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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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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댁

등록 2004-01-09 00:00 수정 2020-05-03 04:23

나처럼 신정 쇠러 친정으로 내려온 인파들인가 싶게 북적거리는 영광터미널 근처를 뛰어다니며 차표 사고 굴비 몇 꾸러미 챙겨 둘째아들놈 사무실에 데려다놓으니 몸은 이미 파김치다. 짐꾸러미 옆에 두고 2003년 마지막 회의에 피치를 올리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려 급한 마음으로 받고 보니 홍성 사는 후배다.
“언니 나도 신정 쇠러 서울 친정 가는데 만나자. 보고 싶어.” “나두. 이번엔 꼭 보자”며 서둘러 전화 끊고 회의 마무리도 못한 채 서울행 고속버스에 부리나케 오르고서야 홍성댁과 나의 대학 친구인 홍성댁 남편 얼굴이 떠오른다.

새해가 별거냐 싶게 친정 식구들과 1월1일 보내고 다음날 느지막이 홍성댁과 통화가 되었다. 약속장소 가는 내내 홍성댁 남편인 친구 모습을 머릿속에서 그렸다 지웠다 한다.

뇌종양 수술을 2번이나 받고 후유증으로 병세가 악화된 남편 수발에, 경제활동에, 육아에 서울서 혼자 동동걸음치던 홍성댁은 2년 전 더 이상 혼자 감당이 안 되겠다 싶었는지 뒤도 안 돌아보고 짐 싸서 시골로 내려갔다.

간간이 들려오는 소문엔 시골에서 학원 강사 하며 무료해한다는 것 같았는데 “언니 나 시민단체에서 일해”라며 내 예상을 깨고 경쾌한 모습으로 내 앞에 우뚝 서 있다.

허겁지겁 남편 병세부터 묻고 “홍성서 무슨 시민운동 한디야?”고 물으니 “두달 됐어. 홍성서 얼마나 살지 모르지만 더 이상 빌빌대면서 못 살겠더라고. 지역운동 하면서 살려고.”

시어머니와 남편 수발 몫을 나눈 뒤 한숨 돌리더니 내친 김에 지역운동 하겠다는 홍성댁 얼굴은 결기에 찬 대학 2년 운동권 학생으로 돌아간 듯 힘차 보였다.

홍성으로 내려갈 때만 해도 이런저런 생각해볼 여유가 없었는데 2년이 지나니 지역도 보이고 자연도 보이고 주변의 사람도 보인다며 요즘 죽이 맞는 대찬 지역 여성들 만나서 재미나 죽겠단다.

“언제까지 그렇게 살래. 나이 젊을 때 빨리 정리하지”라는 도움도 안 되는 이야기하는 인간들 땜에 신경질 난다는 홍성댁이 시골을 마음에 얹은 이유는 전혀 순애보적이지 않고 희생과 헌신은 더욱 가당치 않아 보인다.

“남편이 불쌍하기도 하지만 이렇게라도 내 옆에 살아 있는 게 좋아. 그 사람 사랑하니까.” “홍성서 세상을 보니까 인생이 뭐 별거라고, 죽어라고 자연 파괴하고 사람 상하게 하면서 살아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데. 이제부터라도 느리게 돌아가는 연습 좀 해보려고. 내가 하고 싶은 일 하고 내 계획 세울 수 있으니까 지금이 난 좋아.”

“홍성서 수도하더니 2년 만에 깨침 얻었냐”고 수선스럽게 홍성댁 마음 축하해주면서도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겠냐는 내 노파심을 간파한 홍성댁은 여지 없이 무질러버린다.

“한때 돈도 많이 벌어봤는데 까짓것 필요하면 그때 가서 또 벌면 되지 뭐. 그런 건 겁 안 나.” 엄마같이 구는 초등학교 5학년 딸아이의 어리광에 까르르거리는 홍성댁에게서 어느덧 위로와 위안을 얻는다.

“언니, 운동 그것도 금단현상 있잖아. 한번 중독되면 못 끊는 거.”

10여년 전 익산 노동현장에 있다며 홍성댁과 남편이 영광에 놀러왔던 기억이 왜 그제야 났을까? “그래. 왜 끊어. 이 좋은 걸.”

이태옥 | 영광 여성의 전화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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