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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전방에서 북한군 만난 병사, ‘탕’ 소리의 이유는? …<민간인 통제구역> OSIK 인터뷰

OSIK① 신인 작가 최영식, 사건의 빈 공간을 파고들다
등록 2024-05-18 20:04 수정 2024-05-24 10:25
최영식(필명 OSIK) 작가가 2024년 2월5일 경기 부천시에 있는 작업 공간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그의 작업 공간 너머로 보이는 책장에 <슬램덩크>와 <데스노트> 등 유명한 일본 만화가 보인다. 다만 그는 만화책에 “잘 손이 가지 않는다”고 했다. 김진수 선임기자

최영식(필명 OSIK) 작가가 2024년 2월5일 경기 부천시에 있는 작업 공간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그의 작업 공간 너머로 보이는 책장에 <슬램덩크>와 <데스노트> 등 유명한 일본 만화가 보인다. 다만 그는 만화책에 “잘 손이 가지 않는다”고 했다. 김진수 선임기자


“실제 상황이다.” 기상나팔이 울린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각, 부대 안이 분주해졌다. 아침 점호를 받는 와중이었다. 갑자기 출동을 준비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귀순자’ 관련 실제 상황이라는 간단한 설명뿐이었다. 상병과 병장 등 선임급 인원들은 장비를 갖춰 입고 실탄을 수령했다. 그길로 통문(비무장지대 안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으로 올라갔다. 이제 갓 상병이 된 최영식(필명 OSIK·27) 작가도 당시 통문 앞까지 출동한 병사 중 한 명이었다.

최 작가는 당시 2개월 동안의 비무장지대 내 최전방 감시초소(GP) 근무를 마치고 막 주둔지로 돌아온 참이었다. 그날 아침까지만 해도 최 작가는 휴가를 나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불과 몇 시간 뒤 그는 무장한 채로 통문 앞에 섰다. 그곳에서 다른 부대원들과 함께 저녁까지 대기했다. 군 입대 뒤 처음 겪는 실제 상황에 한껏 긴장했지만 긴박한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날은 무척 추웠다. 2017년 12월21일의 일이다.

당시 한국으로 넘어온 귀순자는 북한군 초급 병사였던 노철민씨로, 이후 언론 인터뷰나 방송 출연을 통해 귀순 과정에 대해 밝혔다. 다만 당시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었다. 국방부는 “오전 8시4분쯤 중부전선 GP 전방으로 귀순해 왔다”고 밝혔고, 언론에서도 이 정도 정보만 보도됐다. 최 작가도 북한군 한 명이 귀순했다는 정도만 알았다. 처음엔 그저 놀랍고 신기했다. 그게 점차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상상으로 번졌다. 웹툰 <민간인 통제구역>은 여기서 시작하는 이야기다.

GP 근무병이 그린 GP 이야기

두 명의 장병이 GP 초소에서 보초를 서고 있다. 이등병이 초소 앞까지 온 북한군을 발견한다. 옆에 있던 병장도, 이등병도 처음 마주한 실제 상황에 당황하긴 마찬가지다. 그나마 먼저 정신을 차린 병장이 북한군에게 손을 들라고 소리친다. 이등병에게 잘 살피라고 한 뒤 상황실에 보고하는 사이 일이 벌어진다. 손을 들고 투항한 북한군을 조준하고 있던 이등병의 손이 미끄러졌다. ‘탕’ 북한군은 그 자리에서 사망한다. 현장에 도착한 GP장은 북한군이 초소를 공격한 것처럼 꾸며 사건을 무마한다. 두 장병은 선제공격한 북한군을 사살한 영웅이 된다. 그러나 귀순자는 한 명이 아니었다. 이 사건을 모두 목격한 다른 북한군이 귀순하면서 이야기는 점점 더 절정으로 향한다.

최 작가가 군대에 복무하는 동안 구상한 이 작품은 전역 이후 결실을 봤다. 네이버웹툰에서 2019년 12월부터 2021년 5월까지 약 1년6개월 동안 연재했다. 첫 작품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이야기 구성이 탄탄하고, 독자가 긴장을 놓지 못하게 한다. 최 작가는 이 웹툰으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주관하는 제18회 부천만화대상에서 신인만화상을 받았다. 이후 2022년 10월부터 프리퀄 시리즈인 <민간인 통제구역-일급기밀>을 연재하고 있다. 최 작가를 2024년 2월5일 경기 부천시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10평 남짓한 단출한 작업실에 5개의 책상이 벽을 따라 배치돼 있다. 최 작가의 책상은 가장 구석에 있었다. 책상 뒤쪽 벽에 <민간인 통제구역> 포스터와 월별 계획을 적어놓은 보드가 보였다. 인터뷰를 진행한 날은 <일급기밀> 휴재 기간이었는데, 복귀가 예정된 날까지 계획표가 빼곡했다. 옆의 책상엔 최 작가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이들이 열심히 무언가 그리고 있다. 최 작가의 대학 동기들이다. 대학 졸업 뒤 부천에 사무실을 얻어 함께 사용하고 있다. 최 작가를 제외하곤 아직 데뷔 전이다.

데뷔작에 이어 두 번째 작품도 군대 소재 웹툰을 그리는 이유부터 궁금했다. 군대 내 가혹행위나 부조리를 심하게 겪었을까. 은폐된 사건에 관심이 많을까. 혹은 그냥 밀덕(밀리터리 덕후)일까. 돌아온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제일 처음에 구상한 건 완전히 다른 장르였어요. 지구 안에 다른 세상이 있다는 테마의 판타지 장르였거든요.” 그가 본격적으로 이야기 구상을 시작한 건 군에 입대하고 나서다. 졸업 작품을 준비할 겸 시간이 많은 군대에서 조금씩 구상하자고 생각했다. 판타지 장르에서 군대 관련 이야기로 구상을 튼 건 북한군 귀순 사건을 겪고부터다. “계속 이 생각만 나니까 (판타지 장르는) 더 이상 손에 안 잡히더라고요. 군생활 하면서 한 번도 겪은 적이 없던 일이니까, 이거는 진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컸던 것 같아요.” 자신의 경험에서 시작한 이야기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달랐다.

최영식(필명 OSIK) 작가가 <민간인 통제구역-일급기밀> 스케치 작업 중 촬영한 모니터 화면. OSIK 제공

최영식(필명 OSIK) 작가가 <민간인 통제구역-일급기밀> 스케치 작업 중 촬영한 모니터 화면. OSIK 제공


실마리는 실제 사건, 풀어간 건 상상 또 상상

먼저 밝혀두어야 할 것은, <민간인 통제구역>이 노철민씨의 귀순 사건을 토대로 만든 이야기는 아니라는 점이다. 최 작가는 사건 당일 통문에서 대기했고, 이후 귀순자를 발견한 GP에 올라가 당일 기록을 봤다. 다만 이미 귀순자 관련 사건 조사는 끝났고 병사인 그가 접할 수 있는 기록도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끊임없이 상상했다. 당시 초소에서 귀순자를 처음 마주한 순간은 어땠을지, 숨겨진 사건이 있는 건 아닌지. 일단 시작한 궁금증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상상은 점차 확장됐다.

“처음 사건이 발생했을 때까지만 해도 별생각 없었어요. 신기하다는 생각 정도였죠. 근데 (귀순자가 발생한) 해당 GP로 다시 근무를 올라가면서 기록을 봤거든요. 이전 근무 소대의 기록을 보는 것도 저희 업무였어요. 그런데 찾아보다가 나오지 않는 기록도 있고 지워진 부분이 있기도 하더라고요. 저희가 확인할 수 있는 내용으로는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었어요. 거기서부터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 거죠.” 최 작가가 말했다.

같은 군대를 소재로 한 웹툰과 다른 점도 이 지점이다. 넷플릭스 시리즈로도 만들어진 <DP>의 매력은 군대 안의 부조리나 현실을 지극히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그려냈다는 점이다. 넷플릭스 시리즈가 방영될 당시 “피티에스디(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 온다”는 말이 유행처럼 번질 정도였다. 웹툰을 만들고 넷플릭스 시리즈에도 참여한 김보통 작가가 ‘DP’라는 임무를 맡아 활동하며 느꼈던 모순과 군대의 부조리함을 그려냈다면, <민간인 통제구역>은 북한군 귀순 사건에서 시작해 상상력을 극도로 발휘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최영식(필명 OSIK) 작가가 2024년 2월5일 경기 부천의 작업 공간에서 <한겨레21>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최영식(필명 OSIK) 작가가 2024년 2월5일 경기 부천의 작업 공간에서 <한겨레21>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과장과 흐름, 이야기를 만드는 요소

최 작가가 작품을 구상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건 이야기의 ‘흐름’이었다.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하나의 화가 끝날 때 무조건 다음 화가 궁금해야 한다는 거예요. 궁금하게 만들면서 끝내면 독자들은 계속 이야기가 흥미롭게 진행될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큰 줄거리는 미리 생각하지만 작은 부분들은 그때그때 생각하는 편이고요. 어떤 흐름으로 가야 더 재밌을까, 이 사람이 지금 등장하는 게 나을까 나중에 등장하는 것이 더 좋을까. 이런 흐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죠.”

실제 웹툰을 보면 매 화의 마지막이 결정적인 순간에 끝나는 드라마처럼 절묘한 순간에 끝난다. 북한군을 사살한 조충렬 이병에게 기무대에서 나온 수사관 대위가 묻는다. <em>“조 이병의 사격 기록을 보면 합격한 적이 한 번도 없는데 긴박한 상황 속에서 움직이는 북한군을 단 한 발로 사살했다는 게… 나로서는 잘 이해할 수가 없네. 어떻게 한 건가?”</em> 조 이병이 극심하게 다리를 떨고 긴장감이 극에 달한다. 대위의 눈빛이 날카롭다. 옆에서 대신 답하려는 민 병장을 막고 대위가 다시 말한다. <em>“다시 한번 묻는다. 어떻게 북한군을 사살한 거지?”(<민간인 통제구역> 7화-취조1 중에서)</em>

조 이병은 어떻게 대답할까. 새로운 상황이 발생할까. 대위는 무엇을 알고 묻는 것일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들면서 다음 장면에 대한 궁금증이 솟구친다. 이런 장면도 있다. 북한군을 사살한 초소에 도착한 GP장이 현장을 확인하고 민 병장과 조 이병에게 이렇게 말한다. <em>“너네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지금부터 하는 일들은… 우리만 알고 있는 거야. 알겠지?”</em> GP장의 대사는 앞으로 일어날 일이 통상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을 것을 암시한다. 당황스러운 표정이 역력한 GP장은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다음 화를 누르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방식의 이야기 구성은 미국 드라마를 보며 영향을 받았다고 최 작가는 말했다. “<브레이킹 배드>를 볼 때마다 항상 감탄했어요. 사실 한국 드라마는 좀 예측되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는데 미드는 소재나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도 신선하거든요. 그리고 매 화 끝나는 그 부분도 너무 궁금해서 미치겠더라고요.”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민간인 통제구역> OSIK 작가 인터뷰는 다음 기사로 이어집니다. ◆

GP 발생 집단 사망 사건, 집요하게 쫓는 수사관 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5536.html

팁박스-웹툰 안 보는 웹툰 작가
최영식(필명 OSIK) 작가가 2024년 2월5일 경기 부천의 작업 공간에서 <한겨레21>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최영식(필명 OSIK) 작가가 2024년 2월5일 경기 부천의 작업 공간에서 <한겨레21>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최 작가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계속 그림을 그리다보니 자연스럽게 한국애니메이션고등학교에 진학해 만화를 전문적으로 배웠다. 대학도 만화과에 진학했다.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작가의 꿈을 키워왔다. 의외인 점은 그가 웹툰이나 만화를 즐겨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웹툰을 많이 보는 편이 아니에요. 학창 시절 때도 만화를 거의 보지 않았고, 그 유명한 <원피스> 같은 만화도 안 봤거든요. 오죽하면 친구들이 이것도 안 봤냐고 이야기할 정도였어요. 그래서 저는 지금의 웹툰 문법이나 형식은 잘 몰라요. 요새는 컷도 크게 쓰고 말풍선도 크게 넣는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딱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제 방식대로 하는 편이에요.”

그가 참고한 작품은 없을까. 최 작가의 작업실 책장엔 일본의 유명한 만화인 <슬램덩크>와 <데스노트> 등이 꽂혀 있었다. ‘그래도 이 정도 유명한 작품은 봤구나’ 생각하던 찰나에 그는 여지없이 고개를 저었다. “<민간인 통제구역> 연재를 마치고 의식적으로 봐야겠다고 샀는데 항상 중간에 끊기더라고요. 솔직히 손이 잘 안 가요.” 오히려 최 작가는 넷플릭스를 많이 본다고 했다. 웹툰 작가도 만화책보다 넷플릭스라니.

넷플릭스 같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나 유튜브 콘텐츠가 아무리 잘나간다고 해도, 웹툰만의 장점은 있다. 최 작가의 답변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아무래도 호흡이 짧고 가볍잖아요. 영상은 한 번 틀면 30분에서 길면 2시간까지 넘어가니까. 웹툰은 간단히 즐기기 좋은 것 같아요.”

작품목록

<민간인 통제구역> 2019년 12월20일~2021년 5월14일 네이버웹툰에 연재. 2021년 부천만화대상에서 신인만화상 수상.
가상의 공간인 4사단 14연대 수색중대에서 근무하는 병사가 실수로 북한군을 사살한 뒤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민간인 통제구역-일급기밀> 2022년 10월28일부터 네이버웹툰에 연재 중.
<민간인 통제구역>의 프리퀄 작품으로, 주도적으로 사건 은폐를 했던 박두일 소령이 초임 수사관(소위) 시절 집요하게 사건을 쫓는 모습을 그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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