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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가 전한 메시지, ‘혼자가 아니야’

진정한 영웅은 힘센 사람 아닌 연대와 돌봄 실천하는 사람
등록 2026-09-03 22:15 수정 2026-09-06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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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말 개봉한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는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말을 재해석한 작품으로 기록될 만하다. 소니픽처스코리아 제공

2026년 7월 말 개봉한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는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말을 재해석한 작품으로 기록될 만하다. 소니픽처스코리아 제공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상징하는 이 말은 스파이더맨 그리고 피터 파커의 방황을 붙잡아주는 나침반이면서, 동시에 그가 영원히 갚을 수 없는 부채감에 짓눌리도록 하는 족쇄이기도 하다. 원했든 원치 않았든 피터가 초능력을 갖게 됐으니 그 힘을 반드시 옳은 일에 사용해야 한다는 것. 피터는 저 말을 지키기 위해 빌런들과 끝없이 싸운다. 그것이 힘을 가진 자가 해내야 할 옳은 일이기 때문에.

1960년대 이래 스파이더맨 이야기는 여러 차례 리부트됐다. 샘 레이미 감독의 영화 시리즈(감독 이름을 따서 ‘샘스파’라고 부른다), 마크 웹 감독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영화 시리즈(영화 제목을 따서 ‘어스파’라고 부른다), 마블스튜디오에서 제작한 영화 시리즈(주연배우 이름을 따서 ‘톰스파’라고 부른다), ‘스파이더맨 유니버스’ 애니메이션 시리즈(정립된 약칭은 없지만 ‘유스파’라고 부르자), 그리고 가장 원류라 할 만한 코믹스 시리즈에서도 스파이더맨은 거듭 재창조됐다.

그 수많은 시도 가운데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말을 재해석한 작품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2026년 7월 말 개봉한 ‘톰스파’의 네 번째 작품 ‘브랜드 뉴 데이’는 그것을 시도한 첫 작품으로 기록될 만하다. 이 작품은 피터 파커에게 주어진 ‘책임’의 범위를 피터 자신 그리고 가까운 타인으로 비로소 ‘확장’시켰다.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는 자기 삶을 지켜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 또한 하나의 책임임을 일깨운다. 소니픽처스코리아 제공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는 자기 삶을 지켜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 또한 하나의 책임임을 일깨운다. 소니픽처스코리아 제공


‘책임’의 범위 확장시킨 ‘브랜드 뉴 데이’

 

‘브랜드 뉴 데이’는 전편에서 모두의 기억 속에서 지워진 피터 파커가 그 누구의 인정과 지지도 없이 외롭게 영웅 생활을 하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그의 연인이던 엠제이(MJ)와 절친이던 네드가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4년의 시간을 그렇게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타인의 정신에 빙의하는 초능력자 빌런의 존재를 알게 되어, 그를 붙잡기 위해 추적하는 것이 이 영화의 핵심 줄거리다.

그 초능력자의 정체는 진 그레이. 마블의 또 다른 인기 시리즈 ‘엑스맨’의 주역 중 하나로, 강력한 정신 지배 능력을 가진 돌연변이(뮤턴트)다. 진은 어릴 적 유일한 가족이자 버팀목이던 언니가 정부기관인 ‘대미지 컨트롤’에 붙잡힌 뒤로 언니를 찾아다닌다. 진은 폭력을 행사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스파이더맨 테마를 차용해 말하자면, 일찍 언니를 잃은 그에겐 ‘큰 책임’을 알려줄 멘토가 없었기 때문이다.

진은 언니가 남긴 유일한 단서를 찾아 대미지 컨트롤 본사로 향하지만, 스파이더맨의 활약으로 도리어 대미지 컨트롤에 감금당하게 된다. 멀쩡한 정부기관인 줄 알았던 대미지 컨트롤은 진의 능력을 복제하기 위해 고문에 가까운 실험을 감행하는데, 진은 언니도 이 실험을 당하다가 결국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분노가 기폭제가 되어 각성한 진은 자신을 이용하려던 인간들에 대한 증오심으로 근방 1㎞의 모든 사람을 통제하기에 이른다.

이어지는 클라이맥스에서 이 작품은 기존 스파이더맨 시리즈와는 전혀 다른 접근법을 보여준다. 피터는 스파이더맨이 아닌 피터 자신으로서 진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진은 피터의 멘토였던 큰엄마 메이 파커와 피터 자신 사이의 기억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허용한다. 진이 들여다본 기억 속에서 메이는 피터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널 사랑하는 건 네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너이기 때문이야. 완전히 혼자인 것처럼 느껴질 때도 네가 혼자가 아니란 걸 절대 잊지 마.” 이어서 피터는 진에게 말한다. “나도 혼자 버텨보려고 애써봤는데, 결국 안 되더라고.” “너는 혼자가 아니야. 내가 있잖아.”

 

무거운 책임 홀로 감당했던 불행한 영웅

 

잠시 다른 작품들 얘기를 해보자. 스파이더맨을 다룬 이야기는 대개 특정한 설정들을 공유한다. 멀티버스(우리가 사는 우주 외에 여러 우주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설정)를 다룬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에서는 이렇게 공유되는 설정들을 ‘공식 설정’이라고 부르면서, 이 설정들이 깨지면 그 우주가 무너진다는 이야기를 펼쳤다. 그 설정들이 성립돼야 피터 파커라는 어리숙한 소년이 스파이더맨이라는 이타적인 영웅으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상할 수 있듯이 그 설정들은 피터에겐 대체로 비극적인 것이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그런 자신을 거두어 키워준 큰아버지가 자신의 방임으로 강도에게 살해당하고, 자신의 첫사랑이 빌런에게 살해당하고, 가장 친한 친구가 최대 숙적인 빌런이 되고, 몹시 가난하게 살아가며, 절대로 자기 정체가 드러나지 않도록 애쓰는 식이다. 작품마다 조금씩 변형은 있지만, 이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 모든 스토리가 피터의 삶에 누적된 결과 ‘무거운 책임을 홀로 감당해야 하는 불행한 영웅 스파이더맨’이 탄생한다. 겉보기엔 유머를 잃지 않고 늘 수다스러우며 친절한 이웃을 자처하는 밝은 영웅이지만, 빌런과의 싸움이 끝나면 외롭고 가난한 피터만이 남을 뿐이다. 아주 가까운 몇몇을 제외하면 그가 스파이더맨이라는 사실을 끝내 모른다. 큰 힘이 있어 큰 책임을 오롯이 감당해야 하면서 작디작은 인정조차 바랄 수 없는 고독함이 스파이더맨 서사의 핵심이다.

이런 막막한 서사 속에서 피터 파커가 이해와 연대를 구할 수 있는 대상은 오직 그 자신‘들’뿐이다. 다행히 마블 세계관은 멀티버스를 허용하고, 수많은 우주마다 조금씩 다른 스파이더맨이 살고 있다. ‘유스파’는 자신의 괴로움을 같은 우주의 누구에게도 나눌 수 없는 스파이더맨이 다른 우주의 스파이더맨들과 만나 연대하는 것을 핵심 이야기 줄기로 삼고 있다. 이런 구성은 ‘톰스파’의 세 번째 작품인 ‘노 웨이 홈’에서 샘스파와 어스파, 톰스파의 스파이더맨들이 만나는 이야기로 재현되기도 했다. “당신들은 나를 이해할 수 없다”며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는 톰스파에게 샘스파·어스파는 이렇게 말한다. “그럴지도. 하지만 나도 네가 겪은 그 일을 겪어봤는걸.”

2026년 7월 말 개봉한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는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말을 재해석한 작품으로 기록될 만하다. 소니픽처스코리아 제공

2026년 7월 말 개봉한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는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말을 재해석한 작품으로 기록될 만하다. 소니픽처스코리아 제공


작은 인정도 바랄 수 없는 고독한 존재

 

스파이더맨은 언제나 외로워야 했지만 ‘톰스파’는 좀 달랐다. 스파이더맨이라면 당연히 겪어야 할 불행들이 그에겐 찾아오지 않았고, 그의 주변엔 비밀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와 슈퍼히어로 동료가 여럿 있었으며, 토니 스타크라는 압도적인 부자로부터 아낌없는 후원을 받았다. 살해당해야 할 큰아버지의 존재는 처음부터 그려지지 않았고, 친한 친구가 빌런이 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피터 파커는 스파이더맨이 되었지만 10대에 걸맞은 명랑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첫 작품인 ‘홈커밍’과 두 번째 작품인 ‘파 프롬 홈’까지 그는 확실히 기존 스파이더맨들과 확연히 다르게 행복했다. 그러면서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고유의 주제의식은 그다지 강조되지 않았다.

분기점은 ‘노 웨이 홈’이었다. ‘파 프롬 홈’에서 미스테리오라는 빌런의 공작으로 만천하에 정체가 공개된 피터가 사태를 수습하려다 오히려 우주적 차원의 문제를 일으킨 이야기였다. 이 작품에서 피터가 책임의 무게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한 탓으로 멀티버스 질서가 망가졌는데, 그 파장으로 그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메이 파커가 살해되는 사건까지 발생한다. 이 상황에 이르러서야 메이의 유언으로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말이 등장했다.

피터는 망가진 멀티버스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너무나 큰 책임을 감당하기로 결단했다. 모두가 스파이더맨의 정체를 잊게 하는 주문은 실패했으니, 대신 피터 파커라는 사람의 존재 자체를 잊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이번 주문은 어떤 방해도 없이 제대로 행해졌고, 피터의 여자친구, 피터의 소중한 친구들, 전세계의 시민들, 심지어 그의 영웅 동료들까지 피터를 잊어버렸다. 이제 피터는 다른 세계의 스파이더맨처럼 너무나 외롭고 가난하며 오직 책임을 다해 빌런들과 끊임없이 싸우는 스파이더맨으로 살아가게 됐다.

‘브랜드 뉴 데이’는 이 절망 뒤에 이어진 이야기다. 전편에서 피터는 영웅으로서 책임을 혼자 감당하는 것으로 메이의 유언을 따랐지만, 이번 이야기에서 그는 그 유언에 앞서 들었던 이야기를 다시 떠올려낸다. 자기 자신을 사랑할 것,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 것. 자기 삶을 지켜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 또한 하나의 책임이라는 게 메이가 진짜로 전하고 싶던 이야기였다.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는 자기 삶을 지켜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 또한 하나의 책임임을 일깨운다. 소니픽처스코리아 제공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는 자기 삶을 지켜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 또한 하나의 책임임을 일깨운다. 소니픽처스코리아 제공


자신을 지켜내려고 노력하는 것도 책임

 

피터는 자신의 정체가 알려지면 지인들이 위협받는 것이 두려워 스파이더맨이 된 이래 비밀주의를 고수해왔다. 그러나 오히려 그의 정체를 알았던 이들, 즉 메이와 MJ, 네드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그 책임을 나눔으로써 그의 삶을 지켜주는 존재였다는 사실을, 피터는 모두의 기억에서 지워진 뒤에야 깨달았다. 그리고 이제 자신이 그와 같은 존재, 진 그레이에게 그런 버팀목이 돼주기로 결정했다. 그 역할 역시 자신의 힘에 따른 책임이 될 수 있음을 피터는 이제야 알게 됐다.

이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갈지는 모르겠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스파이더맨만 단독으로 활동하는 세계관이 아니므로, 피터의 삶은 외부의 위협과 다른 히어로들의 영향으로 흔들릴 수 있다. 다른 작품들에서 그러했듯 진 그레이는 언제든 다시 위태로운 상태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말이 더는 족쇄로 따라다니지는 않을 듯하다. 이제 그들은 연대와 돌봄을 이해하게 됐기 때문이다. 그 간단한 변화만으로도 그들의 여정이 조금은 더 다채로워질 것이다.

 

강남규 ‘토론의 즐거움’ 멤버·‘지금은 없는 시민’ 저자

한겨레 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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