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10년이 넘도록 우울증을 앓아오시던 친정 고모가 돌아가셨다. 50대에 병을 얻어 10년 넘도록 병원 들락거리며 온 가족 고생이 심하더니 갑자기 돌아가셨단다.
어렸을 때 방학 맞아 경북 고령에 있는 시골 할머니 댁에 가면 사람 좋은 넉넉한 인상으로 꼬마 손님들 뒷수발 마다하지 않으셨던 고모였다. 고등학교 때 대여섯명의 친구들 끌고 들이닥쳐도 여름날에도 군불 때서 군고구마며, 감자를 익혀주시던 분이었다.
세월이 쏜살같이 흐르고 제각기 사는 데 바쁘다는 핑계로 가끔 귓결로나 듣는 고모 소식은 당황스러웠다. 마음도 넓고 인정도 많아 ‘허허’거리며 살 것 같았는데 고모의 우울증은 내겐 안타까운 의문이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고모부 만나 친정동네에 살면서 입방아에 오르지 않으려 무던히도 조심하며 살았던 고모의 삶은 고생바가지였단다. 얼마 안 되는 땅뙈기에 천성은 착해도 게으른 고모부 덕에 손에 박힌 굳은살만큼이나 들로만 돌아쳐도 살림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물론 그 시대에 고생 않고 산 사람이 얼마였겠냐마는 지독히도 내성적이고 착하기만 했던 고모는 속으로, 속으로만 참고 삭이다 중년에 병을 얻고 말았다. 3년 전에는 고모 수발 들어주던 고모부도 갑자기 사고로 돌아가시고 부쩍 발병주기가 자주 돌아왔었나 보다.
그러고 보니 이즈막에 상담자건, 회원이건, 이웃이건 나이에 상관없이 우울증을 호소하는 여성들이 부쩍 많아진다.
갑자가 울음을 터뜨리는가 하면, 전화선을 타고 내어쉬는 속한숨이 예사롭지 않기도 하고, 허망한 눈빛으로 술 한잔 하자고 말 건네는 친구도 있다. 남모르게 우울증 치료차 병원 다니는 사람들도 있고 며칠 전에는 정신병원 신세까지 진 사람도 있다. 30대 후반부터 이어지는 우울증의 행렬이 나이 탓만은 아닌 듯하다. 중년에나 나타난다는 ‘빈 둥우리 증후군’이 나이에 상관없이 갑자기 튀어나와 돌아다니는 걸 보면 말이다. 한창 아이 키우고, 식구들 뒷바라지에 자신의 삶은 저만치 떼어놓고 엄마와 아내, 며느리로 살아왔던 여성들이 뒤늦게 몸의 반란을 맞고 있나 보다. 나 또한 이 봄날 쏟아지는 햇살을 이겨내고픈 마음조차 일지 않는 무기력의 나락에서 한참을 헤메인다.
연초록의 감나무잎이 시리고 서럽다는 후배에게 봄길가의 하얀찔레꽃은 눈물이지 싶다.
보리알곡 여문 초록 들녘에 생명력 가득한 이즈음, 할머니집 굴뚝에 연기 피워내며 작은 소리로 숨죽여 살아내다 돌아가신 둘째고모 생각이 째지게 난다.
고모가 한 여성의 삶으로 이해되어가는 나이인가 보다.
이태옥 ㅣ 영광 여성의 전화 사무국장
일러스트레이션 | 최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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