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의 집에서’, 카먼 마리아 마차도 지음, 문학동네 펴냄
시작부터 의심을 감수해야 하는 이야기가 있다. ‘양쪽 입장을 다 들어보기 전까지 우리는 모르지, 특히 연인 사이의 일은’이라는 강력한 믿음 앞에서, 입증이 불가능한 이야기를 가진 사람은 어쩔 수가 없다. 퀴어 연애에서의 언어적·정서적·심리적 학대라는, 때리는 남자도 매 맞는 여자도 존재하지 않는 까다로운 이야기가 처한 상황은 더더욱 난처하다. 하지만 나를 지배하던 자가 내가 이야기할 권리를 통제하고 위협했다면- “이 얘기를 글로 쓰는 건 용납 못해. 이 얘긴 절대 쓰지 마.”- 그것을 허용했던 과거의 나와 함께 살기 위해서라도 이야기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카먼 마리아 마차도의 회고록 ‘꿈의 집에서’(엄일녀 옮김, 문학동네 펴냄)는 이 불신과 난관을 뚫고 시작한다. 꿈의 집은 실재한다. 책에서 내내 ‘여자’라고 불리는 마차도의 전 여자친구가 살던 미국 인디애나주 블루밍턴에 어엿이 서 있다. 하지만 꿈의 집은 당신이 느끼고 경험하고 생각하는 것 모두 꿈이 아니냐는 의심 위에 지어진 집인 동시에 사랑의 환상을 상징한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누락시키는 빈약한 아카이브 속에서 지어가는 기억의 건축물이다.
이 책에서 마차도는 모든 것을 진짜처럼, 진짜로서, 진짜답게 이야기하는 증언자가 되려 하지 않는다. 독자의 마음을 설득하려는 친절함도 없다. 오히려 도발하듯 적극적으로 텍스트의 모순을 내보인다. “나는 절대 프롤로그를 읽지 않는다. 지루하거든.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왜 곁텍스트로 떨구지? 뭘 꽁꽁 숨기려고?” 뒤이어 프롤로그가 버젓이 등장한다.
저자와 텍스트뿐 아니라, 독자 역시 시험대에 오른다. “들을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네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했지. 네가 바보짓을 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야”라는 암시부터 “당신은 이 페이지에 오면 안 됩니다”와 같은 무용한 명령까지 이 책은 계속해서 독자를 흔들어댄다. 들을 줄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도 이 낯설고 복잡한 구조물 속에서 길을 찾아야만 한다.
“내가 부서졌기 때문에 이야기를 부쉈고, 달리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는 고백에 걸맞게, ‘꿈의 집에서’의 서사는 산산조각 난 채로 흩어져 있다. 이야기는 번번이 실패를 예감한 듯 오만가지 장르를 바꿔 입고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회고록의 모든 챕터는 ‘꿈의 집-연애소설’ ‘꿈의 집-누아르’처럼 다양한 꼬리표를 동반한 ‘꿈의 집’이라는 제목 아래 구성된다. 매번 다른 방에서 새로 시작하는 듯해도, 흔적과 잔해 속에서 조금씩 꿈의 집을 더듬어갈 수 있다.
‘꿈의 집’에서 30회 넘게 각주로 끼어드는 책은 스티스 톰프슨의 ‘민속문학 사전’이다. 이 사전에 수록된 오래된 서사의 모티프들은 아무런 부연 설명 없이 본문에 각주로 더해지며 천연덕스럽게 개입한다. 이를테면 “나는 동성애자를 믿지 않아”라고 불쑥 말하는 이모와 그걸 들으며 입을 꾹 다무는 어머니가 나오는 장면에 각주로 “자식을 불구덩이 속에 던지는 어머니”라는 모티프가 소환되는 식이다. 이런 장치를 통해 “우리도 딴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똥밭을 구른다”는 마차도의 말은 이야깃거리의 보편성 속에 들어가게 된다.
거기에 또 다른 이야기들을 위한 자리가 생겨난다.
최이슬기 번역가
*번역이라는 집요하고 내밀한 읽기. 번역가와 함께 책을 읽어갑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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