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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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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농사꾼 필주씨의 막강 뒷배, ‘여농 어벤저스’ 납신다

흔들릴 때마다 등장하는 60~70대 언니들 덕에 푸른 꿈 키워가는 웹디자이너 출신 귀농인
등록 2026-04-09 21:29 수정 2026-04-15 17:53
경남 남해에서 농사짓는 김필주(31)씨가 자신이 키운 시금치를 들어 보이며 웃는다.

경남 남해에서 농사짓는 김필주(31)씨가 자신이 키운 시금치를 들어 보이며 웃는다.


2026년 2월26일 김필주(31)의 밭에 60~70대 여자 다섯 명이 나타났다. 그들 손엔 막 갈아놓은 낫이 들렸다. 필주는 울컥했다. “어벤저스 같았어요.” 경남 남해 여성농민회 언니들 중에서도 손 빠르기로 유명한 정예부대는 한번 장비를 잡으면 일을 끝낼 때까지 쉬는 법이 없었다. 그날 언니들과 필주, 필주의 친구 두 명은 시금치 130㎏을 캤다.

뱀처럼 길어 ‘진뱀’이라 불리는 필주의 300평 다랑이밭. 농약이나 제초제, 토양 개량제 등을 쓰지 않는 이 밭에서 시금치는 땅심으로 자랐다. 관행농으로 키운 시금치에 견줘 크기가 들쭉날쭉이다. 농협에서는 값을 잘 쳐주지 않는다. 필주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홍보해 소량씩 팔았다. 한계가 분명했다. 어느 날, 여성농민회 구점숙씨가 물었다. “아직 다 못 팔았지?” 점숙씨가 여성농민회 단체대화방에 “대보름도 오는데 필주 시금치 팔아줍시다”라고 올린 뒤 130㎏ 주문이 들어왔다. 붉은 달이 뜨기 전 3일 안에 보내야 했다. 필주는 기겁했다. “안 될 거 같은데.” “할 수 있다. 언니들 가면 된다.”(구점숙)

 

“할 수 있다, 언니들이 가면”

 

2년 전 이 언니들을 처음 만났을 때, 필주는 농사 의지가 반쯤 꺾여 있었다. “어린 여자이고, 농사도 지어본 적 없으니까 땅을 빌려주려 하지 않았어요.” 땅을 갈아엎지도 않는 자연농법으로 농사짓고 싶다고 하니 다들 “치아라(치워라, 그만둬라)”라고 했다. 필주는 멈추지 않았다. “이 땅도 비었네, 저 땅도 비었네”라며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고, “농사짓고 싶다” 소문을 낸 끝에 동네 백반집 주인의 소개로 첫 밭을 얻었다. 100평 땅은 산자락 마을공동묘지 옆에 덩그러니 있었다.

그 밭에서 필주는 혼자였다. “동네 묘지니까 귀신들도 다 동네 사람들일 거잖아요. 같은 마을 사람이니까 예쁘게 안 봐주시겠나.” 귀신이 아니라 사람이 문제였다. 그가 밥을 먹고 온 사이 모종삽까지 농기구 전부를 누군가 도둑질해 갔다. 일하다 몸살까지 났다. “밭에 정이 떨어져버렸어요. 내가 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구나.”

그즈음, 필주는 아르바이트하던 카페에서 눈빛이 유난히 반짝이는 손님을 봤다. “누구야?” “저 언니 농사 잘한다.” 그 손님이 남해 여성농민회 구점숙씨였다. 점숙씨가 쓴 글을 찾아 읽었다. “‘생명을 키우는 것만큼 고귀한 일은 없다’ 그런 내용이었는데 가슴이 뛰더라고요.” 점숙씨 연락처를 알아내어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처음 만난 점숙씨는 필주의 울분을 빠짐없이 들었다. “네 말 모두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들어주니까 눈물이 날 거 같은 거예요.” 이제 필주 뒤에도, 옆에도 언니들이 있다. 전국 여성농민회 조합원 연수를 갔을 때 그는 “벅찼다”. “혼자가 아니구나. ‘열심히 해야겠다,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필주는 두 번째 밭을 구했다. 언니들이 밭을 봐주고 토종 씨앗을 나눴다. “제가 할 수 있는 걸 빨리 하고 싶었어요. 하다보면 뭐가 필요한지 알 수 있지 않을까.” 홍감자, 옥수수, 토란, 고추 두루 심었다. 농사는 혼자 지을 수 없었다. 이웃들이 도랑을 막고 물을 모아 끌어다 쓸 수 있도록 도와줬다. “점점 절 인정해주는 것 같았어요. 기뻤어요.” 그 찰진 홍감자의 맛이란. 넉 달 만에 주먹만 한 감자가 주렁주렁 열렸다. 이 땅에서 다음해 농사는 짓지 못했다. 땅 주인이 임대계약을 이래저래 미뤘다. 그리고 얻은 세 번째 밭이 ‘여농 어벤저스’가 등장한 ‘진뱀’이다.

 

웹디자이너가 남해 농부 된 사연

 

필주의 집 안엔 ‘자연농 실험실’ 텃밭이 있다. 방 세 개짜리 촌집에 창고와 텃밭이 달렸는데 보증금 없이 월세가 10만원이다. 여성농민회 언니들이 주선해 구한 이 집은 한 할머니가 홀로 살다 숨진 뒤 비어 있었다. 할머니의 살림살이는 필주가 물려받았다. 싱크대에 놓인 유리컵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바보는 항상 즐거워.’ 필주는 그 문구가 귀여워 웃었다. ‘여기 살았던 할머니가 지켜주시지 않겠나.’ 필주는 자기 오줌을 페트병에 담아 액비를 만들었다. 공기를 차단하고 오줌을 2주 정도 발효하면 냄새는 사라지고 퇴비가 된다. “진짜 신기하지 않아요? 다 순환하잖아요. 오줌, 똥이 아까워져요.”

부산에서 태어나 자라 서양화를 전공하고 웹디자이너로 일하던 필주가 남해 농부가 된 여정의 시작은 고등학생 때 발병한 건선이다. 느닷없이 피부가 붉게 부풀어 올라 성냈다. 회식하거나 배달음식을 먹은 날은 더했다. 스테로이드 약을 써가며 회사에 다녔다. 시골에서 살고 싶다 막연히 생각했는데 그날이 이렇게 빨리 올지는 몰랐다. 남해로 여행 왔다 친구를 사귀고 2022년 남해로 이주한 뒤에야 그는 “부산에 살 때 힘든 상태였다는 걸” 알았다. “제 걸 하고 싶고 저를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는데 아예 엄두를 못 냈거든요.”

필주는 자기 몸의 이야기를 들었다. 사찰음식부터 배웠다. “내가 먹는 게 나를 만드는 거니까 귀하게 여기게 되더라고요. 본연의 맛을 살린 식재료를 키우고 싶었고 자연농에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충북 괴산 생태발효학교에 등록했다. 메주를 띄우고 짚신을 삼았다. 햇살을 듬뿍 받고 땀을 흘리자 건선은 퇴각했다. “농사해야겠다, 결론이 나더라고요.”

여성농민회 어벤저스와 시금치 130㎏을 모두 다듬은 날, 필주의 마음 한쪽은 조금 무너졌다. ‘전업농은 불가능할 거 같은데’ 회의가 올라왔다. 6개월 동안 키운 시금치를 팔고 100만원을 벌었다. 단호박까지 합쳐도 농사로 연소득이 200만원 정도였다. “사무실에서 일하며 월급 받던 때가 떠오르더라고요. 자연농, 생태농으로는 전업이 더 어려울 거 같아요.” 그는 펜션과 지역 어린이 돌봄센터에서 아르바이트한다. 3년간 귀농청년 정부지원금을 바우처로 받지만 생활비로 부족하다. 3년 뒤엔?

 

현실 녹록잖아도… 할수록 자부심 돋는 농사

 

안개 같은 회의를 뚫고 여지없이 봄이 왔다. 햇빛이 적당하고, 바람이 필주의 피부를 스친다. 필주는 온통 초록인 그의 밭, 그만의 밭에 있다. “이럴 땐 모든 게 아름다워 보여요. 업무 환경이 정말 좋은 거예요. 밭은 제 작품 같아요. 제가 뭘 넣고 어떤 걸 쓰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지니까. 알면 알수록 농사와 연결된 게 정말 많아요. 할수록 자부심이 생겨요.”

농부 김필주는 시금치를 거둔 자리에 단호박을 심는다. (필주의 농작물을 사려면 인스타그램 @pilju 또는 언니네텃밭 https://sistersgarden.org)

 

글·사진 김소민 희망제작소 연구위원

 

*평생 수도권에서 살아온 중년 인간과 강아지 몽덕이의 남해살이 도전기. 둘은 연결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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