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몇몇과 점심 먹으러 ‘저문강에 삽을 씻고’(이하 저문강)에 들르니 전깃불은 환히 켜졌고 문은 열려 있는데 주인장이 없다. 부슬비 내리다 비바람 치다를 거푸하다 바람까지 ‘쌩’한 초겨울 날씨 탓에 선정씨는 번개탄을 집어들고 나무난로에 연기를 피운다, 온풍기를 튼다 하며 내 집인 양 야단을 떤다. 갈아(팔아)주려고 왔는데 점심 먹기 글렀나 보다. 문이라도 잠그지 다기세트며 도자기 그릇도 있는데 ‘어서 옵쇼’ 대문 활짝 열어놓고 나간 폼이 시골집인 양싶다. 연기만 실컷 먹고 다른 식당으로 옮기려는데 경아 트럭이 거칠게 도착한다.
“오늘 장날이라 장보러 갔제.” “어쨌당가? 누가 훔쳐갈라고?” 너무도 태연하게 대꾸하는 경아에게 “아야, 여그가 느그 동네인 줄 아냐? 값나가는 물건도 많응께 나가걸랑 문단속 잘해야”라고 타박을 놓아보지만 “응. 언니” 성의 없는 대답만 돌아온다. 점심은 준비가 안 돼 못 먹겠고 오후에 성교육강사팀 몰고 오마며 아쉬움을 달랜다.
요 며칠 하루에 두번씩 ‘저문강’에 출근도장 찍나 보다.
홍농서 크게 농사짓던 경아는 올겨울 결국 찻집을 하기로 하고 문을 연 지 5일째이다.
손님에게 제 집 음식 주듯이 장사폼이 전혀 잡히지 않아 성질 급한 손님들 구미는 못 맞추지만 타고난 농사꾼 품성으로 뚝심 있게 장사 준비를 하고 있다.
엊저녁 농민회 사람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잠깐 숨돌려 자리에 앉은 경아가 막걸리 한 사발 울컥울컥 시원스레 넘기더니 갑자기 눈물 한 바가지 쏟아낸다. 어떻게든 농사지으며 버티고 싶었는데 생계를 핑계로 이래도 되나 싶은지 속이 많이 상했나 보다. 2년 동안 고민하며 내린 결정임에도 말이다. 그 마음 모르랴 나도 같이 눈물 찍어낼밖에….
옆에 있던 농민회장님 “먹을거리도 농업의 연장 아니요. 우리 콩, 우리 밀, 우리 과실만 쓴다면 농업 유통에 기여하는 것인께 눈물바람 말고 장사나 잘하씨요”라며 빈잔에 막걸리 한 사발 가득 부어준다.
“우리 밀 해물파전에 찹쌀 넣었더니 속은 안 익고 겉은 타버려서 우리밀에 갖은 해물 넣고 들깨기름과 녹두가루로 지져냈는데 맛이 어떤가?” 음식맛 자리잡힐 때까지는 ‘저문강’ 손님들 마루타 취급당하며 서빙은 물론 음식맛 모니터까지 해줘야 한다.
‘나물과 밥’은 절밥처럼 하고 싶어서 집에서 기르거나 산과 들에서 꺾어 말린 나물을 손맛으로 무쳐내고 현미·은행·콩·수수 등이 섞인 잡곡밥을 된장국 곁들여 내놓으니 조미료에 길들여진 입맛엔 어쩔란가 몰라도 씹을수록 깊은 맛이다.
성교육강사팀과 저녁 먹으며 음식 모니터 하니 호평이다. 분위기도 좋고 조미료 안 넣고 우리 농산물로 집밥처럼 하니 딱 맘에 든다며, 다음 약속은 여기서 잡아야겠다고 이구동성이다.
주방에 슬쩍 들러 등 두드리며 “경아야! 속상해하지 마라. 찻집 자리잡히면 우리 농산물로 만든 먹을거리 본때 보여주게. 파이팅!”을 외치며 돌아서 나오는데 코끝은 왜 이리 찡한지.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로 시작하는 ‘저문강에 삽을 씻고’는 경아가 제일 좋아하는 시구란다. 흙 묻은 삽은 집에 두고 왔지만 마음속으로 부지런히 쟁기질 하며 우리 먹을거리에 애타는 농심 쏟아 붓는 경아의 저문강에 붉은 노을이 활활 불탔으면 좋겠다.
이태옥 | 영광 여성의 전화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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