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비’, 키에스 레이먼 지음, 교유서가 펴냄
미국 남부 미시시피주에서 태어난 작가 키에스 레이먼의 ‘헤비’(장주연 옮김, 교유서가 펴냄)를 읽으며 나는 소리를 지르고 키들키들 웃었으며 격분했고 마음이 무너졌다. 미국에서 ‘무겁고 검은’ 몸의 남자아이로 자라는 것이 어떤 일인지 아무것도 몰랐던 나 같은 사람이 고작 책 한 권을 읽고 그 삶에 가까이 닿은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 이상하기도 했다.
책의 여백에 은밀한 기억과 탄식을 기록했고 급기야 ‘이 책을 모든 사람에게 읽혀야 한다! 강제로!’라고 적었다. 동시에 이렇게 내밀한 이야기를 읽어도 되는지, 사람이란 어쩌면 이토록 연약하고 강한지, 어떻게 이런 글을 써내고야 마는지를 생각했다. 책의 위대함에 누를 끼칠 것만 같은 이 누추한 서평을 집어치우고, 이 책의 무게에 가만히, 더 오래 눌려 있고 싶었다.
“당신에게 이 글을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는 거짓말을 쓰고 싶었습니다. 흑인의 거짓말, 흑인의 허벅지, 흑인의 사랑, 흑인의 웃음, 흑인의 음식, 흑인의 중독, 흑인의 튼살, 흑인의 돈, 흑인의 언어, 흑인의 학대, 흑인의 블루스, 흑인의 배꼽, 흑인의 승리, 흑인에게 있었던 일들, 흑인의 굴곡진 삶, 흑인의 동의, 흑인 부모들, 흑인 아이들 같은 것들에 대해 솔직하게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우리 가족에 대해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는 미국인의 회고록을 쓰고 싶었습니다.”
‘헤비’의 첫 문단을 읽었을 때 나는 저 지긋지긋한 감정을 잘 안다고 생각했다. 회고하는 행위와 글쓰기 자체가 주는 고통을, 돌고 돌아 가족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로 돌아오는 자기분석의 지난함을, 소수자의 이야기에 으레 기대되는 것들에 갇히고 싶지 않은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모든 것이 다르게 느껴졌다. 그것은 ‘당신’이 어쩌면 이 책을 가장 보여주기 힘든 대상이었을 작가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며, 타협 없이 반복된 ‘흑인의’에 매달린 무게 때문이다. 폭력과 학대와 사랑과 부드러움이 공존하는 관계를 정의롭고 원론적인 말로 깔끔하게 정리해버리는 것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헤비’는 우리 모두가 자기 삶의 재현에 요구할 법한 복잡함을 겹겹이 살려낸 채로, 사적 경험 속에서 미국 사회와 시대를 통찰하며 ‘미국인의 회고록 되기’를 성취해낸다.
작가의 삶에 일어난 사건들을 이 글에서 굳이 언급하지 않으려 한다. 다만 몇 가지 장면을 남겨놓는다. “너무 많이 먹고 밤에 잠을 못 자는” 열두 살의 키에스에게 유일하게 안전한 사랑을 준 할머니, ‘안쓰러운’ 백인들이 던지는 감정대로 느끼지 말라는 할머니의 가르침, 허기와 수치심과 중독과 두려움 속의 몸, 경찰의 총에 맞을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올바른 영어를 써야 한다는 어머니의 강박과 어린 시절부터 끝없이 반복된 글쓰기 훈련(“에세이 다 썼니?”), 흑인 아이들의 “사랑과 해방, 기억과 상상력”에 헌신하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를 “휘고, 부수고, 다시 세우는” 것이 유일한 길이라는 배움.
키에스가 태어난 미시시피에서 ‘헤비’를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이 불법이 되었다고 한다. 흑인을 “배은망덕하고, 무책임하며, 무모하고, 폭력적이라 부르면서 스스로를 결백한 미국인, 기독교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과 함께, 돌아온 도널드 트럼프의 폭정 아래 살아가야만 하는 지금, ‘헤비’의 무거움은 절실한 구원의 가능성이다.
최이슬기 번역가
*번역이라는 집요하고 내밀한 읽기. 번역가와 함께 책을 읽어갑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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