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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폭력이 같은 공간에서 다른 몸들에 반복되고 있다

팔레스타인 점령군의 소녀 살해와 한 여성의 진실 추적을 그린 소설 ‘사소한 일’
등록 2025-08-14 08:53 수정 2025-08-29 16:59


‘나’는 우연히 어떤 기사를 읽게 된다. 1949년 8월의 어느 날, 이스라엘 점령 지역의 네게브사막에서 이스라엘 병사들에게 집단강간을 당하고 살해당한 베두인 소녀에 대한 기사다. 나는 이 이야기에 사로잡힌다. 소녀가 죽은 날짜와 사반세기 이후 내가 태어난 날이 같다는 지극히 지엽적인 사실 때문이다. 이 순전한 우연에 대한 이상한 집착이 나를 단 하루도 놓아주지 않는다. 나는 기사에 나온 사건을 조사하기로 결심한다.

1부와 2부로 구성된 아다니아 쉬블리의 소설 ‘사소한 일’(전승희 옮김, 강 펴냄)의 2부는 이 1인칭 화자 ‘나’의 위험한 모험을 따라간다. 그렇다면 1부는? 1948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침략해 점령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을 축출한 ‘나크바’ 1년 후, 한여름의 무더위 속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이스라엘 소대장과 병사들의 일과를 따라간다. 1부는 과거의 사건을 이야기하고 2부에서는 2000년대 팔레스타인 웨스트뱅크(서안지구), 즉 현재를 사는 한 여자가 1부의 사건을 추적하는 구조다.

관심의 계기는 사소했을지라도 여자가 사건에서 찾으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병사들의 입장에서 기록된 기사는 소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 않다. 여자는 소녀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원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그 일의 진실성은 내가 아무리 잊으려고 노력해도 끝내 나에 대한 추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라는 여자의 생각이다. 내가 진실을 추적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이 나를 추적한다는 것. 불쑥 떠올라 우리를 장악해버리는 기억들처럼 말이다.

일본의 아랍문학 연구자 오카 마리는 ‘기억·서사’(김병구 옮김, 교유서가 펴냄)에서 사건을 언어화하는 것은 사건을 과거로 길들이는 일이며, “대부분의 사건에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바로 그때 말할 수 없었고 또한 말로는 잘라낼 수 없었던 잉여 부분”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기억은 주체의 의지와 상관없이 ‘떠오르는’ 것이며, “폭력적으로 사람에게 회귀”한다.

그렇다면 ‘사소한 일’의 여자처럼,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과거의 사건, 하지만 현재형으로 회귀하는 사건의 기억은 어떻게 이야기될 수 있을까. 그 대답으로 이 소설은 반세기의 시차에도 불구하고 소녀가 있던 곳으로 여자를 보낸다. 동료의 신분증을 빌려 불법을 저지르는 위험을 무릅쓰고, 소녀가 죽었던 공간으로 더듬더듬 나아가는 여자의 여정에서 1부의 이미지와 감각은 반복된다. 여자가 씻으며 몸에 쏟아지는 물줄기를 느낄 때, 주유하다 실수로 묻은 휘발유 냄새가 나도록 그녀를 따라다닐 때 소녀와 여자, 그리고 이스라엘 소대장과 여자는 연결된다.

1부에서 3인칭 화자는 허구적 상상력을 철저하게 행위와 감각 중심으로 묘사하며 절제한다. 이스라엘 소대장은 끔찍한 더위 속에서 세정과 정찰이라는 동일한 일과를 반복한다. 어느 날 소녀를 생포해 돌아와 강간하고 살해한 것조차도 그 반복된 일과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일처럼 느껴질 정도로.

반세기 넘는 시간이 지난 뒤 여자가 사건의 진실을 찾아 헤맬 때, 여자는 알지 못하지만 독자는 1부의 이미지와 감각이 반복되는 것을 목격한다. 개 짖는 소리, 휘발유 냄새처럼 사소한 일들이 여자의 몸을 통해 다시 감각되는 것은 마치 역사적 사건의 장소에서 이뤄지는 생존자들의 재연과 유사하다. 이 반복은 나크바 이후 이스라엘의 폭력이 같은 공간에서 다른 몸들에도 반복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건은 진행 중이다.

 

최이슬기 번역가

*번역이라는 집요하고 내밀한 읽기. 번역가와 함께 책을 읽어갑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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