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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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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이에, 사람들 속에… <갯마을 차차차>의 신하은 작가

[22WRITERS] <갯마을 차차차>의 신하은 작가 인터뷰
슬픔은 슬프지 않게, 절망은 희망으로 바꾸는 ‘홍반장'처럼
등록 2023-03-11 10:35 수정 2023-03-13 05:55
서울 마포구 상암동 오펜센터에서 만난 신하은 작가. 김진수 선임기자

서울 마포구 상암동 오펜센터에서 만난 신하은 작가. 김진수 선임기자

“진짜 뭐 하는 사람이야? 대체 그쪽 정체가 뭐냐구!”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tvN, 2021년)에서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나는 홍두식, 아니 홍반장(김선호 분)을 궁금해하던 윤혜진(신민아 분)의 대사다. 이 말을 고스란히 이 사람한테 던져주고 싶다. 작가, 신하은! “사람은 마카(모두) 사람 사이에서 살아야 한다”는 집필관을 가진 이 작가가 <갯마을 차차차>에서 제시하는 인생철학이 예사롭지 않다.

“사람들 모여 북적북적하는 게 좋아요. 같이 밥해 먹고 웃고 떠들고. 그게 인생의 다인 것 같아요.” “인생은 수학 공식이 아냐. 미적분처럼 계산이 딱딱 나오지도 않을뿐더러 정답도 없어. 그저 문제가 주어졌고 내가 이렇게 풀기로 결심한 거야.” “시각을 좀 달리해봐. 혹시 알아? 인생이 새로운 방향으로 굴려줄지.”“아직 시간 충분해. 뭘 그렇게 쫓기면서 사냐. 천천히 좀 가자. 저기 저 산도 좀 보고.” “나는 지금이 참 좋다. 나이 먹은 만치(만큼) 마수운(맛있는) 것도 마이(많이) 먹어봤고, 또 좋은 풍경도 마이 봤고, 사람들도 얻었잖나. 그거보다 더 행복한 기(게) 어디 있겠나.” 등장인물의 한마디 한마디가 인생의 방향키 같다.

조연의 가치를 아는 특출난 신인

이쯤 되면 <갯마을 차차차>는 로맨틱 코미디를 가장한 ‘자기계발극’인가. 3월3일 서울 상암동에 있는 신인작가 양성소 오펜(O’PEN)에서 ‘인생 2회차’를 사는 것 같은 신하은 작가를 만났다. “하하하. 전 작가이기 이전에 참으로 사소한 인간이에요. 희로애락이 취미이고 일희일비가 특기죠. 걱정이 많고 자책도 자주 해요. 전 일찌감치 날카롭게 폐부를 찌르고 세상을 놀랍게 변화시키는 글을 쓰는 데 재주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대신 시청자 일상에 피로감을 녹여주는 작가였으면 했어요. 슬픈 장면이라도 결말은 슬프지 않은, 절망이 있어도 희망으로 끝나는 그런 글을 쓰고 싶습니다.”

그런 글에 사람이 있고, 사랑이 있다. 결국, <갯마을 차차차>다.

<갯마을 차차차>는 신하은 작가가 처음 혼자서 집필한 미니시리즈다. 신하은 작가는 2017년 오펜 스토리텔링 공모에 당선되고 작가가 됐다. <갯마을 차차차>를 하기 전 <아르곤>(tvN, 2017년)과 <왕이 된 남자>(tvN, 2019년)에 공동집필 작가로 참여했다. 두 작품 모두 제작자한테서 먼저 제안받았다. 특히 <아르곤>은 오펜 당선 2개월 만에 이윤정 담당 피디가 직접 ‘러브콜’을 해 업계에서 그의 이름에 귀 기울이는 이가 늘었다. “그때 정말 놀랐어요. 이윤정 피디님의 <커피프린스 1호점>을 재미있게 봤고, 그분의 팬이기도 해요. 현장에서 피디님을 보자마자 ‘저 팬이에요’라며 방방 뛰었죠.”

정작 자신의 대표작이 된 <갯마을 차차차> 때는 집필 제안을 받고 망설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거절했어요. 공동작업 두 편 하고 혼자 해보려고 제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찾던 때였어요. 원작 영화 제목이기도 한 ‘홍반장’은 고유명사 같은 캐릭터여서 그 이름에 먹칠할까봐 걱정도 됐어요. 영화에서 홍반장을 연기한 김주혁 배우님의 대표작에 흠집 내면 어쩌나 염려도 됐고. 김주혁 배우님은 제 첫 미니시리즈 <아르곤>의 주인공으로 함께 작업했기에 지금도 특별한 느낌으로 남아 있어요.”

하지만 창작자들은 ‘열정’이 타오르면 도리가 없다. 그는 결국 집필을 결심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영화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을 다시 보다가 ‘홍반장 캐릭터를 2021년에 데려다 놓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잠깐 생각해봤더니 재미있겠더라고요!” 실제 ‘2021년형 홍반장’의 등장에 수많은 일이 벌어졌다. 김선호라는 스타의 탄생과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잡은 미니시리즈가 오랜만에 나왔다. 드라마사로 보면 <서울의 달> 김운경 작가, <동백꽃 필 무렵> 임상춘 작가에 이어 ‘투박함 속에 따뜻함이 묻어나는 작품’을 잘 쓰는 또 한 명의 작가가 탄생했다.

“제 드라마에 극성은 없을 거예요. 그저 사람과 사람이 얽혀 빚어지는 크고 작은 소동과 감정의 진폭이 전부예요. 드라마는 곧 ‘갈등’이라고 배웠는데, 그래서 <갯마을 차차차>가 잘될까 걱정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처음에는 심심해서 맛을 잘 못 느끼던 시청자도 결국 평범한 이들의 소소한 일상에 빠져들었다. <갯마을 차차차>는 방영 당시 1회 시청률 6.8%(이하 닐슨코리아 집계)로 시작해 입소문을 타고 6회 만에 10%를 넘어섰다. 줄곧 두 자릿수를 지키다가 12.6%로 막을 내렸다.

신하은 작가가 여느 신인 중에서 특출난 점은 조연의 가치를 안다는 것이다. 그가 ‘케이(K) 드라마’를 이끌 차세대 주자로 꼽히는 데도 작품에 여러 명을 등장시켜 놀 줄 알기 때문이다. <갯마을 차차차>에선 극 중 주요 배경인 ‘공진’에 사는 사람만 약 16명이다. 모두 이름이 있고 사연이 있다. <가요톱텐> 2위까지 했으나 매니저한테 사기당해 연예계 활동을 중단하고도 여전히 꿈을 잃지 않는 오춘재(예명 ‘오윤’, 조한철 분), 홍반장을 친손주처럼 보듬고 사람들한테 다 퍼주는 김감리(김영옥 분) 할머니, 다른 집 아이를 내 자식처럼 아끼는 조남숙(차청화 분) 등이다. 윤혜진의 부모와 서울에서 촬영하려고 공진에 온 방송사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이 드라마, 매회가 잔칫날이다.

“원작 영화에는 조연이 거의 안 나오잖아요. 드라마에는 여백을 사람들로 채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오윤은 영화에서 홍반장이 카페에서 노래할 때마다 ‘사장은 오디션 보려고 서울에 갔다’는 식으로 얘기하잖아요. 얼굴은 한 번도 안 나오고. 그 대사에서 착안해 인물을 만들었어요.”

신하은 작가가 쓴 <갯마을 차차차> 대본집. 김진수 선임기자

신하은 작가가 쓴 <갯마을 차차차> 대본집. 김진수 선임기자

어디든 작가는 자기 자신과 싸운다

그는 “혜진과 홍반장의 이야기가 아니라 저마다 사는 이야기로 드라마를 풍성하게 만들고 싶었다”며 “조연들한테 한 번씩 핀 조명을 받는 순간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신하은 작가는 수많은 인물에게 각자의 서사를 부여하고 이를 16회 안에 적절히 안배했다. 2017년 데뷔해 공동집필 두 편에 단막극 한 편(<문집>)을 발표한 신인 작가가 해내기에 쉽지 않은 작업이다. 조연이 많은 상황이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그들의 동선을 잘못 계산하면 중간에 서사를 빼는 상황도 올 수 있고 그러다보면 작품이 산만해질 수 있다. 신하은 작가는 시놉시스를 쓰는 과정에서 인물 배분에 특히 신경 쓴다고 했다. “전체 16회를 나눠놓고 그 안에 여러 인물의 어떤 이야기를 등장시킬지 사전에 꼼꼼히 배분해둬요. <갯마을 차차차>에서 등장인물의 사연이 처음 계획한 대로 풀렸어요. 단 한 사람 조남숙은 아이와 관련한 서사가 없었는데 중간에 넣었어요. 남숙이 얄미운 캐릭터여서 좀더 사랑받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면서? “원래는 남숙한테 멀리 떨어져 사는 연하의 해군 남편이 있고, 그래서 마지막에 등장시키려고 했어요. 차청화 배우님한테 남편 기대하시라고 했는데, 나중에 죄송하다고 했죠. 하하하.”

굳이 분류하자면, 수많은 등장인물이 나오는 작품을 잘 쓰려면 작법 스타일이 규칙적이어야 하는 걸까. 조연이 주연인 대표적인 작품 <동백꽃 필 무렵> 임상춘 작가도 계획적으로 글을 쓰는 작가로 유명하다. 오전에 글을 쓰고, 점심을 잘 챙겨 먹고 다시 오후에 글을 쓰고 일정 시간이 되면 노트북을 닫는다. 밤을 지새우며 불규칙한 생활을 하지 않는다. 신하은 작가도 작업 스타일을 묻는 질문에 비슷한 대답을 내놨다.

“계획적으로 대본을 쓰는 스타일에 가까워요. 회차에 신리스트를 짜고 나면 일정을 끊어서 하루에 몇 신씩 써요. 예를 들어 열흘 안에 써야 하면 최소 8일 안에 하루 열 신씩 쓴다고 일정을 잡아놓고 그대로 작업해요. 안 써지는 날을 대비해 하루이틀 여분을 두죠. 반드시 최종 날짜를 지켜요. 드라마는 협업이라서 완벽할 때까지 가지고 있다가 뒤늦게 보여주기보다 제가 조금 아쉽더라도 일단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는 게 저한테는 효율적이었습니다.”

신하은 작가는 작업실은 따로 두지 않고 집에서 대본을 쓴다. 그는 “집이 집중이 더 잘되기도 하고, 내 몸을 챙겨서 어디로 데려다 놓는 게 시간을 쓰는 데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눈을 뜨면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책상에 앉는단다. 정신을 차리고 나면 하기 싫어질까봐 우선 몸부터 책상에 앉혀두고 컴퓨터를 켜고 작업물을 꺼내 읽다보면 정신을 차리게 된다며 웃었다.

장소가 어디든 루틴이 어떻든 간에 작가는 결국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한다. 드라마가 아무리 협업이고 소통이 잘되더라도 대본을 완성하는 건 결국 작가다. 모든 스태프와 배우가 현장에 있는 동안 작가는 혼자 작업실을 지킨다. 그런 면에서 집필하는 건 행복과 괴로움을 동시에 경험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신하은 작가는 “드라마를 쓰는 게 재미있다”고 말했다. 표정을 보니 그냥 하는 소리는 아닌 듯하다. 어떻게 즐거울 수 있을까. “드라마를 쓰는 것도 저한테는 덕질의 과정이에요. 제가 쓴 게 영상으로 구현돼 나올 것을 생각하며 기다리는 과정도 즐거워요.”

서울 마포구 상암동 오펜센터에서 만난 신하은 작가. 김진수 선임기자

서울 마포구 상암동 오펜센터에서 만난 신하은 작가. 김진수 선임기자

오랜 덕질을 드라마 쓰기로 완성

신하은 작가는 드라마 키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드라마 보는 걸 정말 좋아했다. 드라마에서 처음이랄 수 있는 작품이 어릴 때 본 <여명의 눈동자>다. ‘철조망’ 신이 단편적으로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어린 시절에는 김수현 작가님의 주말 드라마를 보고 컸다 중·고등학교, 대학교 때는 노희경 작가님, 인정옥 작가님의 작품으로 그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그 뒤 21세기 초반에 ‘로코’(로맨틱 코미디) 부흥기를 다 즐겼다. <아르곤>을 하며 이윤정 감독님 앞에서 호들갑을 떨었던 것도 ‘드라마 키즈’였기 때문이다. 하하하.” 그는 지금도 드라마를 챙겨보고, 좋아하는 작품은 대본집도 산다고 했다. 작가로 데뷔한 뒤 “드라마를 보면서 마냥 좋은 마음에 부러운 마음이 더해졌다”고 한다. “와, 정말 잘 쓰시잖아요. 임상춘 작가님은 천재인 거 같고….”

드라마를 사랑하는 작가답게, 여러 작품을 두루 보면서 아쉬운 점을 자신의 작품에서는 바로잡으려 한 노력이 보인다. 신하은 작가의 작품은 투박함 속에 따뜻함이 있고, 거기에 한 가지가 더 담겨 있다. 날카로움이다. 투박해 보이는데 고정관념 등을 깨부숴나간다. <갯마을 차차차>를 다시 보면 처음에 따뜻함에 놓친 다른 게 보인다. 유사가족, 남녀의 관계 설정 변화, 성소수자의 마음을 사랑하는 방식 등이다. 혜진이 고생한 자신에게 선물한다며 500만원짜리 목걸이를 사는 장면이 나온다. 여느 드라마였다면 이를 본 홍반장이 그의 씀씀이에 실망하거나 이를 계기로 다툴 법하다.

작가는 홍반장한테 이런 대사를 부여한다. “네가 힘들게 번 돈으로 너한테 선물하는 건데 왜 내 눈치를 봐.” 신하은 작가는 “여자가 더 잘났다고 해서 남자가 자격지심을 갖게 그리는 것을 깨고 싶었다. 능력 있는 여성이 자기를 위해 소비하면서 왜 눈치를 봐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성소수자 초이한테 사랑 고백을 받은 이화정(이봉련 분)이 대답하는 장면은 다시 보기를 권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유사가족을 얘기하는 부분이다. <갯마을 차차차>에서는 모두가 가족이다. 어릴 때 할아버지를 잃고 혼자가 된 홍반장을 온 마을 사람들이 품앗이로 키웠다. 혜진과 ‘새엄마’(로 표현하겠다)가 가까워지는 과정을 표현하는 데도 여느 드라마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것과 다르다. 여기서는 ‘새엄마’가 혜진과 서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그대로 가져가며 그가 딸을 사랑하는 마음을 보여준다. 신하은 작가는 “실제로 사회가 그렇게 돌아갔으면 좋겠다. 정상가족 이런 것 깨져버리고 모든 형태의 사람들이 존재하는 방식이 존중받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담았다. 가족애라는 게 혈연이 아니어도 충분히 생길 수 있다는 것, 혈연보다 뒤늦게 맺어진 가족이 더 가족같이 느껴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홍반장이 반말하는 문제도 영리하게 잘 정리했다. “모든 사람한테 다 반말하는 것으로 했어요. 그리고 혜진이 부모님한테 그 반말 때문에 때론 한소리 듣게 했죠.” 방영 당시 화제가 됐던 장면에서 마지막 대사는 연출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너 왜 자꾸 반말해” 하는 혜진 아버지의 질문에 홍반장은 말한다. “친근하고 좋잖아요.” 이때 홍반장을 몰래 부른 혜진 아빠의 대사는 이렇다. “너나 좋지, ××야.”

성공 이후 러브콜이 주는 고민

작가가 따뜻함에 날카로움을 절묘하게 담아낸 데는 그의 이력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신하은 작가는 시인을 꿈꾸던 사람이다. 그는 국문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현대시를 공부했다. 짧은 문장 안에 여러 의미를 함축적으로 담아내는 훈련이 돼 있다. 그것이 <갯마을 차차차>에서 적재적소에 필요한 명대사를 만들어내는 데 도움이 됐다. “어릴 땐 막연히 뭐라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글짓기에서 상을 되게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국문과에 가서 뭔가 쓰는 사람이 되리라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그의 작품에는 시집이 자주 등장한다. <갯마을 차차차>에서 홍반장이 혜진한테 시를 읽어주는 장면은 간접광고(PPL) 의심도 받았는데, 작가가 고심해서 정했다고 한다.

드라마작가가 운명이었나보다. 대학원에서 현대시를 공부하던 중 인문학 축소 분위기가 겹치면서 지도교수가 은퇴했고 공백기가 생겼다고 한다. 그 틈에 작가교육원에 등록해 다니면서 드라마작가를 꿈꾸게 됐다. 시인 대신 드라마작가의 손을 잡았지만, 오랫동안 시를 읽고 쓰고 해오던 습관이 작가가 되는 데 도움이 됐나보다. 대본을 써본 적도 없는데 혼자 술술 써서 갔다. “혹시 내가 자질이 있나 궁금해서 미리 대본을 써봤어요. 교육원 기초반을 건너 연수반과 전문반, 창작반까지 한 학기에 두세 편씩 대본을 썼고 그것이 자산이 됐다. 오펜에선 태어나서 다섯 번째 썼던 단막극 <문집>으로 당선했다. “전문반 때 쓴 건데 제가 쓴 것 중에 가장 미숙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문집>이 당선된 거 보고 자기검열을 해서 숙련됐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어쩌면 신선하게 쓰는 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하은 작가의 책장. 신하은 제공

신하은 작가의 책장. 신하은 제공

신하은 작가는 <갯마을 차차차> 성공 이후 수많은 러브콜을 받고 있다. 마냥 행복해할 줄 알았는데 드라마를 좋아하고 작업하는 과정도 즐기는 이 작가는 요즘 오히려 더 고민에 빠져 있다. “<갯마을 차차차>도 저 스스로는 원작이 있는 작품에서 출발했기에, 다음 작품에선 오롯이 내 것으로 평가받아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성실한 것 하나는 자신 있으니까 열심히 써서 좋은 작품 보여드리겠습니다.” 뭐가 됐든 따뜻한 작품이 될 것이다. <갯마을 차차차> 때만큼 등장인물이 더 많을 것이라고 한다. “사람은 사람 사이에서 살아야 하듯, 드라마도 오직 사람들 속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한번 되새김질해보는 신하은 작가의 집필관이다.

글 남지은 <한겨레> 기자 myviollet@hani.co.kr, 사진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신하은 작가의 책상. 신하은 제공

신하은 작가의 책상. 신하은 제공

에필로그

신하은 작가를 만나고 난 뒤 한 가지는 명쾌해졌다. 좋은 드라마를 쓰려면 시를 가까이해야 한다는 것! 사람을 통찰하는 마음, 적재적소의 대사까지. <갯마을 차차차>를 보며 박수를 보내면서도 궁금했던 점들이 해소됐다. 작가는 현대시를 전공했고 지금도 시를 읽고 쓰고 사랑하고 있다. 드라마에서 시의 힘은 어디까지일까. 대사를 탄탄하게 만들어준 것 같다. <갯마을 차차차>에는 그냥 나온 문장이 없다. 불필요한 대사를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한마디에 여러 의미를 담아 내뱉는 데도 시는 도움이 됐을 것 같다. 대본 집필뿐만 아니라 정제되지 않은 말을 쏟아내는 우리한테도 시는 필요한 것 같다. 극 중 혜진의 대사처럼 제발 남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말자. <갯마을 차차차>에도, 작가가 공동집필자로 참여한 <아르곤>에도 시 한 편이 등장한다. 작가가 보내준 서재 속 책상 위에도 시집이 놓여 있다. 시를 좋아하는 신하은 작가의 앞으로가 기대된다.

작품 목록

<갯마을 차차차>(tvN, 2021년): 바닷가 마을 ‘공진’을 배경으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2004년 영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이 원작. 결국 어떤 삶을 살 것이냐를 묻는다. 치과의사 윤혜진이 공진에서 치과를 차린다. 그는 돈과 성공이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이다. 그곳에서 최저시급을 받으며 마을 사람들 일을 해주고, 일주일에 단 하루는 반드시 쉬는 남자 홍두식을 만난다. 서로가 보듬으며 인생의 가치관이 바뀐다.

<왕이 된 남자>(tvN, 2019년): 김선덕 작가와 공동집필했다. 2012년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드라마로 만들었다. 권력 다툼으로 혼란이 극에 달한 조선 중기가 배경이다. 임금이 자기 목숨을 노리는 이들한테서 벗어나려 자신과 닮은 광대를 궁에 들여놓는다. 여진구가 광대 하선과 임금 이헌을 맡는다.

<드라마 스테이지: 문집>(tvN, 2018년): 오펜은 씨제이가 신인 작가 발굴을 위해 만든 일종의 작가양성소다. 매년 몇 명을 뽑아 작업실부터 취재 등 다양하게 지원한다. 신하은 작가는 비슷한 시기에 오펜과 한 방송사의 공모전에서 동시에 합격했다. 작품은 달랐다. <문집>은 당시 오펜 공모전에 낸 것이다. 학원 선생님으로 일하며 낭만 없는 삶을 보내던 주인공이, 고등학교 때 만든 문집을 우연히 발견한다. 그 회상으로 나오는 학창 시절 이야기가 중심이다. 우리 손녀가 최고이고, 늘 손녀 편인 할머니 캐릭터를 잘 빚었다.

<아르곤>(tvN, 2017년): 전영신, 주원규 작가와 공동집필했다. 방송사 보도국 탐사보도팀 아르곤이 소재다. 기자란 무엇이며, 기사란 무엇인가를 곱씹게 한다. 천우희가 맡은 여자주인공 이연화 캐릭터가 생생하다. 2017년 10월30일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김주혁이 출연한 마지막 티브이 드라마다.

한겨레21 1454호 표지. 서점에서 판매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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