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큐멘터리 영화 ‘호루몽’ 포스터. 1999년 티브이아사히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 일본군 위안부를 폄훼하는 극우 패널의 코를 납작하게 만든 신숙옥의 모습. 엣나인필름 제공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사과하지 않으면 됩니다. 사과하기 싫은 태도가 눈에 뻔히 보이니 하는 말이에요. 사과하고 싶지도 않은데, 사과하고 있으니 거짓말같이 보인다는 거예요. 사죄라는 건 말이죠.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없다면 사죄가 아니에요. 한국 사람 입장에서는 그런 사과를 받아도 용서할 마음이 쉽게 들지 않는 거죠.”
만면에 미소를 띤 채 우아하지만 단호하게 일본 극우 논객의 주장을 반박하는 한 젊은 여성이 있다. ‘일본 극우의 말문을 막은 통쾌한 한마디’라는 제목 등으로 올라온 이 토론 영상은 인스타그램에서 약 450만 회, 유튜브에서 460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관련 쇼츠를 포함하면 누적 조회수는 1천만 회를 넘어선다. 영상에는 ‘웃으면서 팬다는 말의 뜻을 제대로 보여준다’ ‘여유로운 카리스마의 본좌’ 등 댓글이 수천 개씩 달렸다. 해당 영상은 1999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주제로 한 티브이(TV)아사히 토론 프로그램의 한 장면으로, 주인공은 재일 인권운동가 신숙옥이다.
사실 신숙옥을 둘러싼 사회적 조건은 말 그대로 ‘약자 중의 약자’라 할 법하다. ‘재일조선인(자이니치) 3세+여성+상고 졸업’ 등 일본 사회 주류와는 거리가 멀지만, 그는 지난 25년 동안 재일조선인을 향한 일본 내 뿌리 깊은 차별과 혐오에 맞서 싸우고, 소수자들과의 연대에 힘쓰며, 평화운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당찬 삶을 살아왔다.(신숙옥은 한국 국적이지만, 스스로를 ‘재일조선인’이라고 표현한다. 일본에서 오랫동안 차별적 낙인의 의미로 쓰인 그 말 속에는 역사적·민족적 맥락이 포함돼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신숙옥의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영화 ‘호루몽’이 2026년 11월11일 국내에서 개봉한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한국을 찾은 주인공 신숙옥을 11월2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영화를 만든 이일하 감독도 함께였다.

재일조선인 3세인 신숙옥은 사업가로서의 성공을 내려놓고 2000년대부터 인권·평화운동에 뛰어들었다. 엣나인필름 제공
영화의 제목인 ‘호루몽’은 일본어로 ‘버리다’라는 뜻의 ‘호루’와 ‘물건’을 뜻하는 ‘모노’에서 유래한 말로, 도축 후 버려진 곱창 등 내장 부위를 뜻한다. 1945년 광복 이후에도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일본에서 살아간 재일조선인이 버려진 내장 등을 주워 먹거나 구워 팔면서 생계를 이어갔던 사실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일하 감독은 “호루몽은 단순히 음식 이름이 아니라 버려진 존재로 여겨져 혐오와 차별에 내몰렸던 재일조선인들의 역사를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신숙옥은 “제목 중 ‘몽’은 꿈으로도 읽을 수 있어 꿈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야 한다는 이중적 의미를 떠올렸다”고 덧붙였다.
신숙옥은 1959년 도쿄 시부야에서 재일조선인 3세로 태어났다. 조선인 차별이 만연한 분위기를 잘 몰랐던 어린 시절 자신의 뿌리를 알고 너무나 자랑스러웠다는 신숙옥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고 자랑스러워서 동네방네 ‘나는 조선인’이라고 떠들고 다녔다”고 했다.
하지만 그 후 가족들은 동네와 학교에서 집단따돌림과 폭력을 당하기 시작했다. ‘개-고양이-바퀴벌레-조선인’ 순서라는 말이 떠돌던 시대였다. “서너 살 무렵이었어요. 오빠가 동네에서 아버지가 경찰인 아이에게 심하게 맞고 왔던 날, 엄마가 그 집에 가서 (때리지 말아달라고) 사정하시다가 층계참에 앉아 펑펑 우시는 거예요. 그때 어린 마음에도 ‘나는 무조건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재일조선인은 학업도, 취업도, 사회생활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아버지 대신 생계를 책임진 엄마는 어릴 때 여러 번 신숙옥의 목을 조르며 ‘같이 죽자’며 울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가 불쌍해서 반항하지 않고 ‘응’이라고 답했다. “어머니는 정체성 혼란은 물론 경제적 문제까지 겹치면서 정신적으로 무척 힘든 상태였어요. 엄마의 행동은 물론 아동학대에 해당해요. 오랜 시간 저를 감정의 쓰레기통처럼 학대했죠. 하지만 엄마는 제게 도와야 할 존재였어요.” 사회적 차별과 폭력이 가정폭력으로 옮겨가는 것은 재일조선인에게 흔한 모습이었다. 영화 속에는 재일조선인 1세대인 할머니 이백란-2세대인 어머니 게이코-3세대인 신숙옥까지 ‘여성 3대의 삶’이 녹아 있다.
도립 제1상업학교에 입학한 신숙옥은 끝내 조선인의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았다. 고교 졸업장엔 ‘니이야마 세쓰코’라는 일본 이름 대신 ‘신숙옥’이라는 한글 이름이 적혔다. 이후 아르바이트로 모델 일을 하던 신숙옥은 인재 육성 전문가이자 사업가로 성공한다. “재일조선인은 취업조차 어려웠던 시절, 여성이 사업가로 성공한 것은 거의 제가 첫 사례가 아닐까 싶어요. 안 해본 일이 없었는데, 운도 좋았던 것 같아요. 상고 출신 조선인이 일본 사회에서 자립해 가족 생계를 책임질 수 있게 된 것 자체가 기적 같은 일이었어요.”

일본 디에이치시(DHC) 텔레비전이 재일 인권운동가 신숙옥과 오키나와 평화운동에 대한 왜곡보도로 명예를 훼손하자, 신숙옥은 소송을 통해 공식 사과와 550만엔의 배상금을 받아냈다. 엣나인필름 제공
그런 그의 삶은 어느 날 완전히 궤도가 바뀐다. 2000년 4월9일 육상자위대 창설기념식에 참석한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가 한 ‘삼국인 발언’이 계기였다. ‘불법 이민이 많은 삼국인이 흉악한 범죄를 되풀이하고 있고, 큰 재해가 일어날 때는 소요조차 예상된다’는 발언이었다. 삼국인은 조선인과 중국인을 비하하는 말이다. “많은 조선인이 1923년 간토대지진 당시 일본 정부가 흉흉해진 민심을 수습하고자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는 등의 유언비어를 퍼뜨려 조선인 사냥이 벌어졌던 것을 떠올릴 수밖에 없잖아요. 이때 생각했어요. ‘비가 새는 집에 살지 않게 되면 무슨 일이든 내가 아닌 ‘우리’를 위한 일을 해야 한다’고.”
그때부터 신숙옥은 일본 극우 정치인에 맞서 재일조선인을 위한 ‘사회적 발언’을 하고 평화·인권운동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2013년엔 헤이트 스피치(혐오발언)와 인종차별에 맞서는 ‘노리코에넷’을 설립했다. “조선인으로 살기 위해선 싸워야 했어요. 제가 하는 싸움은 ‘내가 나로 살기 위한 투쟁’이었습니다.”
그즈음 일본에 머물던 이일하 감독도 신숙옥에 대해 알게 됐다. 이 감독은 그 순간을 이렇게 떠올렸다. “어느 일요일 아침 티브이를 켰는데, 신상(신숙옥)이 나왔어요. 사이다 같은 발언이 너무 시원시원해서 만세를 불렀어요.” 그 후 헤이트 스피치를 다룬 영화 ‘카운터스’(2018)를 만들면서 이 감독은 “신숙옥의 실물을 영접하게 됐다”고 했다. “시위 현장에선 늘 큰누나 같은 느낌이었어요. ‘문제의 그 재판’이 시작되면서 제가 신숙옥을 소재로 한 영화를 찍고 싶다고 했더니 ‘자이니치의 신파 스토리를 찍지 않겠다고 약속해주면 내 한 몸을 불살라서 임하겠다’고 하셨죠. 하하하.”
이 감독이 말한 ‘문제의 그 재판’은 신숙옥이 2018년 일본 디에이치시(DHC) 텔레비전을 상대로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을 말한다. 영화의 주된 내용 중 하나가 이 소송의 발단과 전개와 결말이다. ‘극우 패널이 무지한 여성들에게 정치를 알려준다’는 취지의 ‘뉴스 여자’라는 프로그램에서 당시 오키나와 미군기지 문제를 둘러싼 평화운동을 하던 조선인 신숙옥에 대해 ‘북한의 검은돈을 받아 오키나와 미군 철수 운동에 지원한다’ 등의 유언비어를 퍼트린 것이다. “명확한 레이시즘(인종차별)이죠. 스토킹, 협박, 사이버불링 등 극우세력들의 공격이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심해졌어요.” 이 감독은 “그렇게도 강한 신숙옥이 처음으로 눈물을 흘리는 걸 봤다”고 회상했다.
가족까지 위협을 당하자 신숙옥은 독일로 피신했다. 하지만 그는 곧 일본으로 돌아와 정면승부를 택했다. “저만 과녁 삼은 게 아니라 오키나와 평화운동을 건드렸기 때문에 참을 수 없었어요. 재판의 ‘원고’가 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저였기에 명예훼손의 책임을 묻는 재판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비겁해지고 싶지 않았어요.” 5년여의 싸움 끝에 2023년 대법원에서 승소한 신숙옥은 DHC의 사과와 550만엔의 배상금도 받아내는 ‘의미 있는 승리’를 거뒀다.

다큐멘터리 ‘호루몽’ 포스터. 일본 디에이치시(DHC) 텔레비전이 재일 인권운동가 신숙옥에 대한 왜곡보도로 명예를 훼손하자, 신숙옥은 소송을 통해 공식 사과와 550만엔의 배상금을 받아냈다. 엣나인필름 제공
신숙옥의 승소는 명예훼손 인정 이상의 의미였다. 일본의 혐오표현 관련 소송과 소수자 인권운동에 큰 획을 긋는 판결이었다. “사람들이 재일조선인과 소수자를 위한 큰 소송이었다고 의미 부여를 많이 해요. 근데 저는 그것보다 일본 사회의 붕괴를 막았다, 폭주하는 일본을 멈췄다는 의미가 더 크다고 생각해요. 약자를 표적으로 괴롭히는 일본의 행태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었기에 일본인 다수에게 영향을 준 셈이죠.”
소송 이후 일본의 상황은 어떻게 변했을까? 신숙옥은 노골적 혐오발언이 줄어든 대신 더 교묘하고 일상적인 차별이 만연하다고 했다. “2016년 헤이트 스피치 해소법이 제정됐지만, 형사처벌 규정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져요. 그래도 일본 시민운동이 발전하고 인권 문제 관련 시위에 참여하는 개인이 크게 늘긴 했어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부터 등장한 ‘깃발’이나 ‘펼침막’ 문화의 영향을 일본 젊은 세대도 많이 받았어요.”
최근 한국에서도 난민, 중국 동포, 이주노동자 등을 향한 혐오와 배제가 확산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일본의 ‘혐한시위’처럼 ‘혐중시위’도 열린다. “경제정책이 실패할 때 헤이트 스피치가 만연해져요. 자본주의가 고도화될수록 약자를 잘 돌보고 구제해야 하는데, 경제가 나빠지면 그런 제도가 축소되거든요. 일본 헤이트 스피치의 근원은 결국 식민지 시절인 건데, 침략과 전쟁의 책임에 대해 직시하지 않는다면 헤이트 스피치도 해결이 안 되는 거죠. 한국은 이미 그런 시절에서 벗어나 프라이드(자긍심)를 가진 나라가 됐는데, 혐오와 차별을 용납해선 안 되죠. 헤이트 스피치가 발전하면 결국 제노사이드(집단학살)가 되는 거예요.”
재일조선인 혐오·차별, 오키나와 평화운동,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아이누 민족, 여성 등 다양한 소수자와 계속 연대하며 활동 반경을 넓혀가고 있는 인권운동가 신숙옥. 진정한 연대를 위한 그만의 원칙을 물었다. “저는 늘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믿는다’를 주장해요. 기대한다는 것은 내 생각대로 이뤄지길 바란다는 뜻인데, 약자들은 때로 거짓말을 할 수도, 등을 돌릴 수도 있어요. 이해해야 해요. 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손을 놓으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영화 ‘호루몽’ 개봉을 맞아 한국을 찾은 재일 인권운동가 신숙옥씨. 엣나인필름 제공
영화 ‘호루몽’ 개봉에 맞춰 신숙옥과 이일하 감독은 동명의 책도 펴냈다. ‘살아남은 여자 신숙옥의 투쟁기’라는 부제가 붙었다. 이 감독은 영화의 한국 개봉에 이어 일본 개봉도 추진 중이다. “싸우지 않으면 다음은 없어요. 산다는 것은 이기는 것이며, 살아남는다는 것은 그 자체가 찬가입니다.” 신숙옥이 한국 관객과 독자에게 건네는 마지막 말이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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