자살, 직장을 잃거나 사업에 실패한 중년의 자살 사건도 우리는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실제 최근 10여 년간 우리나라에서 자살은 눈에 띄게 급증했다. 지난 2005년에는 모두 1만2047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루 33명꼴이다. 그해 자살자의 수는 교통사고 사망자 7957명의 1.5배나 된다.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은 26.1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 희망을 잃은 사람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얘기다.
60살 이상 노동자 88%가 비정규직
우리나라에서 자살의 급증은 외환위기 이후 두드러진 사회 현상이다. 1995년에는 한 해 동안 자살자가 4840명으로, 인구 10만 명당 11.8명에 그쳤다. 그런데 외환위기의 파고가 몰아친 1998년에는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이 19.9명으로 늘었다. 그 뒤 잠시 주춤하는가 싶더니, 2002년부터 다시 급증해, 2005년 사상 최고치에 이르렀다.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아까운 목숨을 스스로 버리는가? 그들이 죽음을 선택한 속 깊은 사연을 다 알 수는 없다. 유서를 남기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살의 이유는 통계를 낼 수 없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의 자살 급증이 빈곤층의 증가 등 사회경제적 변화와 깊은 관련이 있음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특히 2003년 이후의 자살 급증은 신용카드 대란에 뒤따른 신용불량자의 급증, 가계파산을 그 배경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자살자의 연령대를 살펴보면 언론보도를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현상을 볼 수 있다. 대체로 자살은 젊은 층보다는 고령계층에서 많다. 1995년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그래프 참조)을 보면, 30대 초반은 12.1명이고, 70대 후반은 27.5명이다. 어려움을 견뎌내는 능력이 젊은이들보다 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 감안해도 최근 10여 년 사이 고령계층의 자살 급증은 놀라울 정도다. 1995~2005년에 전체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11.8명에서 26.1명으로 120% 늘었다. 그런데 같은 기간 60대 초반의 자살률은 17.4명에서 48명으로 175%, 70대 후반은 27.5명에서 89명으로 223%나 높아졌다. 언론은 성적 비관, 실직 비관에 따른 자살 사건 등을 많이 다루지만, 가장 심각한 것은 ‘노인 자살’임을 보여주는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 노인들이 처한 상황을 보면, 노인 자살이 새로운 사회문제가 되어가는 까닭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 65살 이상 노인 인구 가운데 경제활동에 참가하는 사람은 2005년 현재 30%에 이른다. 1~3%에 불과한 영국·독일·이탈리아는 물론이고, 미국의 15%, 일본의 19.8%보다도 훨씬 높다. 노인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높은 것은 대체로 노인복지가 뒤떨어진 나라의 특징이다. 우리나라의 노인들은 생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기가 나빠지면 노동시장의 취약계층인 노인들이 가장 큰 고통을 겪는다.
앞으로도 나쁜 일자리 놓고 경쟁?
일하는 노인들의 처지도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상용 근로자 50인 이상 사업체에서 일하는 40대 초반 노동자의 평균임금을 100이라고 할 때, 같은 사업체의 60살 이상 노동자의 임금은 1993년 76에서 2005년 60으로 떨어졌다. 제법 큰 회사에서 일하는 노인은 그나마 나은 편인데, 그 수가 27만여 명에 불과하다. 고령 노동자 대부분은 단순노동에 종사하는 저임금 비정규직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서 2005년 8월치 경제활동 인구 부가조사 결과를 분석했더니 60살 이상 노동자의 88%가 비정규직이었다. 2001년 85%에서 그 비율이 더 높아졌다. 일자리는 적은데 일하려는 노인들은 넘쳐나고, 게다가 이들이 단순노동 부문으로 몰리니 노인 노동자의 임금 수준은 갈수록 떨어진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60살 이상 노인 가구 넷 가운데 하나는 한 달 가구 총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절대빈곤 상태에 놓여 있다. 기초노령연금제가 2008년부터 시행되지만, 저소득 노인에게 월 8만~9만원을 지원하는 것이니 언 발에 오줌 누기다. 노인 자살의 급격한 증가는 노인들의 이런 처지를 반영하는 것이다. 사태가 여기에서 그칠 것 같지 않아서 더 걱정이다. 우리나라의 인구 고령화 속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하지만 연금제도 등 사회적 안전망의 확충 속도는 매우 더디다. 젊어서 많이 벌어놓지 못한 노인들은 그나마도 나쁜 일자리를 놓고 앞으로 더욱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할 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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