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명상이 싫었다. 어머니 지구, 영성, 치유, 비폭력 대화가 싫었던 것과 동일한 이유다. 여성주의가 세상을 바꾸지 못해서 다치고 아픈 여자들이 결국 내면의 평화에 집착하게 되는 것 같아서, 어쩌면 그보다도 그걸 하는 여자들이 서로의 속을 뒤집고 지지고 볶는 것이 넌더리가 나서.
김보영 번역가가 옮긴 알렉시스 폴린 검스의 ‘떠오르는 숨’에서 나는 이 오해를 부수는 새로운 세계를 만났다. 이 책은 명상이 어떻게 급진적인 운동이자 정치적 실천이 되는지, ‘중립적인 과학 언어’가 얼마나 허구인지를 ‘생태학적 글쓰기’로 드러낸다.
‘떠오르는 숨’은 “익사하지 않기 위한 안내”라는 가이드로 시작한다. 식물, 동물, 땅과 바다의 모든 것이 같은 공기로 숨 쉬기에 ‘호흡’은 지구 생태계 모든 종의 ‘공동 운명’이라는 사실이 환기된다. 호흡의 범위만큼 익사의 영향력도 포괄적임을 사유하면서, 독자는 생명의 바다가 흑인을 사고팔았던 대서양 횡단 노예무역 항로이자 해양 포유류를 포획해 익사하게 했던 죽음의 공간이라는 맥락까지 이해하게 된다.
‘떠오르는 숨’의 원제는 ‘익사하지 않은’(Undrowned)이다. 포획된 채 노예선의 밑바닥에서 살아남은 선조들은 익사한 친족, 동료와 같은 공기를 마셨다. 그 호흡은 상업 포경이 아니었다면 로키산맥 국립공원 크기의 숲만큼 지구의 탄소 순환을 이롭게 했을, 엄청난 규모로 사냥당한 고래와 그 친족들의 숨과도 연결돼 있다. 저자인 알렉시스(저자가 모두의 이름을 부르듯 저자의 이름을 부른다)는 “사랑합니다”를 끊임없이 되뇌며 해양 포유류와 친족인 인간 포유류를 연결하며 사유하고, 그 사유 자체가 급진적 운동이 된다.
‘익사하지 않기’가 현재진행형인 이유는 “인종, 젠더, 장애에 따른 차별로 점철된 자본주의가 목을 조르는 상황 속에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포유류가 살아남기 위해 계속해서 ‘인간’의 경계와 공감을 확장하며 때로는 취약해지고 때로는 적응하고 협력하며 싸우고 휴식하는 법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알렉시스는 인간 포유류가 ‘학교’를 꾸리는 줄박이돌고래, 반점을 숨겨버린 대서양 점박이돌고래, 한 달 동안 껴안고 피부를 벗기는 남방코끼리물범 등 해양 포유류 친족으로부터 그 방법을 배울 수 있음을 안내한다. 또한 서로의 아이를 키우는 ‘혁명적 보살핌’을 나누는 유색인종 페미니스트나 지속적으로 변신하며 체제를 교란하는 퀴어의 경험이 이들과 얼마나 닮아있는지를 상기시키며 ‘우리’는 다시 연결된다.
페미니즘은 ‘우리’와 ‘그들’을 구분해서 호명할 때 언제나 차별과 배제를 생각하라 요청한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독자를 거침없이 당신이라 부르다가, 어느새 당신은 고리무늬물범에서 검은턱고래로 변신하고, 또 우리의 숨쉬기를 위협하는 체제의 일부가 되어 돌아온다. 방심한 독자를 밀어내고 포섭하며 끝없이 이동하는 인칭대명사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도 ‘해양 포유류 수습생’이 되는 첫 호흡을 하게 된다.
자메이카 킨케이드의 단편소설 ‘암흑’(Blackness)(이미애 옮김)은 이렇게 시작한다. “떨어지는 암흑은 얼마나 부드러운가. 그것은 소리 없이 내려앉지만 귀를 먹먹하게 만든다. (…) 암흑은 나와 분리될 수 없지만, 이따금 나는 그 밖에 서 있을 수 있다. 암흑은 공기가 아니지만, 나는 그것을 들이마신다.” ‘Blackness’가 ‘암흑’으로 번역되며 텍스트 전체에 ‘흑인성’이 삭제된 것에 대해 아쉬움을 느꼈지만, 그동안 ‘검다는 것’에 잘 달라붙지 않았던 심상들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를 음미하고 인종적 은유를 떠올리며 다시 읽어봤다. 단순한 듯한 이 단어에 대한 통찰력을 ‘떠오르는 숨’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알렉시스는 “검다는 것(Blackness)은 인간보다 더 포괄적인 개념”이라 말한다. “이 사회에서 검정이라는 용어에 대한 상징적, 묘사적 언설 중 흑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은 건 없습니다. 따라서 검정은 흑인입니다.”
인권활동가인 친구가 ‘선동당하는 것이 좋다’고 말해서 놀란 적이 있다. 기꺼이 선동당한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아무도 나를 선동하지 않는 삶은 얼마나 재미없을지. 고래의 삶을 알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선동당하고 싶은 당신에게, “당신을 사랑합니다”가 얼마나 많은 말로 번역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은 당신에게, ‘떠오르는 숨’을 건넨다.
최이슬기 번역가
*번역이라는 집요하고 내밀한 읽기. 번역가와 함께 책을 읽어갑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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