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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0년 전 먼 나라 무용담, 한국도 ‘오디세이’에 놀란 이유는

낯익은 신화 소재, 3시간 러닝타임에도 흥행 질주… 아이맥스 티케팅 전쟁·스크린셀러 현상 낳은 놀런의 역작
등록 2026-08-20 21:32 수정 2026-08-21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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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디세이’ 포스터. 아이맥스 카메라로 모든 장면을 촬영했음을 알리며 아이맥스관 관람을 유도하고 있다. 유니버설픽처스 제공

영화 ‘오디세이’ 포스터. 아이맥스 카메라로 모든 장면을 촬영했음을 알리며 아이맥스관 관람을 유도하고 있다. 유니버설픽처스 제공


 

“무사여, 그 사내에 대해 내게 노래하소서. 트로이의 신성한 고지를 짓밟은 후 끊임없이 항로를 이탈했던 그 사내를.”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시인 호메로스가 이렇게 호명했던 ‘오디세이’의 모험이 2700년의 시간을 거슬러 재소환됐다. 할리우드의 명장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이 구현해낸 3시간짜리 장대한 대서사시 ‘오디세이’는 신화 속 환상의 세계로 관객을 이끌며 고전은 시대를 막론하고 영원하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증명하고 있다.

2026년 7월17일 북미에서 먼저 개봉한 ‘오디세이’는 한 달(미국 박스오피스 모조 8월17일 기준) 만에 전세계적으로 12억9800만달러(1조8천억원) 이상을 벌어들이며 흥행 질주를 이어가고 있다. 국내에서도 8월5일 개봉한 뒤 2주 만에 560만 명의 관객을 끌어모으며 박스오피스 1위를 굳게 지키고 있다. 특히 아이맥스관 예매 전쟁이 펼쳐지며 10만~30만원짜리 암표가 등장하는가 하면, 영화 개봉과 맞물려 서점가에서 원전 판매가 갑자기 급증하는 등 ‘열풍’이라 불러도 좋을 이채로운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원전을 읽지 않았어도 누구나 다 아는 낯익은 스토리, 화장실을 꾹 참아야 하는 3시간이라는 장벽에도 불구하고 놀런 감독의 ‘오디세이’는 왜 이토록 많은 관객의 호응을 얻고 있을까?

2700년 전 쓰인 호메로스의 고전 ‘오디세이’가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로 재탄생했다. 유니버설픽처스 제공

2700년 전 쓰인 호메로스의 고전 ‘오디세이’가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로 재탄생했다. 유니버설픽처스 제공


 

“놀런은 하나의 브랜드”… 예견된 흥행

 

놀런 감독은 국내에서 이름만으로 흥행 보증 수표가 되는 몇 안 되는 외국 감독 중 한 명이다. 2014년 비수기인 11월에 개봉해 1천만 명 넘는 관객을 동원한 ‘인터스텔라’를 비롯해 ‘다크나이트’(2008년·428만 명), ‘인셉션’(2010년·600만 명), ‘덩케르크’(2017·282만 명), ‘테넷’(2020·200만 명), ‘오펜하이머’(2023년·323만 명) 등 역사·전기·액션·판타지·에스에프(SF)까지 장르를 종횡무진으로 움직이며 국내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전찬일 평론가는 “크리스토퍼 놀런은 ‘믿고 보는 감독’으로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개봉 전부터 흥행은 사실상 예약돼 있었고, 얼마큼 관객이 드느냐가 관건이었을 뿐”이라며 “지금까지의 흥행 성적으로만 보면, 국내에서 유독 고평가된 감독이라고 평가절하했던 일부의 시각을 완전히 불식했다”고 평가했다.

놀런 감독은 이번엔 서양 문화의 원류이자 원형이라 할 수 있는 호메로스의 고전 ‘오디세이’를 선택했다. ‘오디세이’는 트로이전쟁을 승리로 이끈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맷 데이먼)가 전쟁을 끝내고 귀향하는 데 걸린 10년의 모험을 담고 있다. 놀런 감독의 손에서 재탄생한 영화도 오디세우스가 귀향길에 키클롭스(이마 한가운데 눈이 있는 거대한 신·빌 어윈)와 키르케(마녀·서맨사 모턴)를 만나고, 하데스(저승)에서 예언을 듣고, 스킬라(바다 괴물)와 세이렌(노래로 뱃사람을 홀려 죽이는 바다 요정)의 위협에 동료들을 모두 잃고 기억까지 잃은 채 칼립소(바다의 여신·샬리즈 세런)의 섬에서 7년을 머무르는 이야기를 그대로 따른다. 영화의 또 다른 축은 남편인 오디세이의 부재로 재혼을 강요받는 이타카의 왕비 페넬로페(앤 해서웨이)와 왕위를 지키기엔 아직 어리고 나약한 아들 텔레마코스(톰 홀랜드), 왕궁을 점령한 채 왕위를 노리는 안티노오스(로버트 패틴슨) 등 108명의 구혼자가 얽히고설키는 이야기다. 놀런 감독은 이런 거대한 신화를 과거, 현재, 미래를 교차하며 오가는 비선형적 서사로 풀어낸다.

윤필립 평론가는 “신(아테네)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원전에는 없는 ‘시논’(엘리엇 페이지)이란 인물을 내세워서 영웅의 모험담이 아닌 전쟁의 상처와 문명 붕괴에 대한 성찰과 반성에 집중한 것이 (원전과의) 차이점”이라고 설명했다.

오디세우스가 꾀를 내어 만든 거대한 ‘목마’를 트로이 병사들이 끌고 가는 장면.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이 장면도 컴퓨터그래픽(CG) 없이 아이맥스 카메라로 찍었다. 유니버설픽처스 제공

오디세우스가 꾀를 내어 만든 거대한 ‘목마’를 트로이 병사들이 끌고 가는 장면.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이 장면도 컴퓨터그래픽(CG) 없이 아이맥스 카메라로 찍었다. 유니버설픽처스 제공


 

비싸도 아이맥스로? 그만한 가치 있다

 

놀런 감독은 방대한 신화적 세계관을 화면으로 옮기며 되도록 컴퓨터그래픽(CG)을 사용하지 않고 제작하는 리얼리티에 공을 들였고, 장편영화 최초로 모든 장면을 아이맥스 70㎜ 필름 카메라로 촬영했다. 필름 길이만 640㎞로, 이는 서울에서 부산을 왕복하는 거리다. 이렇게 완성된 스펙터클한 볼거리는 3시간 내내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엄청난 규모와 아이맥스 촬영을 마케팅 포인트로 내세운 ‘오디세이’는 ‘아이맥스 관람 열풍’을 불러왔다. 아이맥스 영화관은 스크린의 가로세로 비율이 1.43 대 1(또는 1.9 대 1)로, 2.39 대 1인 일반관과 차이가 있다. 이 때문에 국내 27곳에 불과한 아이맥스관은 초반부터 예매를 위한 ‘광클’의 전장이 됐다. 특히 화면 비율상 ‘오디세이’를 완벽하게 담아낼 수 있는 국내 유일한 아이맥스관인 ‘용산 씨지브이(CGV) 아이맥스관’(일명 용아맥) 티켓은 10만~30만원의 암표까지 중고거래 사이트에 등장하기도 했다. 윤필립 평론가는 “코로나 이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공세로 관객은 극장에 덜 가는 대신 한 편을 보더라도 제대로 된 환경에서 즐기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아이맥스관 티케팅 전쟁조차 하나의 놀이처럼 여기는 2030세대의 분위기가 흥행의 한 요인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시네필들이 모이는 커뮤니티에는 용아맥 티켓을 구하지 못해 일단 일반관에서 관람했다며 향후 용아맥 티켓을 구해 재관람하겠다는 글이 줄을 잇고 있다.

모두가 아는 이야기지만 ‘고전’이 가진 힘, 그리고 고전의 영화적 재현도 관객을 불러 모으는 또 다른 힘이다. 3시간이라는 다소 긴 러닝타임에도 지루하지 않고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재미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김형석 평론가는 “서양 문화사의 한 축인 성경, 그중에서도 창세기 속 노아의 방주, 출애굽기, 다윗왕 이야기 등이 다 아는 이야기임에도 계속해서 영화화되는 것은 ‘아는 이야기가 어떻게 이미지로 구현되는가’에 대한 관객의 호기심 때문인데, ‘오디세이’ 역시 동일 선상에서 놀런 감독의 시각화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할리우드의 내로라하는 명배우를 한자리에 불러 모을 수 있는 놀런 감독의 명성에 할리우드의 자본력이 결합해 만들어낸 역작임이 틀림없다”고 덧붙였다.

영화 ‘오디세이’는 오디세우스가 귀향길에 괴물 키클롭스와 마녀 키르케를 만나고, 하데스(저승)에서 예언을 듣고, 바다에서 괴물 스킬라와 요정 세이렌의 위협에 동료들을 모두 잃고 기억을 잃은 채 여신 칼립소의 섬에서 7년을 머무르는 이야기를 담아냈다. 유니버설픽처스 제공

영화 ‘오디세이’는 오디세우스가 귀향길에 괴물 키클롭스와 마녀 키르케를 만나고, 하데스(저승)에서 예언을 듣고, 바다에서 괴물 스킬라와 요정 세이렌의 위협에 동료들을 모두 잃고 기억을 잃은 채 여신 칼립소의 섬에서 7년을 머무르는 이야기를 담아냈다. 유니버설픽처스 제공


 

원전 인기에 서점가도 ‘활짝’

 

영화 ‘오디세이’의 흥행은 서점가에도 훈풍을 불어넣고 있다. 원전 서적이 함께 주목받는 ‘스크린셀러’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교보문고는 “2026년 7월 한 달간 ‘오디세이’ 관련 도서의 판매량이 2025년 같은 달에 견줘 600% 급증했다”고 밝혔다. 교보문고 온라인 베스트셀러 상위 20위 안에 ‘오디세이아’를 제목으로 한 책 세 권이 이름을 올렸다. 교보문고는 판매량 급증으로 전용 매대를 꾸리기까지 했다. 현재 시중에 ‘오디세이’라는 제목이 붙은 책은 20종 넘게 판매되고 있으며, 영화 ‘오디세이’ 각본집도 발매됐다.

전자책 시장도 들썩이고 있다. 밀리의서재 쪽은 “영화 개봉 후 앱 내 ‘오디세이’ 검색량은 개봉 전 일평균에 견줘 3.3배 늘었고, 원작 ‘오디세이아’ 서재담기는 4.7배나 증가했다”며 “작품의 핵심 내용을 요약해 이해를 돕는 ‘도슨트북’ 콘텐츠 ‘오늘 15분만, 오디세이’의 서재담기 역시 개봉 전보다 3.3배 늘어 누적 1만5천 건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최근 도서 ‘오디세이’를 펴낸 출판사 페이지2북스 송병규 편집자는 “책이 출간된 지 2주도 채 안 돼 2쇄를 찍었다. 단순히 원전의 번역·편역이 아니라 오디세우스의 아들인 ‘텔레마코스’의 입장에서 원전을 해석한 것이 특징”이라며 “표류하는 한국 청년들의 고민을 담은 18개의 키워드를 뽑고 원전이 청년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이타카로 노를 저어갈 수 있는 길잡이 역할을 하도록 책을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영화와 원전을 비교해보려는 ‘지적 호기심’도 스크린셀러 열풍의 원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오디세이’ 책을 집필한 인문·고전 전문가 김상근 연세대 신과대학 명예교수는 “원전의 주제는 오디세우스의 ‘노스토스’(귀향)지만, 놀런 감독은 ‘제우스의 법’으로 일컫는 ‘문명의 재건’(크세니아·환대)으로 재해석했다. 할리우드 영화다보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아래서 벌어지는 (이란-이스라엘) 전쟁과 이민자들에 대한 폭압 등 현재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에서도 영화 개봉 후 서점을 중심으로 토론 모임이 다수 운영되고 있는데, 영화의 스펙터클에만 빠져 있는 대신 원전과 영화를 비교해보려는 한국 관객의 인문학적 관심은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덧붙였다.

원전의 주제는 오디세우스의 ‘노스토스’(귀향)지만,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제우스의 법’으로 일컫는 ‘문명의 재건’(크세니아·환대)으로 재해석했다. 유니버설픽처스 제공

원전의 주제는 오디세우스의 ‘노스토스’(귀향)지만,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제우스의 법’으로 일컫는 ‘문명의 재건’(크세니아·환대)으로 재해석했다. 유니버설픽처스 제공


 

‘인터스텔라’ 이어 ‘천만 관객’ 가능할까

 

이제 관심은 ‘오디세이’의 최종 흥행 성적이다. 개봉 2주차에 560만 관객을 끌어모은 ‘오디세이’는 꿈의 1천만 돌파라는 성적표를 받아안을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3주차 주말 성적이 고비가 될 것으로 본다. 김형호 영화시장 분석가는 “국내 스크린 상황 등을 고려했을 때 개봉 1·2주차 흥행 고비가 470만 명 정도인데 이를 이미 넘어섰다. 이제 3·4주차 700만 명이 1천만 관객 돌파로 가는 또 한 번의 가늠자가 될 것”이라며 “휴가·연휴·방학이 끝난 상황이 변수가 될 수 있는데, 경쟁작인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가 함께 극장에 걸린 것이 관객을 끌어모으는 데 서로 상승 작용을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국내 27개관에 불과한 CGV 아이맥스관을 넘어 사운드가 좋은 메가박스 돌비시네마 등 또 다른 특수관이나 일반관으로 관객의 발걸음이 향하느냐도 흥행 변수로 꼽힌다. 정지욱 평론가는 “아이맥스 화면 비율을 놓고 용아맥(1.43 대 1)과 다른 26개 아이맥스관(1.9 대 1)을 비교해 논쟁하는 관객까지 있지만, 용아맥은 고작 600석 남짓 규모”라며 “놀런 감독조차 ‘아이맥스관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강조한 만큼 일반관에서 아이맥스관으로, 아이맥스관에서 일반관으로 관객이 이동하면서 엔(n)차 관람이 이어진다면 1천만 관객 돌파도 가능할 것”이라고 짚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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