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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까’의 이름으로 다름을 외치다

칠레 시인 페드로 레메벨의 선언문 ‘나는 나의 차이로부터 말한다’
등록 2024-12-21 01:50 수정 2024-12-26 16:57
1999년 8월27일 칠레 신문 ‘엘 시글로’(El Siglo)에 실린 페드로 레메벨의 인터뷰 기사. 엘 시글로 발췌

1999년 8월27일 칠레 신문 ‘엘 시글로’(El Siglo)에 실린 페드로 레메벨의 인터뷰 기사. 엘 시글로 발췌


비상계엄이 포고된 2024년 12월3일 밤 이후 광장에는 수많은 목소리가 울렸다. ‘내란수괴 즉각 퇴진’이라는 하나의 열망으로 쉽사리 묶일 수 없는 많은 차이가 그 안에 있었다. “투쟁 현장에서 소수자 혐오를 막을 것”이라고 페미당당 심미섭 활동가가 말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박경석 활동가는 “고만 좀 합시다”라는 핀잔 속에서 멈추지 않고 “장애인도 시민으로 이동하는 민주주의”를 외쳤다. “누군가는 굶고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기어서 우리는 여기까지 왔습니다”던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의 말처럼 우리는 같은 목표로 투쟁하고 있을 때도 언제나 서로 다른 삶의 조건을 딛고 있는 존재들이다.

이 목소리들을 들으며 칠레 시인 페드로 레메벨의 선언문이 생각났다. 좌파의 동성애 혐오와 폭력적인 남성성 문화가 그를 어떻게 할퀴었는지를 선언했던 목소리의 용기를 떠올렸다.

군부 독재가 13년째 지속 중이던 칠레, 1986년. 수도 산티아고에서 열린 공산당 행사장에 레메벨이 도착한다. 하이힐을 신고 낫과 망치를 얼굴에 그려넣은 레메벨이 그곳에서 낭독한 선언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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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쿠바에서 추방된 긴스버그가 아니다
나는 시인으로 위장한 마리까marica가 아니다
나는 변장이 필요하지 않다
여기 내 얼굴이 있다
내 차이로부터 말하는 내가 나임을 변호하는 내가 유달리 별난 것은 아니다

나는 유튜브에서 그의 목소리로 이 선언문을 듣는다. ‘아니다’라는 부정으로 쌓아나가는 자기소개 같은 것, 위장과 변장을 통과해 나타나는 얼굴. 나도 당신과 같은 사람이어서, 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어서 말하겠다는 선언.

레메벨의 선언문 ‘나는 나의 차이로부터 말한다’는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그의 책 ‘미친 열망: 에이즈 병동의 연대기’(Loco afán: crónica de sidario)에 수록된 것이다. 칼럼에 소개하기 위해 이번에 번역했다.

레메벨은 이탈리아 영화감독(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이나 미국의 시인(앨런 긴즈버그) 등 이른바 제1세계 게이 예술가들과의 동일시를 부정하며 글을 시작한다. 미국의 동성애 해방 운동에 대한 그의 비판은 피노체트 군부 독재가 미국의 음험하고 든든한 지원 속에서 탄생한 것과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마리까는 사회적 여성성을 많이 드러내는 남성을 뜻한다. 여전히 비하의 의미를 담아 쓰이기도 하지만, 당사자들이 재전유한 단어다. 한국말로 끌어당겨보자면 ‘끼순이’를 시도해볼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스페인어권 퀴어들의 역사가 담긴 단어인 마리까 그대로 남겨둔다. 독자들이 이 낯선 단어를 한번 입안에서 굴려보기를 바라면서. “당신은 모른다/ 사랑을 찾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이런 조건 속에서/ 당신은 모른다/ 이 나병을 짊어지고 간다는 것의 의미를/ 사람들은 거리를 둔다/ 사람들은 이해하고 말한다/ 걔 마리까야 하지만 글을 잘 써/ 걔 마리까야 하지만 좋은 친구야”를 읽을 때쯤이면 당신에게도 이 단어가 의미를 가지고 들리기 시작할 테니까.

레메벨은 어리둥절한 좌파 군중 앞에서 자신에게 프롤레타리아 이야기를 꺼내지 말라고 도발한다. “가난하고 호모인 것은 더 나쁘기 때문에.” 동성애라는 그의 병은 “나쁜 버릇”이자 “불운”이다가 급기야 “마치 독재처럼/ 독재보다 더 나쁜”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묻는다. “독재는 지나간다/ 그리고 민주주의가 오고/ 그 뒤로 사회주의도/ 그래서 그러면?/ 우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동지여.” 독재를 살아내고 있는 이들에게 이 말이 어떻게 들렸을지를 상상하면, 격앙된 얼굴 혹은 ‘나중에’를 외치는 사람들의 소리가 내게 들리는 것만 같다. 하지만 레메벨은 사과하지도 부탁하지도 호소하지도 않는다. 다만 수도 없이 자신을 거부하고 부정하고 상처 낸 좌파, 혁명, 그리고 그들의 ‘남자다움’에 말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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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선언문 한 조각을 더 남겨두는 것으로 이 글을 마친다, 동지여.

노동하는 밤과 낮의 시간에
모호함은 없나?
어느 길모퉁이에서 호모 하나가
새로운 인간의 미래를 허물어트리지 않을까?
우리가 자유 조국의 깃발에
새를 수놓도록 둘텐가?
총은 당신 앞에 두겠다
차가운 피가 흐르는
그리고 이것은 두려움이 아니다
두려움은 이미 지나가버렸다
섹스를 기웃대며 누비고 다니던 지하실에서
칼 앞을 막아서는 두려움
공격이라도 당한 것처럼 굴 것 없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당신의 거기를 바라본다 해도
나는 위선자가 아니다
혹시 당신이 여자의 가슴을 보고
시선을 돌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당신 생각엔
산 속에 우리 둘만 남으면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지 않을까?
나중에 나를 증오한다 해도
당신의 혁명적 도덕성을 타락시킨 죄로
삶이 동성애로 물들까봐 두려운가?
나는 넣고 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빼고 넣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나는 다정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동지여

최이슬기 번역가

 

*번역이라는 집요하고 내밀한 읽기. 번역가와 함께 책을 읽어갑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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