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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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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병 이야기는 정말 재미있을 거야”

고통이 알려준 괴로움과 경이, 번역가 메이의 ‘아프다는 것에 관하여’
등록 2025-01-25 08:58 수정 2025-01-28 13:41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는 연말이 지났다. 한 송년 모임에서 한국여성민우회 스티커를 선물받았다. “남자는 쏙 빠진 고부갈등”이라는 문구를 보자마자 “오, 레즈비언 며느리랑 시어머니인가!”라고 외쳤다. 옆에서 그 문구는 (미디어에서) “보고 싶지 않은 장면”에 해당한다고 귀띔해줬다.

말과 글의 의미는 언제나 맥락 속에서 결정된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는 지당한 말씀이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말을 끌어내기 위해 쓰였던 것처럼. 말은 어디에서 누가, 왜 말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맥락에 놓인다. 읽는 이들의 삶이 포개지며 다양한 해석이 탄생한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아니 그 책을 어떻게 그렇게 읽었어?’라는 충격의 순간을 마주한다. 그만큼 어떤 이야기로 남는지의 문제는 쓰는 사람만큼 읽는 사람의 몫도 크다.

번역가 메이가 쓴 ‘아프다는 것에 관하여’(복복서가 펴냄)는 한국어로 쓰였지만 마치 번역된 책을 읽는 것 같은 기분을 준다. 언제나 여러 선택지 앞에서 단어를 고르는 번역가의 고뇌가 풍요로운 자산이 되어 나타난다. 몸의 고통을 언어로 전한다는 것 자체가 번역을 통과할 수밖에 없는 작업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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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여는 문장은 “남의 병 이야기는 정말 재미있을 거야”라는 버지니아 울프의 말이다. 심각한 표정으로 책을 집어든 독자로서는 저 문장에 담긴 위트와 자조에 얼굴을 붉히지 않을 도리가 없지만, 이는 병자의 이야기를 읽는 ‘재미’가 어떻게 메이를 살게 했고 그 재미가 얼마나 우리를 울고 웃게 할지 예언하는 제사이기도 하다.

이 책은 “껍질이 사라진 몸, 과민한 것을 넘어 주변 세계를 적대적인 것으로 감각하는 몸, 염증과 통증에 불타는 소진된 몸”의 기원을 찾기 위해 병자가 과거의 안팎을 얼마나 샅샅이, 가혹하게 훑게 되는지, 아프기 전의 인간관계와 세계가 어떤 방식으로 변화하는지, 아니 병자에게서 박탈되고 와해되는지, “앓기를 쓰는 일”에 필요한 “기술/예술art”이란 어떤 것인지 글 자체로 증명한다.

메이는 열렬히 읽는다. ‘천일야화’처럼 생존과도 다름없는 그의 읽기는 공감과 위로에서 멈추지 않는다. 앓고, 읽고, 쓰는 사람의 맥락에서 읽는다. 아프지 않으면 몰랐을 것들의 소중함과 경이로움을 알아버린 사람의 입장에서 쓴다. 메이는 ‘파이의 이야기’를 읽으며 묻는다. 고통을 겪은 사람이 고통의 서사에 집어삼켜지거나 자신의 이야기로부터 소외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남의 불행이나 아픔을 자신의 공고한 정상성을 확인하고 안도하는 데 소비하는 사람들을 지적하는 것을 넘어, 어떻게 이야기의 진실이 타인의 삶을 건드릴 수 있을까?

메이는 버지니아 울프를 읽는다. 그가 쓴 모든 것과 그에 대해 쓴 모든 것을. 우리는 어떻게 죽은 작가가 누구보다 깊이 연결된 친구가 되고, 치과 치료의 동반자이자 수호성인이 되는지 이해하게 된다. 메이는 “서러운 삶을 산 여성 희생자”로만 울프를 읽는 것에 맞서 싸우며, 복잡한 인간이자 “침착하고 강인하고 담대한” 작가로 읽어낸다. ‘고통을 언어화하기’라는 한계를 넘어 자신에게 도착한 기록들을 읽으며 메이는 쓴다. “언어는 실패, 불완전, 열등한 판본이라기보다는 우리가 볼 수 있는 빛을 만드는 방식, 그래서 빛을 서로 더할 수 있는 방식으로 봐야 할지 모른다”고. 번역의 불가능성이나 상실에 대한 대답으로 들리기도 한다. 읽고 쓴다는 것에는 언제나 언어 말고도 번역해야 할 낯선 몸들과 영토가 가득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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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슬기 번역가

*번역이라는 집요하고 내밀한 읽기. 번역가와 함께 책을 읽어갑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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