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뉴스타파의 보도를 통해 극우 성향 단체인 ‘리박스쿨’이 윤석열 정권 교육부에 정책 자문을 하고 초등학생들에게 방과 후 돌봄을 제공하는 ‘늘봄학교’에 프로그램을 공급했음이 드러났다. 하루 만에 뚝딱 발급되는 의심스러운 강사 자격증을 미끼로 사람들을 끌어들여 댓글공작팀을 운영 중이었다는 ‘리박스쿨’, 그들의 최종 목표가 어린이 교육이라는 것은 진짜 무서운 이야기이다. 리박스쿨은 이승만을 모세에 비유하고 박정희를 찬양하며 온갖 재벌 총수들 이름을 노래로 만들어 부르는 ‘역사 교육’ 사이사이로, 창의성 계발의 탈을 쓰고 “낙태 반대” “차별금지가 차별” “동성애 반대” 등 차별과 혐오를 주입하고 있었다. 2020년 보수 정당과 보수 개신교 세력이 주축이 돼 여성가족부가 주관한 ‘나다움 어린이책’ 사업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해당 도서들이 금서가 되어 공공도서관에서 회수된 사건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2023년 ‘나다움 어린이책’은 다시 돌아왔지만, 같은 해 김태흠 충남도지사에 의해 성평등·성교육 도서들은 지역 공공도서관에서 열람이 제한됐다. 2024년 경기도교육청 역시 관련 도서들에 열람을 금지하도록 압박하고 각급 학교에서 2528권을 폐기하는 등 어린이책 퇴출은 지속됐다.
나는 당시 폐기된 책들을 동네 도서관에서 검색해봤다. 대부분 찾을 수 없거나 보존서고에 격리돼 있다. 외설 성교육이라는 집중 공격을 받았던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는 전국 249개 도서관에 소장 중이라 돼 있지만, 무작위로 찾아본 여러 도서관에서 책의 행방은 묘연하다. 효율적으로 책의 목숨을 끊어놓았다. 도대체 그들은 무엇이 두려운 걸까?
근처 대형서점에 한 부 남아 있던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를 사서 찬찬히 넘겨봤다. 무려 54년 전인 1971년 덴마크에서 출간된 이 책은, ‘아빠의 정자와 엄마의 난자가 만나 아기가 생기는 것’이라는 설명을 들은 어린이들이 그 둘이 어떻게 만나는지를 궁금해하면 갖가지 방식으로 답변을 회피해오던 어른들을 도와줬다. 유일하게 삽화가 없는 이 책의 첫 장은 다음과 같다. “아기가 어떻게 태어나는지 알려줄까? 누구한테나 엄마랑 아빠가 있다는 건 알지? 아기가 태어나려면 엄마랑 아빠가 힘을 합쳐야 해. 엄마, 아빠가 언제나 아기와 함께 사는 건 아니야. 하지만 아기는 엄마와 아빠 두 사람이 있어서 태어난 거야.” 재생산이 반드시 이성애 커플을 기반으로 한 가족관계에서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겠지만, 엄마 아빠가 언제나 아기와 함께 살지는 않는다는 점을 짚어준 사려 깊음이 돋보인다.
이 책은 우리에게 익숙한 어린이책 특유의 분위기에 비하면 꽤 직설적으로 느껴지는 삽화와 함께 아기가 만들어지고 태어나기까지의 과정을 정직하고 명확하게 설명한다. 어른들이 성적인 것들에 덧씌운 민망함을 걷어내고 봐서인지, 아이들은 이 책을 즐겁고 진지하게 읽는다고 한다. 이 책은 성관계를 “재미있거든” “신나고 멋진 일이야”라고 표현한 부분 때문에 ‘조기성애화’를 부추긴다고 공격당했다. 영어 번역본에서는 해당 표현이 없는 것을 들어, 한국어 번역의 문제를 지적하는 의견도 있었다. 원서를 찾아 비교해보니 오히려 영어본에서 해당 문장을 삭제한 것으로 보여 흥미로웠다.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의 타리/나영정 활동가는 “교육 안에서 성적 즐거움을 삭제한 채 성생활, 성적 욕망, 성적 관계에 대해 배우거나 가르칠 수 있다고 여기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성적 즐거움’이라는 세상에 존재하는 것마저 꼭꼭 숨기려는 이들은 다시 한번, 무엇이 두려운 걸까? 공교육의 ‘성경적 성교육’을 경험한 입장에서 말하자면, 낙태 반대 비디오를 틀어주고 ‘순결캔디’를 권하는 것은 어린이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질문하는 힘을 가진 어린이의 무한한 가능성으로부터 어른들이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이다.
최이슬기 번역가
*번역이라는 집요하고 내밀한 읽기. 번역가와 함께 책을 읽어갑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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