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청춘시대>에는 대조적인 두 인물이 나온다. 아르바이트로 학비, 생활비, 아픈 동생 병원비까지 벌어야 하는 생계형 대학생 윤진명(한예리 분), 아름다운 외모를 이용해 중년 남성들과 관계를 맺고 용돈을 받으며 화려한 생활을 하는 강이나(류화영 분). 이나는 진명의 성실하고 단단한 인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진명이 아르바이트하는 레스토랑에 찾아가 남자친구와 우아하게 식사한 뒤 팁을 놓고 나가는 방식으로 조롱한다. ‘가난하고 괴팍하고 깡마르고 볼품도 없으면서 날 초라하게 만들어서 싫어.’ 이나를 경멸했던 진명은 혼자 침대에 누워 생각한다. ‘나에겐 그저 너만큼의 유혹이 없었던 것뿐이야.’
“늙건 젊건, 남자건 여자건 저는 기본적으로 사람은 다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그게 <청춘시대>의 주제이기도 한 것 같아요. 다른 사람도 나만큼 착하고, 나만큼 나쁘고, 나만큼 불안을 갖고 있다. 그러니 저 사람이 아무리 이상하게 보여도, 알고 나면 다 이해가 가는 지점이 있다. 그런 얘길 하고 싶었어요. 남들을 비난할 때 당신은 과연 그 유혹에서 얼마큼 담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박연선 작가는 ‘팬덤’으로 불리는 작가다. 17년 전 손예진·감우성 주연의 드라마 <연애시대>(2006년) 명대사는 아직도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회자된다. 폭설로 고립된 명문고 학생들이 의문의 ‘자살 예고 편지’를 받으면서 시작하는 드라마 <화이트 크리스마스>(2011년)는 휴스턴국제영화제 티브이(TV)시리즈 가족·청소년 부문 대상을 받았다. 요즘도 대본집과 디브이디(DVD)가 중고시장에서 거래된다. <청춘시대>(2016년)는 시청률이 높지 않았는데도 <청춘시대2>(2017년)까지 제작됐다. 마니아층이 없는 작가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거의 첫 영화라 할 수 있는 <동갑내기 과외하기>, 거의 첫 드라마라 할 수 있는 <연애시대>가 성공한 뒤 계속 마이너한 작품이 나왔어요. 만약 거꾸로 (초창기에 마이너한 작품부터) 썼다면 저는 두 번째 작품을 못했을 거예요. <연애시대>의 후광이 있었기에 시청률이 안 나와도 계속 작품을 의뢰받았던 거니까요. 가장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해요.”
1972년생 작가 박연선은 평생 글 쓰는 직업 말곤 해본 적이 없다. 대학교 4학년 때 예능 작가로 시작했는데, 곧 흥미를 잃었다.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영화 <태양은 없다> <비트>의 시나리오를 쓴 심산 작가 수업을 들었고, 2002년 ‘MBC 베스트극장’에 단막극 시나리오를 냈는데 당선됐다. 권상우·김하늘 주연의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2003년) 각본을 썼는데 대흥행했다. 서른 살 전후에 불과한 나이였다. 드라마·영화·소설을 넘나들면서 23년 동안 작가로만 살아왔다.
“다른 일은 한 번도 안 해본 셈이죠. 그래서 지금도 회사원들을 그린 <미생> 이런 드라마를 보면 되게 신기해요. 매일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무슨 일을 하는지, 저한테는 약간 그런 게 자료조사의 영역이에요.”
2월28일 방문한 박연선 작가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작업실 한구석에는 미용 관련 책이 쌓여 있었다. 2021년 방영 예정이었으나 출연 배우 관련 논란이 불거지면서 방영되지 못한 드라마 <날아올라라 나비>를 쓸 때 보던 책들이다.
“저는 자료조사를 많이 하는 편인 작가는 아닌데 (드라마 <날아올라라 나비> 속 배경인) 미용실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곳이잖아요. 다들 아는 얘기기 때문에 자료조사가 더 많이 필요했어요. 머리카락, 열, 고데기의 역사 이런 것을 찾아봤죠. 지금 여러 사정으로 (방영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인데 ‘더 이상 노력하기 싫어’라는 마음이 들기도 해서, 노력하기 싫을 땐 노력하지 않으려고요.”
<검사내전>(2020년)의 ‘크리에이터’(작가들과 회의하면서 의견을 종합하고 흐름·캐릭터·형식 등을 코치하는 역할)로 참여한 걸 제외하면, 의도치 않게 가장 최근작이 <청춘시대>가 됐다. ‘청춘시대’를 인터넷에 검색하면 ‘외모, 성격, 전공, 남자 취향, 연애 스타일까지 모두 다른 5명의 여대생이 셰어하우스에 모여 살며 벌어지는 유쾌하고 발랄한 청춘 동거 드라마’란 소개가 나온다. 꼭 맞는 느낌은 아니다. ‘유쾌하다’기엔 아프고, ‘발랄하다’기엔 현실적이다. 연애를 다루면서 삼각관계나 신데렐라 스토리를 가져오지 않았고, 미스터리를 다루면서 악인을 등장시키지 않았다. ‘잔잔한 유머’로 가득 차 있어도 ‘아픔과 치유’의 드라마로 기억되는 이유다.
―<청춘시대> 드라마를 보고 나니 등장인물 중 ‘강이나’가 가슴에 남았어요.(극 중 강이나는 강물에 빠졌다가 살아난 경험 때문에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강물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른 사람과 서로 가방을 붙잡으려 사투를 벌였다. 중년 남성들과 육체적 관계를 맺으며 의미 없이 살아간다.)
“그 문제는 계속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스에 ‘카르네아데스의 판자’라는 말이 있대요. 강물에 빠진 두 사람이 같이 판자를 끌어안고 있었는데 두 사람이 붙어 있으니까 판자가 가라앉아서 둘 다 죽게 생긴 거예요. 그래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밀어버리고 자기 혼자 살아남았다면, 재판정에서 이 사람은 무죄인가 아닌가. 자기 목숨이 위태로울 때 다른 사람을 죽이고 살아남은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의 내적 갈등은 얼마나 클까. 그리고 세월호 사건을 보고 나서 이런 캐릭터가 나온 거죠. 이 사람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까 상상해보면 하루하루 열심히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거예요. 자기의 조심, 계획과는 아무 상관 없이 내가 오늘 길 가다가도 죽을 수 있는데 적금을 붓고 입시를 보기 위해 공부하고 어떤 남자를 사랑해서 아기를 낳을 수 있을까.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이 하루하루 노력하면서 사는 사람을 봤을 때의 동경과 질투가 있지 않을까, 이런 관계성을 만들어간 거죠.”
―얼핏 보면 소소하고 아기자기한 드라마 같은데 큰 맥락에서 보면 추리, 스릴러 같아요. 전략적으로 짠 건가요.(등장인물들에겐 서서히 밝혀지는 각자의 트라우마가 있고, 셰어하우스 신발장에 귀신이 산다는 농담 같은 이야기도 나온다.)
“제가 그런 이야길 좋아해서일 거예요. 책도 거의 미스터리, 스릴러 이쪽으로 편향해서 읽어요. 저는 역사물도 그렇고 모든 책이 미스터리 없이 완성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일상물도 사소한 미스터리가 될 수 있어요. 연애물도 사실은 ‘이 사람이 저 사람과 나중에 결혼할까’ ‘왜 좋아할까’ 궁금증이 있잖아요. 말씀하신 것도 있어요. 소소한 일상물을 다루는데 하나로 꿰지는 뭔가가 없다면 그냥 낱낱이 흩어진 조각인 거잖아요. 그걸 꿰는 것을 미스터리로 삼죠. 주인공이 여럿이잖아요. 귀신은 도대체 누가 보나, 각자의 귀신은 무엇일까.”
―20대 여성의 고민과 현실을 잘 반영해서 <청춘시대>는 젊은 여성 작가가 쓴 작품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굳이 청춘에 대해, 20대 여자에 대해 공부하지는 않았어요. 그냥 내가 하는, 모두가 하는 고민이나 생각을 ‘그들의 언어로’ ‘그들의 얼굴로’ 말했을 뿐이에요. 그들이 특별한 고민을 하고 특별한 생각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요. 예를 들면 등장인물 중 정예은(한승연 분)의 서사를 보면 데이트폭력이 나오는데, 성폭력은 대학생도 겪지만 50대 아줌마도 겪고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황이잖아요. 반응이 남다르지도 않을 것 같고, 물론 그 언어에서 조금 차이는 있겠지만요.”
―그런 인물 구상을 미리 끝내고 각본을 쓰시나요, 아니면 쓰면서 자연스럽게 구상하나요.
“왔다 갔다 해요. 어제 <방구석 1열>이란 프로그램을 보는데 거기서 ‘미야자키 하야오는 어느 한 장면을 스케치하면서 이야기를 벌려간다’는 내용을 봤어요. 예를 들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첫 스케치가 치히로가 아빠 차 뒤에서 되게 불만스러운 얼굴로 꽃다발을 안고 누워 있는 거잖아요. 그걸 스케치하다가 ‘왜 이 소녀는 꽃다발을 안고 이렇게 불만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지’라고 생각하면서 이야기를 벌려간대요. 저도 약간 그런 것 같아요. <청춘시대>도 첫 시작이 뭐였냐면, 그때 한창 술자리 심리테스트 같은 게 유행이었어요. 사이코패스 테스트 뭐 이런. 그런데 ‘장난으로 시작했는데 누군가 하나가 만점이 나왔다면 그다음 이 친구들은 얘를 어떻게 볼까’란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그렇게 점점 생각하다가 그게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귀신을 본다고 그랬다면’으로 확장된 거예요. 각자의 트라우마가 있어야 볼 거잖아요. 여러 상황에 맞는 캐릭터를 모으고, 그 캐릭터들이 그럼 나중에 어떻게 되느냐. 거기에 작가가 가진 주제의식이 들어가지 않나 싶어요.”
―한 명의 작가가 여러 등장인물을 그릴 때 어떻게 목소리가 겹치지 않도록 작업하나요.
“그런 게 약간 있지 않나요. 친한 사람과 있을 때의 나, 남자친구와 있을 때의 나, 직장인과 있을 때의 나, 모두 다르잖아요. 극 중 유은재(박혜수 분)는 제가 20대 초반 서울에 갓 와서 ‘서울역이 어디냐’고 묻던 시절, 아무한테도 말 잘 못하고 소심하던 모습을 닮은 거 같아요. 기분 나쁠 때는 강이나 같고, 술 한잔 들어가면 송지원(박은빈 분) 같고. 그런 나를 다 찾아내서 극대화하는 거죠. ‘이렇다면 어떻게 할까’라고요.”
일본 소설을 각색한 드라마 <연애시대>는 유산의 아픔을 겪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다 이혼한 부부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오고 마는, ‘이혼 뒤 시작된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신인 작가일 때 의뢰받아 쓴 작품인데 ‘원작보다 훌륭한 각색’이란 평가를 받았다. 신예 모델이 대거 출연한 드라마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명문고 학생들이 눈으로 고립된 학교에 들어온 연쇄살인마와 싸우면서 변해가는 모습을 그렸다. ‘괴물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등 질문을 던지며, 상업주의 드라마 흐름에서 벗어난 길을 모색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쓸 때 <파리대왕> 같은 소설을 읽었다고 하셨는데요. 영향을 많이 받은 작가가 있을까요.
“아다치 미쓰루의 만화 <에이치투>(H2)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그리고 <슬램덩크>. 그 둘은 열 번은 본 것 같아요. 대사를 티키타카하는 법, 캐릭터를 만드는 방법, 어떻게 하면 이게 유머가 되는지를 배웠어요. 소설가로는 박경리, 이문구 작가를 좋아해요. <토지>에서 이 긴 시간과 많은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쓸 수 있었을까. <관촌수필>에는 충청도의 아련하고 슬픈 정서가 있어요.”
―<연애시대> 명대사가 인터넷에 돕니다. 은호(손예진 분)가 “사진을 보면 슬퍼진다. 사진 속 나는 환하게 웃고 있어서, 이때의 나는 행복했구나 착각하게 된다”란 대사가 인상적이었어요. 대사 영감은 주로 어디서 받나요.
“초창기에는 기본적으로 다 스스로 생각한 것을 대사로 썼어요. 어려서부터 우울증은 아닌데 미래에 대해 어떤 낙관적이지 않은 생각이 있었어요. 그리고 글을 쓰는 동안에는 끊임없이 링크(연결)를 건다고 할까요. 주인공과 링크를 걸어 주인공이 할 수 있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는 거예요.”
―미래에 대해 낙관적이지 않은 정서는 어디서 출발했을까요.
“우리 집이 충청도 서산 아주 산속에 있었어요. 겨울에 고라니가 우리 집 앞마당을 지나가요. 그래서 밤이 되면, 정말 불을 켜지 않으면 자기 손가락이 안 보일 정도였어요. 뭔가 자연의 흐름을 거부하지 못하는 게 있었어요. 사계절을 사계절로 느끼고, 낮과 밤을 내가 지배할 수 없는 느낌. 인간이 죽음을 거부하게 된 게 전구가 발명되고부터래요. 밤도 낮같이 밝히게 되면서 인간은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지고, 죽음도 거부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졌다는 거예요. 그와 정반대로 저는 어릴 때 제가 지배할 수 없는 자연의 속성이 굉장히 무서웠어요. ‘세상의 전부인 내가 죽으면 어떻게 하지’란 유아적인 공포로 시작해서 시간의 흐름을 깨달으면서 기본적인 허무함, 우울함을 알았던 거 같아요.”
―그렇게 어릴 때부터 작가가 되고 싶은 거였나요.
“왜 가난한 집 아이들이 자기가 보고 자라는 게 얼마 없어서 꿈을 꾸지 못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런 것처럼 저는 작가가 되고 싶긴 했는데 작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주변 직업인이 농부와 선생님밖에 없었으니까. 어느 정도 시골이었냐면, 제가 우리 동네에서 대학에 간 첫 여자예요. 아버지가 굉장히 가난한 농부예요. 아버지가 대단한 공정함 같은 게 있었어요. 우리 집이 육 남매인데 오빠들이 대학을 갔어요. ‘오빠는 갔는데 왜 나는 안 보내지’ 하니까 아빠가 잠깐 고민하다가 ‘그렇지, 나중에 형평성 문제가 있겠지’라고 생각해서 저까지 보내주신 거예요.”
―글을 잘 쓰려면 흔히 다독해야 한다고들 하는데 어릴 때 그랬나요.
“그때는 제가 책을 좋아하는지도 몰랐어요. 시골 학교 도서관이라는 데가 책도 많지 않았고 책을 읽으라고 빌려주지도 않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학기가 돼서 오빠들이 책을 갖고 오면 오빠 네 명의 국어책은 다 읽었던 것 같아요. 책은 없었지만, 할머니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았어요. 할머니가 ‘저의 뭔가를 다 만들어준 사람’ 같은 느낌이에요. 옛날얘기를 무척 많이 해주셨고, 해달라고 졸랐고, 같은 이야기를 계속 반복해서 들었어요. ‘지네가 된 아가씨’ 이런 옛날얘기도 있지만, 우리 가족의 서사 ‘우리 증조할머니가 시집갔는데 신랑이 아파서 3년 만에 죽고’ 이런 서사를 옛날얘기처럼 해주셨어요. 약간 (작가가 될) 성향도 있었던 거 같아요. 대학생 때 서울로 오려고 시골 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어떤 할머니하고 손녀처럼 보이는 두 사람이 있었어요. 할머니가 칠성사이다 큰 병이 든 보따리를 들고 어린 손주에게 ‘다시는 오지 말라’고 말하는 것을 봤어요. 그런 모습을 보면 뭔가 막 상상이 됐어요. 잊히지도 않았고.”
―소설, 드라마, 영화를 다 썼어요. 장면이 잘 그려지는 이야기는 어떻게 쓰나요.
“제가 드라마작가 지망생에게 하는 이야기인데, ‘그 장면을 보고 쓴다고 생각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전혀 다른 장면으로 구현될 수 있다’고 말해요. 창밖을 보면 대략 열두 명이 있는데 누구는 얘기하고, 누구는 저기로 가고, 노란 옷 아저씨가… 이렇게 쭉 쓰는 게 아니라 ‘평일 오후 2시의 탄천면이다. 봄의 날씨다’ 그래야 대체로 미술팀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잖아요. 꼭 말해야 할 장면만 말하면서, 당신이 전하고 싶은 그걸 상상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얘기해요.”
―작법서도 많이 보셨나요. 이야기를 한 번에 써내려가는 편인지, 많이 퇴고하는 편인지 궁금합니다.
“옛날에 영향받은 건 로버트 맥키의 책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였어요. 스티븐 킹의 책 이런 것도 읽었는데, 사실 작법서를 여러 권 읽는 것보다 하나를 정해 여러 번 읽는 게 낫지 않나란 생각도 했어요. 작가들이 쓴 자서전이나 글쓰기 방법론을 가끔 읽을 때가 있는데, 왜 그러냐면 ‘이렇게 대단한 사람들도 글쓰기를 힘들어하는군’이라는 위안을 받기 위해서예요. 시리즈물을 쓸 때 1~4회는 정말 수없이 퇴고해요. 시리즈물은 약간 조각과 같다고 생각해요. 전체적인 걸 생각하고 조금 팠다가 ‘이렇게 봤더니 좀 틀렸네’ 하면서 다시 이쪽을 더 파고, 또 돌아와 이쪽을 파고. 절대 한 번에 되지 않고 끊임없이 조각해내야만 나올 수 있는 거예요.”
―작가님의 지금 관심사는 뭔가요.
“예전에는 극단적인 사람, 연쇄살인범, 이런 이야기에 끌렸어요. 그런데 지금은 연쇄살인범보다 ‘연쇄살인범의 아들’에게 더 끌려요. <스톤 다이어리>라는 책이 있어요. 어떤 여자의 출생부터 할아버지 할머니가 무슨 일을 했고 엄마 아빠가 어떻게 만나 아기가 태어났고, 태어나자마자 엄마가 죽어서 아빠 손에 크다가… 그런 이야기예요. 그러니까 퀴리 부인처럼 대단한 사람이 아닌 옆집 아줌마, 할머니의 일대기를 마치 위대한 사람 자서전 쓰듯 쭉 따라간 이야기, 그런 걸 한번 이제는 써보고 싶어요.”
글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사진 류우종 기자박연선 작가의 작업실에는 영화 <레옹> 속 마틸다, 조깅하는 여자, 쭈그려 앉은 할머니 등 인물들을 스케치한 흰 종이가 쌓여 있었다. 박 작가는 “글 쓰기 싫을 때 30분 정도 끼적인 그림들”이라고 했다. 표정도, 동작도, 주름도 다양했다. 인간의 모습을 포착하고, 그 모습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가는 걸 자연스럽게 여기는 사람처럼 보였다.
작업실은 무척 깔끔했다. 알아보기 힘든 복잡한 글이 쓰인 화이트보드, 큰 테이블, 노트북과 책상, 공책과 필기도구가 전부였다.
“하루 루틴을 정해요. 여기로 아침에 출근해서 커피 마시고 밥 먹으면 대략 오후 1시쯤 되는 거 같아요. 그리고 오후 6시까지 일해요. 주 5일 정도 하는 거 같아요. 업무 시간이 끝나면 생각을 안 하려고 노력하지만 산책하거나 자기 전 문득 생각이 날 때가 있어요. 하루가 끝나도 머릿속으로 구상은 저절로 하게 돼 끊을 수 없는 전기가 통하는 느낌이에요. 그런데 경력이 많아지면 그게 좀 차단돼 좋더라고요. 약간 좋기도 하면서 이제 나는 ‘직업인으로서의 작가’가 됐나보다, 뭔가 물들었다는 느낌? 더 이상은 글 쓰는 일이 특별하지 않게 됐다는 게….(웃음)”
드라마
<파란만장 미스김 10억 만들기>(SBS, 2004년)
<연애시대>(SBS, 2006년)
<얼렁뚱땅 흥신소>(KBS, 2007년)
<화이트 크리스마스>(KBS, 2011년)
<난폭한 로맨스>(KBS, 2012년)
<청춘시대>(JTBC, 2016년)
<청춘시대2>(JTBC, 2017년)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2003년)
<백야행-하얀 어둠 속을 걷다>(2009년)
소설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놀,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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