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통제구역> OSIK 작가의 이야기가 앞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최전방에서 북한군 만난 병사, ‘탕' 소리의 이유는? 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5535.html
군대에 관한 부조리나 특유의 암울한 분위기는 이야기의 원활한 흐름을 위한 요소로 사용됐다. 최영식(필명 OSIK·27) 작가는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실제 군생활을 하며 폭행이나 가혹행위 등은 경험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그가 취한 방식은 ‘과장'이었다. 자신이 직접 느꼈던 군대 부조리나 상황, 분위기를 좀더 과장해 표현했다. 그 과장이 수십 년 전에 군생활을 한 이들에게는 공감을 불러왔고, 최근에 군생활을 한 이들에게는 몰입감을 부여했다.
작품 초반과 후반부 위기 상황에서 등장하는 “소대는 가족”이라는 대사는 이야기가 흘러가도록 하는 핵심장치인 동시에, 사건사고가 터지면 은폐부터 하려는 군대 내 분위기를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사건을 주도적으로 은폐하는 박두일 소령이 “모두에게 좋으라고 하는 일이야”라고 말할 땐 군생활을 하며 한번쯤 들어봤던 부조리에 대한 상관의 변명이 떠오른다. 최 작가는 “군생활 때 직접 들은 말은 아니지만 어떻게 하면 스토리에 연관성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나온 대사”라고 말했다.
“군대라는 조직을 비판하려는 목적으로 만든 건 아니에요. 다만 스토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런 요소들이 들어가면 이야기가 재미있게 풀어지겠다고 생각했어요.” 이야기는 흐름도 중요하지만 구체성과 현실성이 더해질 때 빛을 발한다. 하나의 사건에서 시작해 비어 있는 부분을 상상력으로 채워가면서도 전체 흐름을 관통하는 장치와 분위기는 군대의 현실을 반영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최 작가 본인이 느꼈던 감정과 경험을 최대한 활용해 만들었다. 함께 군생활을 했던 이들은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같이 군생활 했던 사람들을 투영하지 말자, 최대한 배제하려고 노력했어요. 무의식적으로 들어간 부분도 물론 있겠지만, 제가 군생활 하면서 느꼈던 여러 감정을 인물별로 나눠서 넣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각 인물은 입체적이라기보다 평면적이다. 다만 이야기가 사건 중심으로 진행되다보니 평면적인 인물 구성이 전체 이야기 흐름에 더 몰입하도록 도움을 준다.
매 화 긴장감을 유지한 채 이야기를 끌어가는 최 작가의 특성은 현재 연재되고 있는 <민간인 통제구역-일급기밀>에서 더 도드라진다. <일급기밀>은 첫 작품에서 사건 은폐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박두일 소령이 갓 임관한 직후 초임 수사관 시절의 이야기다. GP 안에서 발생한 집단 사망 사건을 집요하게 쫓는다. 첫 작품에선 GP에서의 일상적인 생활이나 사건 이후 겪는 트라우마, 일상적인 가혹행위 등 다양하게 보여주는 데 반해, <일급기밀>에선 사건 자체에 집중했다. 집단 사망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 파헤쳐가는 방식이다.
여러 사람의 시점으로 구성한 첫 작품과 달리 <일급기밀>은 철저히 박두일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간부들이 이야기의 중심이 되고, 시대적 배경(2002년)도 최 작가가 군생활을 했던 시절과 다르기 때문에 작품 준비부터 달랐다. 이전에는 본인의 경험에서 시작해 상상력을 덧대어가는 방식이었다면, 이번엔 헌병 수사장교 출신 변호사를 찾아가 취재하고 실제 헌병 수사관들을 만나 취재했다. 그 취재 결과물을 기반으로 다시 상상력을 덧붙였다. 작가에겐 이 두 가지 방식이 어떻게 달랐을까.
“이야기 짤 때 제 경험이 많이 들어가면 수월하긴 해요. 다만 제가 잘 아니까 이런 건 너무 억지인 것 같다는 식의 자체 검열을 하게 되더라고요. 다양성이 부족해지는 것, 그게 단점인 것 같아요. 반면에 제가 경험하지 않았던 일은 상상의 나래를 더 펼칠 수 있었어요.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훨씬 많다보니 어떻게 보면 제가 독자 입장에 더 가까이 갈 기회인 것 같기도 하고요.”
<일급기밀>은 2024년 5월14일 기준 67화까지 연재됐다. 최 작가는 인터뷰를 진행한 2월 당시 “앞으로 30~40화 정도 남았다”고 했다. “이야기가 거의 후반부에 다다랐어요. <일급기밀>을 통해 <민간인 통제구역>이라는 만화의 시작과 끝을 내고 싶다는 생각이 커요. 완벽하게 매듭짓고 싶어요.”
두 작품 연속 군대 안의 내밀한 이야기를 긴장감 있게 풀어낸 최 작가가 그리고 싶은 다음 이야기는 뭘까. 그는 일단 “메모장에 적어놓은 아이디어가 7개 정도 된다”면서도 “가장 관심 있는 분야는 일제강점기 시절 사진 신부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일제강점기에 하와이로 넘어간 이민자가 주로 남성이었다고 해요. 이들이 한국 여성과 결혼하고 싶은데 만날 수 없으니 사진으로 중매를 보고 만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이 소재를 활용해서 다른 스릴러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이번 <일급기밀> 작업이 끝나면 바로 해보고 싶은 주제예요.
최 작가가 작품을 만드는 방식은 사전 취재를 한 뒤, 기승전결에 다시 기승전결을 붙여가는 방식이다. 줄거리 전체의 기승전결을 먼저 짜고, 작은 테마를 구성해서 각각의 기승전결을 다시 구성한다. <일급기밀>도 전체 줄거리는 박두일이 하나의 집단 사망 사건을 파헤치는 내용이지만,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겪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로 구성돼 있다. 그 작은 에피소드들은 저마다 기승전결이 있다.
<한겨레 21>이 라이터스 세 번째 특집에서 만난 김보통 작가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김 작가는 전체 ‘아우트라인’(개요)을 7~8줄로 짜고 각각의 문장에 다시 7~8줄을 붙이는 식으로 늘려간다고 했다. 이런 방식으로 문단 늘리기를 하며 만든 것이 넷플릭스 시리즈 각본이었다. 웹툰이든 드라마든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다.
“자기 자신이 흥미롭다고 생각한 이야기를 하는 게 중요한 듯해요. 만화를 그리는 작업 자체가 힘들기도 하고 시간도 많이 들어가거든요. 내가 흥미가 있지 않으면 힘들어요. 창작하는 입장에서도 스스로 흥미가 있어야 이야기를 재밌게 풀어갈 의지가 생기는 거고요. 그리고 계속 그려보고 만들어봐야 해요.” 최 작가의 말을 요약하면 한 문장으로 얘기할 수 있다. 지금 당장, 가장 꽂히는 이야기를 그려라.
인터뷰를 마치려는데 최 작가가 질문해왔다. “기자들은 보통 업무를 어떻게 하나요?” 순식간에 인터뷰이와 인터뷰어가 역전됐다. 그는 다음 작품에 기자 캐릭터를 구상하고 있는데 취재부터 기사를 쓰는 과정이 궁금하다고 했다. 사실 언론사마다 또 언론사 안의 팀마다 일하는 방식이 다르다. 정답은 없지만 가장 일반적인 방식을 설명했다. 좀더 구체적인 질문이 들어왔다.
“무조건 상부 허락이 있어야만 기사를 쓸 수 있나요? 선배의 지시 없이는 취재조차 할 수 없는 건가요? 취재하다보면 밤낮없이 일도 하나요?” 사전 취재는 지시 없이도 하지만 본격적인 취재와 기사 출고 과정은 독단적으로 정할 수 없다는 정도의 일반적인 답변을 했다.
그는 원하는 답을 얻었을까.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야 <일급기밀>에 나오는 박두일이 떠올랐다. 그는 헌병대 초임 수사관이지만, 좋은 기자의 모습을 닮았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받아들였으며, 적당히 좀 하라는 상부의 지시에도 진실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 조사해나간다.
최 작가의 질문에 답을 덧붙인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반적이지 않은 좋은 기자의 모습을 찾는다면, 이미 초임 수사관 시절의 박두일을 통해 그려낸 것 같다”고.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민간인 통제구역> 2019년 12월20일~2021년 5월14일 네이버웹툰에 연재. 2021년 부천만화대상에서 신인만화상 수상.
가상의 공간인 4사단 14연대 수색중대에서 근무하는 병사가 실수로 북한군을 사살한 뒤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민간인 통제구역-일급기밀> 2022년 10월28일부터 네이버웹툰에 연재 중.
<민간인 통제구역>의 프리퀄 작품으로, 주도적으로 사건 은폐를 했던 박두일 소령이 초임 수사관(소위) 시절 집요하게 사건을 쫓는 모습을 그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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