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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했을까?’, 정신건강은 정치적·실존적 문제다

다큐멘터리 영화 ‘어떻게 해야 했을까?’… “빨리 정신과에 갔어야” 너머 치료와 돌봄에 관한 질문
등록 2026-09-10 22:23수정 2026-09-12 16:46
다큐멘터리영화 ‘어떻게 해야 했을까?’ 포스터. (주)엣나인필름

다큐멘터리영화 ‘어떻게 해야 했을까?’ 포스터. (주)엣나인필름


 

 

조현병과 마주한 가족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영화 ‘어떻게 해야 했을까?’가 한국에서 상영되기 훨씬 전인 2025년 1월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에 ‘인권의 문제입니다, 조현병의 문제가 아니고요’라는 기사가 실렸다. 일본에서 이 영화를 다룬 글을 번역한 기사였다. 나는 반자동적으로 이 기사를 섭식장애 비영리단체인 ‘잠수함토끼콜렉티브’ 인스타그램에 공유했다. 놀라움, 그리고 이런 이야기가 발설됐다는 안도까지 포함한 복잡한 감정으로.

 

누구나 알지만 쉬쉬해온 이야기

 

영화에 담긴 이야기는 충격적인 사건이기보다는 우리가 익히 알지만 쉬쉬해온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우리 가족은 강원도 화천군 어느 국민학교 관사 단칸방에 살았다. 어머니에 따르면 옆 관사에는 아버지의 선배 교사 가족이 살았는데, 그 집에는 온종일 자물쇠로 잠긴 방 안에 갇혀 지내는 아이가 하나 있었다. 혼자 남겨지면 그 아이는 문을 부술 듯 두드리며 소리를 질렀고, 어머니는 놀라 아이 엄마를 찾으러 뛰어나가곤 했다.

‘어떻게 해야 했을까?’의 감독 후지노 도모아키의 누나 마사코가 처음 조현병 양성 증상을 보인 것은 1983년, 스물네 살 때였다. 감독의 기록에 따르면 어머니와 동생은 그때 구급차를 불렀다. 감독은 2001년부터 집 안을 촬영했고, 2005년 부모가 현관문에 자물쇠를 채우기 시작한 사실을 알았다. 2008년 마사코는 석 달간 입원 치료를 받았고, 감독은 25년 만에 누나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고 한다.

다큐멘터리영화 ‘어떻게 해야 했을까?’ 스틸컷. (주)엣나인필름

다큐멘터리영화 ‘어떻게 해야 했을까?’ 스틸컷. (주)엣나인필름


영화가 한국에서 개봉한 지 한 달 만에 누적 관객 9만 명을 넘어서는 동안 ‘어떻게 해야 했을까?’라는 제목의 물음은 “왜 더 빨리 정신과에 데려가지 않았을까”로 일괄 번역되는 듯싶었다. 하지만 영화가 남긴 질문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가족은 처음부터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현관문을 잠근 일을 정당화할 수도 없다. 중요한 것은 그 시간을 ‘무지한 가족이 치료를 거부한 시간’이라는 한 문장으로 무마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당시 그 가족에게 어떤 선택지가 있었나. 병원에 갔다면 어떤 치료를 받을 수 있었을까. 우리는 왜 “병원에 갔어야 했다”는 쉬운 정답에 기대어, 정작 병원에 들어간 뒤 한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좀처럼 묻지 않을까.

20대의 내가 거식증 한가운데 있을 때 어머니는 한여름인 8월에도 밖에 나갈 때 긴소매를 입으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앙상한 팔이라도 가리기 위해서였다. 아버지는 화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윤리적 성숙도나 사려 깊음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를 데리고 사람들의 시선 속으로 뛰어드는 사람은 누구인가. 어머니다. 내가 거리로 나갔을 때 “딸을 저렇게 마르도록 내버려둔” 사람으로 힐난받을 이도 어머니였을 것이다.

어젯밤에도 나는 오랫동안 멸균된 집 안에 갇히듯 지내온 한 아이의 전화를 받았다. 거식증과 강박증이 수년째 그 애의 평범한 일상을 막고 있었다. 가족은 회복을 위해 많은 것을 감수하며 할 수 있는 것을 해왔지만, 그 애정과 헌신이 주된 돌봄 제공자인 아이 어머니의 피로와 절망을 없는 것으로 만들어주진 못한다. 아이의 불안이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호소가 되고, 그렇다고 화내서 해결될 일도 아니라는 것을 알 때, 돌보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는 자기만 없어지면 가족이 힘들지 않을 거라며 울었다. 20여 년 전 거식증으로 대학을 휴학하고 방 안에 숨어 지내며, 나도 우리 집에 애초에 내가 없었다면 얼마나 깔끔하고 완벽한 가족이었을까 생각하곤 했다.

 

각자가 특정 시간·장소·지식·경험에 놓여

 

나는 소셜미디어에서 아기 영상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한번은 한 어머니가 힘겹게 우는 갓난아기 영상을 올리며, 안아달라고 보채는 아기를 조금 늦게 안아주었더니 “서러운 티를 내려고 일부러” 흐느끼는 게 귀엽다는 식의 말을 덧붙였다. 내가 보기에는 그저 자기도 어쩔 수 없이 흐느끼는 아기였다. 그런데 어떻게 저 갓난아기가 의도적으로 타자에게 어떤 인상을 주기 위해 행동한다고 해석할 수 있을까, 어안이 벙벙했다. 그것이 양육자로서의 자질 부족 때문인지, 내가 알 수 없는 맥락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사람은 같은 행동도 다르게 해석하고 그에 따라 대처한다.

다큐멘터리영화 ‘어떻게 해야 했을까?’ 스틸컷. (주)엣나인필름

다큐멘터리영화 ‘어떻게 해야 했을까?’ 스틸컷. (주)엣나인필름


영화 초반 녹음에서 마사코의 어머니는 “어떻게 우리 집에 조현병을 만들 수 있니” “넌 어쩌면 그렇게 못됐니”라는 식으로 소리친다. 지금의 관객에게는 잔인하게 들리지만 그 말도 진공에서 나온 것은 아닐 것이다. 당시 일본의 정신질환 인식, 후쿠오카에 대대로 정착해온 가족의 역사, 그 가족과 당시 사회에서 의사와 의학자라는 직업에 부여된 의미, 학문적 명예와 가족의 체면도 그 반응 속에 들어 있었을 것이다.

전문가라고 해서 이런 맥락 바깥에 서 있는 것도 아니다. 당시 대학 신입생으로 자신도 불안정했던 후지노 감독은 학교 상담소에서 위로를 얻고 누나도 그 상담가에게 의뢰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부모의 태도를 접한 상담가는 마사코가 죽을 때까지 회복될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나는 이 장면 역시 너무나 특수하고 시대적인 판단처럼 느꼈다. 가족도, 당사자도, 상담가도 특정한 시간과 장소, 지식과 경험 속에 놓인 사람이다.

정신의학과 심리학이 축적해온 지식의 가치를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조현병도 섭식장애도 가족의 사랑과 인내만으로 감당하라고 할 수 없다. 조기 개입이 중요한 경우도 많다. 그러나 정신의학적 지식이 유효하다는 것과 현실의 정신의료 체제가 언제나 그 사람에게 충분히 유익하고 최선이라는 것은 다른 명제다.

 

당사자와 가족에게만 전가되는 책임

 

섭식장애 경험 당사자로 오래 살아왔고 지금은 다른 당사자와 가족들을 만나는 나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라”는 말을 후렴구처럼 들어왔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어떤 전문가를 찾아 어디에서 어떤 치료를 받을 수 있는가. 이름난 대학병원의 섭식장애 전문 정신과 교수가 입원치료만이 답이라고 권할 때, 그 입원 병동에는 섭식장애를 이해하는 치료팀이 있는가. 치료가 실패하거나 해를 남겼을 때 책임은 누가 지는가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

섭식장애와 마주하면서 다급해진 가족은 책과 논문과 인터넷을 뒤져 “체질량지수(BMI)가 15 이하이면 입원 치료가 필요하다” 같은 문장에 절박해지고, 큰 병원을 찾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입원’이라는 행정적 절차가 아니라 ‘입원 치료’다. 한국에 섭식장애 환자와 가족이 안심하고 의지할 전문적이고 연속적인 입원 치료 체계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몇 해 전 정신병원 격리·강박 사망 사건이 일어났을 때 정신장애 당사자와 인권단체가 연 토론회에서는 열악한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돼 침대에 강박된 채 그대로 소변을 보기 전에는 풀려날 수 없었다는 증언도 들었다. 그렇다고 “병원에 가지 말자”고 할 수는 없다. 다만 “병원에 가라”는 말만 정답인 것도 아니다.

더 이상한 것은 치료를 시도한 뒤에도 차도가 없을 때 그것이 의료나 치료의 실패보다 환자나 가족의 문제로 해석되기 쉽다는 점이다. 치료를 거부해 악화하면 당사자 책임, 치료받고도 낫지 않으면 협조하지 않은 당사자나 제대로 돌보지 못한 가족의 책임이 된다. 정신질환 가운데서도 특히 섭식장애나 조현병처럼 만성화와 치료 저항성이 자주 거론되는 진단에서는, 책임은 좀처럼 의료체계 쪽으로 되돌아오지 않는다.

 

정신의학 대상은 ‘각자 세계 속의 사람’

 

다큐멘터리영화 ‘어떻게 해야 했을까?’ 포스터. (주)엣나인필름

다큐멘터리영화 ‘어떻게 해야 했을까?’ 포스터. (주)엣나인필름


거식증의 정신병리에 새로운 이해를 제시해 내 관심을 끌고 이후 연락을 주고받기도 한 스위스 제네바대학병원 소아정신과 의사이자 인류학자 스티브 빌렘은 최근 ‘정신의학이 심장내과의 심장이나 신장내과의 신장처럼 표적 장기를 찾는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썼다. 정신의학이 마주하는 대상은 뇌라는 기관만이 아니라 ‘각자의 세계 속에 있는 사람’(person-in-their-world)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이 ‘어떻게 해야 했을까?’를 생각하는 데 유용하다고 느낀다. 영화에는 마사코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부모와 동생도 각자의 역사와 두려움, 지식의 한계와 시대의 규범 속에서 판단하고 실패하고 견딘다. ‘조현병 환자 한 명과 정상적인 주변인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서로 다른 세계를 가진 사람들이 한집에서 이해하고 오해하며 살아낸 기록이다.

이처럼 각자의 세계 속에 놓인 사람들을 하나의 치료 프로토콜 안으로 불러들인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정신과의사 한 명이 그들을 그 프로토콜 안으로 불러들이는 일부터가 힘에 부칠 것이다. 조앤 그린버그의 자전적 소설 ‘난 너에게 장미정원을 약속하지 않았어’에서 정신과 의사 프리트의 모델이 된 실존인물은 프리다 프롬라이히만이었다. 게일 혼스타인은 그의 전기에 ‘한 사람을 구하는 것은 세계를 구하는 것’(To Redeem One Person Is to Redeem the World)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나는 이 말을 생명의 무한한 가치에 대한 비유로만 읽고 싶지 않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하나의 세계가 있다. 관계와 기억, 역할과 장소, 몸의 감각, 자신이 누구라고 느끼는 방식이 그 세계다. 정신질환이 한 사람을 휩쓸 때 좁아지고 때로 사라지는 것도 바로 그 세계다.

그래서 영화 속 현관문의 자물쇠는 한 가족의 잘못만을 상징하는 물건으로 보이지 않는다. 문을 여는 것만으로 자유가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문밖에 갈 곳이 있어야 하고, 그 사람을 받아들일 관계와 제도가 있어야 한다. 도움을 청해도 삶 전체를 빼앗기지 않으리라는 신뢰도 필요하다. ‘어떻게 해야 했을까?’는 정답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질문을 조금 바꿔보고 싶다. 그 가족은 어떻게 해야 했을까 이전에 그때 사회는 그 가족이 무엇을 할 수 있게 해놓았는가. 그리고 지금 우리는 정신적 위기에 처한 사람과 그 가족에게 어떤 선택지를 마련해두고 있나.

한 사람을 살린다는 것은 체중을 회복하고 환각을 줄이는 데서 끝날 수 없다. 다시 관계를 맺고, 선택하고, 실패하고, 자기 삶에 관여할 수 있어야 한다. 한 사람을 세계에 적응시키는 것만이 치료라면, 세계는 언제나 무죄로 남는다. 정신건강은 개인의 뇌와 증상만의 문제가 아니라 삶과 관계, 제도와 사회가 얽힌 정치적이고 실존적인 문제다. 한 사람을 살리는 일은 그 사람이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세계 쪽의 조건도 함께 바꾸는 일이어야 한다.

2026년 7월15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에서 박지니 작가가 1625 표지이야기 ‘삼키지 못한 죄’와 관련해 인터뷰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2026년 7월15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에서 박지니 작가가 1625 표지이야기 ‘삼키지 못한 죄’와 관련해 인터뷰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박지니 잠수함토끼콜렉티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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