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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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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친구의 나라에 어떤 위로를 전할 수 있을까

디아스포라 요리책 ‘식탁은 걷는다’를 읽는 마음
등록 2025-04-03 19:20 수정 2025-04-10 15:12


분노와 좌절이 널뛰는 마음으로 헌법재판소의 선고를 기다리다 4월이 왔다. 탄핵 선고가 나올 때까지 모든 일정이 긴급이고 일상은 예외 상태가 돼버린 활동가 친구가 길바닥에 앉아 김밥을 먹는 사진을 보았다. 한 손에 ‘윤석열들 없는 나라,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팻말을 든 친구의 다른 손에 들린, 점심이자 저녁인 김밥. 그 김밥을 보며 빠듯한 회의 시간에 맞춰 머릿수대로 주문해 나눠 먹던 셀 수 없이 많은 김밥이 떠올랐다. 서울에 온 뒤로는 김밥이 지긋지긋하다며 김밥 독 빼내려면 1년은 걸린다, 너스레를 떨던 동료의 말이 떠올랐다.

광장과 거리의 저 수많은 사람이 먹는 밥을, 그리고 먹지 못하는 밥을 생각한다. 고공으로, 텐트로, 농성장으로 보내는 도시락을 싸는 사람들의 마음과 도시락 전달을 막는 거로도 모자라 그 생명줄 연대에 ‘업무방해죄’를 걸어 처벌하려는 사람들이 기대는 ‘법’ 사이의 어마어마한 간극을 생각한다. 야속하게 추운 날씨에 따뜻한 집에서 제대로 차린 한 끼를 챙겨 먹을 때마다 가슴에 짜르르 느껴지는 죄책감이 나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먹는 것에 진심인 민족’이라는 말이 무색하도록 이 땅의 위정자들과 법관들은 우리가 먹고사는 문제에, 때로는 삶과 죽음을 갈라놓는 이 문제에 비정하리만큼 무관심하다.

‘전쟁 같은 맛’(주해연 옮김, 글항아리 펴냄)의 저자 그레이스 M. 조는 엄마에 대한 “기억의 전면”에 항상 음식이 있었음을 말한다. 저자는 “남겨두고 떠나온 사람들과 장소”와 우리를 연결해주는 음식을 둘러싼 기억을 통해 엄마 삶의 서사를 재구성해나간다. 누군가를 먹이려는 욕망은 삶의 투지이며, 이주민들은 함께 먹는 음식으로 서로를 살린다. 조현병 발병 뒤 은둔생활을 하는 엄마를 위해, 저자가 엄마의 레시피를 배워 차린 생태찌개는 “과거를 보드랍게 놓아”준다.

제 손으로 밥상 한 번 차려본 적 없는 입들의 엄마 밥, 아내 밥, 집밥 타령은 지긋지긋하지만, 나 역시 나이 들며 음식을 만들고 나눠 먹는 행위의 기쁨을 빼고는 내 삶을 설명하기가 어려운 사람이 되었다. ‘식탁은 걷는다-나와 함께 이주하고 정착한 레시피’(온통소피트, 로사마리아, 마리, 킴얏뚜, 김로빌린 지음, 좀비출판 펴냄)는 떠나온 땅의 음식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나누는 대화와 레시피를 담아낸, ‘디아스포라 요리책’이다. 이 책은 “나에게 어떤 음식이 기억 속에 있다. 그리고 그 음식을 먹었던 곳이 나로부터 지구 반 바퀴씩 떨어져 있다면, 나는 그 음식을 나의 식탁에 다시 불러낼 수 있을까?”라는 단순한 물음으로 시작한다.

‘식탁은 걷는다’를 읽으면 향신료의 풍미와 새콤한 국물 맛으로 꽤 화려한 음식이라 생각해왔던 타이의 ‘똠 얌 꿍’이 놀랍게도 감기에 걸리거나 배가 아플 때 먹는 음식임을 알게 된다. 속이 아프다며 죽을 먹는 나를 보고 ‘쌀은 소화가 잘 안 되잖아’라며 놀라워하던 스페인 친구를 생각했다. 콩수프를 끼얹은 옥수수 토르티야 요리인 멕시코의 ‘엔프리홀라다스’ 레시피에서는 “사람은 옥수수로 빚어진 존재”라고 믿었다던 고대 문명 이야기를 듣고 ‘마늘과 쑥’을 먹고 사람이 된 곰을 떠올렸다. 미얀마의 코코넛 밀크와 식빵으로 만든 디저트인 ‘빠목으 온 노우싼’을 상상하며 식민지, 쿠데타, 민주 항쟁 등 한국과 익숙한 역사를 공유하는 미얀마의 상황에 속이 타고, 가부장적 미얀마 군부의 여성혐오를 역이용하는 기발한 투쟁 전략에 감탄하다가도, 현재 너무도 참담한 미얀마의 지진 피해 뉴스 앞에서 미얀마 커뮤니티에 어떤 위로를 전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타국에서 음식을 통해 서로를 알아간다는 것은 자신이 상식으로 믿던 세계가 부서지고 숙취와 해장을 둘러싼 비법이 격돌하며 익숙한 맛에 위로받고 낯선 맛에 마음이 녹아내린다는 뜻이다. 우리는 그렇게 성큼 서로에게 다가간다.

 

최이슬기 번역가

 

*번역이라는 집요하고 내밀한 읽기. 번역가와 함께 책을 읽어갑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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