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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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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이후 두 번째 저예산 영화 ‘실낙원’… 연상호의 렌즈로 본 AI 시대

“인간 실존에 대한 고민 담았다”
등록 2026-10-15 18:41수정 2026-10-18 08:43
영화 ‘실낙원’ 포스터. CJENM 제공

영화 ‘실낙원’ 포스터. CJENM 제공


 

한국 문화계에서 ‘연상호’라는 이름은 꽤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돼지의 왕’(2011), ‘사이비’(2013) 등 애니메이션으로 영화계에 발을 디딘 그는 ‘부산행’(2016)으로 1천만 이상의 관객을 끌어모으며 상업영화 시장에서도 이름을 알렸다. ‘부산행’은 한국에서는 비(B)급 장르물 소재로 머물렀던 좀비를 대중문화의 핵심 키워드로 끌어올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후 ‘부산행’의 후속작이라 할 수 있는 ‘반도’(2020)와 ‘군체’(2026)를 선보이며 상업영화 감독으로서의 인장을 분명히 새겼다. 여기에 넷플릭스를 통해 시리즈물인 ‘지옥’(2021), ‘정이’(2023), ‘기생수: 더 그레이’(2024)와 영화 ‘계시록’(2025) 등 대규모 프로젝트를 잇달아 내놨고, 자신이 연출한 작품 외에도 ‘방법’(2020), ‘괴이’(2022), ‘선산’(2024), ‘가스인간’(2026) 등의 극본을 집필했다. 미술학도 출신이라는 경력을 살려 자신의 작품을 그래픽노블로 선보이기도 했다.

지난 15년간 애니메이션 감독, 영화감독, 각본가, 애니메이터, 드라마 피디 등의 역할을 끊임없이 오가며 다작을 하는 왕성한 창작력을 보여준 셈이다. 그는 “다양한 매체(플랫폼), 다양한 장르를 통해 작업하기 때문에 그에 맞는 다양한 스토리를 떠올릴 수 있다”고 다작의 근원을 설명했다. 그런 연상호 감독이 ‘얼굴’(2025)에 이은 두 번째 저예산 프로젝트 ‘실낙원’(2026년 10월21일 개봉)으로 다시 관객을 찾아왔다.

연상호 감독의 저예산 프로젝트 두 번째 영화 ‘실낙원’은 9년 전 캠핑 사건으로 실종됐던 아들이 살아 돌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CJENM 제공

연상호 감독의 저예산 프로젝트 두 번째 영화 ‘실낙원’은 9년 전 캠핑 사건으로 실종됐던 아들이 살아 돌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CJENM 제공


 

두 번째 저예산 작업… 재미도, 요령도 잡았다

2025년 9월 연상호 감독이 내놓은 첫 번째 저예산 프로젝트 ‘얼굴’은 영화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2억원의 예산으로 스태프 20여 명과 함께 13회차 촬영으로 완성한 이 작품은 국내에서만 108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고, 극장 매출만 약 110억원을 기록했다. 제작비 대비 50배의 수익을 올린 셈이다. ‘얼굴’은 주연배우인 박정민이 노개런티로 참여했고, 수익을 스태프를 포함한 참여자가 지분에 따라 나눠 갖는 방식을 택했다. 흥행뿐 아니라 작품성에서도 평가가 좋았다. 연상호 감독의 이런 시도는 코로나19를 거치며 쪼그라든 한국영화 시장에 새로운 활로를 개척하려는 시도로 평가받았다. 윤필립 영화평론가는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의 2025년 한국영화 결산 자료를 보면, 30억원 이상 상업영화 31편의 평균 총제작비는 104억원 정도인데, 손익분기점을 맞추지 못한 영화가 부지기수였다. 연상호 감독의 저예산 프로젝트는 천정부지로 오른 제작비의 압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콘텐츠를 만들어보겠다는 발상의 전환이었다”고 평했다.

연상호 감독은 저예산 프로젝트를 “동아리 활동하듯 재미있게 촬영했다”고 표현했다. ‘실낙원’ 개봉을 앞둔 10월14일 서울 종로구 팔판동 한 카페에서 만난 연 감독은 “(촬영) 회차가 짧다보니 스태프도 배우도 고생하지만, 다들 흥미롭고 재밌는 작업으로 느낀다”며 “첫 번째 작품인 ‘얼굴’은 지분에 따른 사후 정산이 정교하지 못한 부분이 있어 보너스 개념으로 돈을 더 지급하기도 했는데, 두 번째인 ‘실낙원’은 애초에 지분율 등을 더 확실하게 기획했다. 그래서 예산이 5억원으로 좀 늘었다”고 설명했다.

이미 상업영화로 큰 성공을 맛본 연 감독은 저예산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분명한 ‘원칙’도 세웠다. 첫째는 ‘영진위 등의 영화 제작 지원을 받지 않는다’, 둘째는 ‘전용관 상영시 의무 상영일수를 인정받기 위한 독립영화 인정제도 신청하지 않는다’이다. 즉 “상업영화를 하던 사람이 저예산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이 독립영화계의 구조와 생태계를 해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두 번째 프로젝트까지 완료하면서 제작비를 줄이는 노하우 같은 것도 생겼을까? 연 감독은 “회차가 늘면 당연히 비용이 늘기 때문에 최대 14회차를 넘지 않도록 계획을 짠다. 3주 정도인데, 배우든 스태프든 한 달은 부담스러워하지만 3주라고 하면 흔쾌히 ‘그럼 해보지, 뭐’라고 한다.(웃음) 촬영하다보면 시나리오상 14회차에 해결이 안 되는 분량이 생기는데, 그럴 때 과감하게 덜어내거나 뭉쳐서 한꺼번에 촬영하는 방식을 택한다. 예를 들어 커피숍에서 얘기하는 장면인데 ‘그냥 집에서 얘기하는 거로 하지, 뭐’라며 바꾸면 된다”고 말했다.

아들을 잃은 엄마 류소영(김현주)은 에이아이(AI) 증강현실 프로그램 ‘낙원의 아이들’을 통해 어린 시절 아들을 복원해 상실감을 버텨낸다. CJENM 제공

아들을 잃은 엄마 류소영(김현주)은 에이아이(AI) 증강현실 프로그램 ‘낙원의 아이들’을 통해 어린 시절 아들을 복원해 상실감을 버텨낸다. CJENM 제공


 

인간 vs AI, 누가 내 진짜 아이인가

 

연 감독의 두 번째 저예산 프로젝트 ‘실낙원’은 9년 전 캠핑스쿨 버스 실종 사건으로 시작한다. 이 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엄마 류소영(김현주)은 에이아이(AI·인공지능) 증강현실(AR) 프로그램 ‘낙원의 아이들’로 어린 시절의 아들을 복원해 힘겨운 상실감을 버텨낸다. 그러던 어느 날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들 류선우(배현성)가 돌아온다. 그토록 그리워하며 기다렸던 아들이지만, 그는 소영이 기억하는 순수한 어린아이와는 다른 낯선 존재일 뿐이다. 훌쩍 자라 살아 돌아온 눈앞의 낯선 아들과 실종 시점에 멈춰 그때의 추억과 감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에이아이 아들 중 ‘진짜 내 아이’는 어느 쪽일까, 엄마라는 이름으로 온전한 애정을 줘야 할 대상은 누구일까. 영화는 쉽게 답하기 힘든 질문을 계속해서 던진다.

영화 속 ‘낙원의 아이들’ 프로그램은 문화방송(MBC)이 제작했던 ‘너를 만나다’(2020~2024년)를 떠올리게 하는 현실적 설정이다. 에이아이와 가상현실(VR) 기술로 만든 휴먼 다큐멘터리에서 대중이 이미 경험했던 기술이 좀더 발전된 형태로 구현된 셈이다.

영화는 일종의 에스에프(SF)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오히려 심리 스릴러에 가깝다. 에이아이가 인간의 기억, 성격, 말투, 습관 등을 모두 완벽히 재현할 수 있다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실존’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자식에 대한 사랑이란 함께한 시간에서 비롯되는가, 아이의 (겉)모습에서 시작되는가, 존재 자체에 대한 애착 그 자체인가. 존 밀턴의 ‘실낙원’이 낙원에서 추방되면서(낙원을 잃으면서) 동시에 인간으로서의 정체성과 사색 능력을 갖추게 되는 아담과 이브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을 떠올리면, 감독이 관객에게 던지고자 한 문제의식의 출발점을 짐작할 수 있다.

연상호 감독은 “에이아이 시대에 인간 실존에 대한 고민이 더욱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이 작품은 에이아이와 인간의 관계를 통해 인간성의 본질을 묻는 작품”이라며 “에이아이가 집단지성과 다량의 학습을 통해 도출된 보편성을 기반으로 작동한다면, 인간은 그 보편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존재”라고 말했다. 이어 “관객 각자가 소영의 마지막 선택을 놓고 토론하면서 인간 실존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2025년 개봉한 영화 ‘얼굴’에 이어 두 번째 저예산 프로젝트 ‘실낙원’을 만든 연상호 감독. CJENM 제공

2025년 개봉한 영화 ‘얼굴’에 이어 두 번째 저예산 프로젝트 ‘실낙원’을 만든 연상호 감독. CJENM 제공


 

어머니 메모가 원작… “다음은 아내 것이 될 수도”

 

‘실낙원’은 연상호 감독의 어머니가 쓴 3장짜리 이야기에서 시작됐다. 감독의 어머니가 이 스토리 메모를 건넨 것은 2020년인데 “이런 이야기를 쓴 근원이 무엇인지, 왜 세 아들 중에 하필이면 나에게 줬는지”를 오래 생각했다고 한다. 그 후 어머니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오성은 작가의 소설 ‘블랙 인페르노’가 먼저 출간(2025년 9월)됐고, 소설을 뼈대로 다시 영화를 제작했다. 연 감독은 “어머니 메모는 ‘어떤 마을에 나쁜 짓만 일삼아 모두가 악마라고 손가락질하는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를 너무나 사랑하기에 아이를 품고 소멸하고자 하는 엄마에 관한 이야기’였다. 사실 그 엄마의 심리를 잘 이해할 수 없어 고민하며 스토리에 살을 붙여나갔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어머니도 엊그제 영화를 보시긴 했는데, 아직 깊은 대화를 나누진 못해 원작자로서 어떻게 보셨는지는 잘 모르겠다. 각 잡고 가족과 대화하는 기회가 드문데, 엄마와 곧 그런 기회를 갖게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연상호 감독은 ‘실낙원’ 개봉을 앞두고 세계관을 확장한 ‘실낙원 유니버스 4부작’을 씨제이이엔엠(CJENM) 공식 채널을 통해 공개했다. 연 감독은 “생성형 에이아이 기술을 본편 촬영 당시엔 상용하지 않았지만, 이 4부작을 만들면서 활용했다. 앞으로 영화계에서 에이아이는 외면할 수 없는 기술”이라며 “이번 4부작은 아이피(IP) 활용을 통한 수익 관점이 아니라 영화에서 출발해 그 문제의식이나 주제의식을 더 파고드는 즐거움을 관객에게 주기 위해, 즉 영화를 소비하는 또 다른 방식을 제공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말했다.

앞으로 계속해서 저예산 프로젝트를 이어가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세 번째 프로젝트는 아내가 ‘어머니 것만 만들지 말고 내 것도 영화로 만들어보라’며 건넨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아직 100% 숙성되진 않았지만 자신이 불행하다는 생각에 빠진 한 여고생 이야기”라며 웃었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저예산 프로젝트에 대해 “거대 자본을 등에 업을 수 있음에도 다른 방식을 취할 수 있는 연상호 감독이기에 가능한 작업”이라며 “제작 규모를 줄여도 뛰어난 스태프와 배우들이 선뜻 힘을 보태주는 것 자체가 그가 지닌 신뢰이자 능력”이라고 평가했다.

연상호 감독의 저예산 프로젝트 두 번째 영화 ‘실낙원’은 9년 전 캠핑 사건으로 실종됐던 아들이 살아 돌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CJENM 제공

연상호 감독의 저예산 프로젝트 두 번째 영화 ‘실낙원’은 9년 전 캠핑 사건으로 실종됐던 아들이 살아 돌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CJENM 제공


 

“저예산 영화 배급 브랜드 만들고파”

 

저예산 프로젝트가 연상호 감독에게만 머무르지 않고 더 확장돼 다른 감독이나 창작자에게 기회를 주는 형태로 발전할 순 없을까? 연 감독은 “구체적으로 실행되진 않았지만 몇몇 감독에게 제안한 바도 있다. 좀더 체계가 잡힌 배급사에서 저예산 영화를 제작·배급하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 미국의 ‘서치라이트 픽처스’ 같은. 아트하우스가 없어지면서 한국의 독립영화 배급이 더 어려워졌는데, 돌파구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저예산 프로젝트가 계속해서 힘을 받으려면 ‘실낙원’의 흥행도 중요하지 않을까. 연상호 감독은 ‘실낙원’이 ‘얼굴’의 성공을 재연하기 위한 프로젝트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저예산으로 만들고 직접 투자하면 그렇게 많은 부담을 지지 않는다. 저예산 프로젝트는 지금까지 한 번도 발견되지 않은 대중성을 발견하기 위한 작업”이라며 “이미 국외 선판매가 많이 돼 ‘실낙원’의 극장 손익분기점은 큰 의미가 없지만, 50만 명 이상만 들면 스태프와 기뻐하며 삼겹살 파티를 할 것 같다”고 말하며 웃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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