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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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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보트피플이 그린 기억의 실개천

‘탈식민주의 서사’ 너머의 복합적 삶 담은 킴 투이의 ‘루’
등록 2025-06-27 17:16 수정 2025-07-03 16:05


뜻을 가늠하기 어려운 한 음절의 단어, ‘루’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책을 집어 들게 된 것은 다음 구절 때문이었다.

“어렸을 때는 전쟁이 평화의 반대말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베트남이 전쟁 중일 때는 평화롭게 살았고, 사람들이 무기를 내려놓은 뒤에 오히려 전쟁을 치렀다. 지금의 나는 전쟁과 평화가 친구 사이라고, 둘이 한편이 되어 우리를 조롱한다고 믿는다. 전쟁과 평화는 우리가 어떻게 정의하고 어떤 역할을 부여하든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들이 필요할 때 멋대로 우리를 적으로 삼는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집단학살을 벌이고, 미국이 이란을 폭격하고서 평화를 들먹이는 요즘의 뉴스 속에서 이 구절이 마음에 와닿았다. 베트남전쟁은 지난 세기의 전쟁이지만, 아직도 한국 정부는 베트남 민간인 학살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현재, ‘루’에서의 맥락이 궁금했다.

‘루’(윤진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의 지은이 킴 투이는 1968년 베트남 사이공(현 호찌민)에서 태어나 열 살 때 가족과 ‘보트피플’이 되어 베트남을 떠나 캐나다에 정착했다. 그의 자전적 경험이 녹아 있는 이 소설은 첫 페이지에서 단어의 의미를 설명한다. “프랑스어로 ‘ru[뤼]’는 ‘실개천’을 뜻하고, 비유적인 의미로 ‘(눈물, 피, 돈의) 흐름’을 말한다. 베트남어로 ‘ru[루]’는 ‘자장가, 자장가를 불러 재워주다'의 뜻이다.”

저자처럼 베트남전쟁의 한복판에서 태어난 1인칭 화자 응우옌안띤의 회고록 형식을 띤 이 책에서는 실개천과 자장가처럼, 프랑스어와 베트남어, 사이공과 퀘벡의 거리만큼 예상치 못한 심상들이 서로 연결된다. 작품 내내 이런 연결이 소환하는 기억들은 시간이나 장소에 정박하지 않은 채 표류하듯 떠다닌다.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 베트남에서 공산당의 핍박을 피해 베트남을 탈출해 캐나다에 정착한 이주자이자 자폐를 가진 아이 엄마로서의 삶이라는 굵직한 서사의 줄기에서는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을 수도 있고 요약할 수도 없을 아주 많은 작은 이야기가 실개천처럼 졸졸 흐른다.

쌀독이 비어 있어도 색깔이 예쁜 과일은 넘쳐나고 “향연과 퇴폐와 열기의 아우라”가 어린 음식이 가득하던 둘째 삼촌의 집, 프랑스산 브르텔 버터에 볶은 돼지고기 덮밥을 청백색 공기에 얹어 내던 할아버지를 위한 고모의 밥상, 할아버지 집에 가는 길에 지뢰가 터져 죽은 여자와 뉴욕 브롱크스의 거리를 배회하며 정글로 돌려보내달라 말하던 여자, 섬유유연제 바운스의 향기와 고향의 닻….

하지만 이 이야기들은 중요하다. “귀가 안 들리는 것도 말을 못하는 것도 아니지만 말을 할 수도 들을 수도 없”었던 화자가 살기 위한 “좌표와 도구”를 잃은 상태에서, “곳곳에 에움길이 있고 매복이 숨어 있는 정형화되지 않은 길”을 통해 모든 것을 다시 배워나가며 흩어진 기억들,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 자기 자신을 다시 그려내기 때문이다.

작품의 헌사인 ‘동포들에게’ 역시 이중의 의미를 지닌다.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동포로 번역된 ‘gens du pays’는 퀘벡의 비공식 국가 역할을 하는 노래를 뜻하기도 하므로, 베트남 동포뿐 아니라 퀘벡의 동포를 부르는 말이기도 한 것이다. 퀘벡의 그랜비는 소설 속에서 ‘지상의 낙원’으로 묘사되고, 이주민들을 기꺼이 환대한 그랜비 주민들은 ‘어미 오리’나 ‘천사’로 그려진다. 그랜비의 베트남인들이 성공적으로 실현한 이민자의 꿈을 화자는 ‘아메리칸드림’이라 부른다.

사회학자 옌 레 에스피리투는 ‘착한 난민’ 담론 속에서 미국에 이주한 베트남인들이 미국식 자유의 수혜자이자 성공하고 동화된 반공주의자로서 그려짐으로써 베트남전에서 미국의 정당성을 증명한다고 지적한다. 베트남인들의 이주 자체가 미국의 군사적 개입의 직접적 결과라는 점을 떠올리며, 미국이 아닌 캐나다라도 여전히 ‘감사하는 이주자’로서의 화자가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화자가 자신부터도 30년도 지나지 않은 모습을 “단편적으로, 흉터들로, 섬광으로 알아볼 뿐”이라 이야기하듯, 모순적이고 복잡한 타인의 삶 앞에서 익숙한 탈식민주의 서사를 기대한 것은 독자인 나였던 것이 아닐까.

 

최이슬기 번역가

*번역이라는 집요하고 내밀한 읽기. 번역가와 함께 책을 읽어갑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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