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인생의 분기점에서 다른 선택을 했다면 나는 어떤 모습일까? 이런 상상은 ‘멀티버스’ 콘텐츠로 소비되며 마르지 않는 창작의 원천이 된다. 누구나 한 번쯤 내가 아닌 새로운 존재가 되고 싶은 욕망을 품어봤을 것이다. 그런데 그 욕망을 유튜브로도 투영할 수 있다는 것. 나와 다른 그들의 인생을 관찰하면서 말이다.
이번 글은 ‘남플리, 남들의 플레이리스트’를 연재해온 김주은님의 인터뷰이자 그의 마지막 인사다. 주은님은 다양한 재능을 가진 이른바 ‘다능인’이다. 전략 컨설팅, 국외 유통, 콘텐츠 기획, 게임 기획과 마케팅 등 갈지자(之)의 커리어를 거치며 책도 네 권 쓴 지적인 사람이다. 그를 처음 만난 건 춤추고 싶어 무대를 직접 기획하는 어느 모임에서였다. 노래, 농구, 연기까지 내면에 다양한 끼를 갖춘 사람임을 알면서 그의 인생도 구독하게 됐다.
주은님의 유튜브 시청 습관은 독특하다. 알고리즘 추천의 입맛 맞는 영상이 아닌, 생소한 영상을 클릭한다는 것. 그가 운영했던 유튜브 커뮤니티 <유튜브코드>에서도, ‘절대 클릭하지 않을 리스트’를 주제별로 꾸리면서 사람들을 필터 버블 밖의 세상으로 초대하곤 했다.
요즘 그가 즐겨 보는 채널은 ❶<아뜰리에>와 ❷<권감각> 채널이다. 땀 흘리며 커리어를 쌓아가는 주은님의 삶과는 거리가 먼 영상들이다. ❶<아뜰리에>는 1천만원 착장쯤은 일도 아닌 ‘금수저’ 연세대생의 자기애 넘치는 럭셔리 라이프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채널이다. ❷<권감각>은 입담 좋은 40대 가정주부가 빨래 개고 멸치똥 따며 수다만으로 꽉 채우는 채널이다. 누군가의 일상이지만, 누군가에게 판타지이기도 하다. 주은님은 유튜브를 통해 가지 않은 길의 인생을 수집하는 셈이다.
지구 세계관 안에서도 충분히 다양한 멀티버스 자아를 소환하며 살아가는 듯한 주은님. 다능인이 각광받는 시대에 그에게도 고민은 있다. “뭘 하든 전문가가 아니라는 불편함은 늘 가지고 가야 해요. 특히 이번에 무대를 옮긴 게임은 전혀 알지 못하는 분야예요. 덕분에 지금 일한 지 12년차에 또 새롭게 배워야 하는 고통과 씨름하고 있죠.”
그의 세 번째 추천 유튜브는 ❸<중년 게이머 김실장>이다. 게임 카테고리에는 텐션 높고 웃긴 게임 스트리머가 주류이다. 그런데 내향의 중년 남성이 게이머뿐 아니라 게임회사 입장에서 게임의 사업모델을 담담하게 리뷰하는 것을 보면서 큰 도움을 얻는다고 한다. 채널 ❸은 주은님이 가기로 결심한 멀티버스의 길에 빠르게 도달하는 족보 같은 채널인 것이다.
지금 그의 인생은 게임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다능인에게도 새로운 자아를 만들기 위해서는 몰입의 시간이 필요하다. ‘남들의 플레이리스트’로 다양한 삶을 소개해온 주은님. 이제는 잠시 인터뷰를 멈추고 다음 챕터에 집중하려 한다. 그것이 유튜브든 게임이든, 주은님이 만드는 길은 많은 사람이 다양한 인생을 누릴 수 있는 무언가일 것이다.
김수진 컬처디렉터
*김주은 IP 프로듀서에 이어 김수진 컬처디렉터가 ‘남플리, 남들의 플레이리스트’를 집필합니다. 김주은 프로듀서님 그간 수고하셨습니다.
*남들의 플레이리스트: 김수진 컬처디렉터와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가 ‘지인’에게 유튜브 영상을 추천받아, 독자에게 다시 권하는 칼럼입니다. 격주 연재.
❶ <아뜰리에> 금수저 연세대생 브이로그
https://www.youtube.com/watch?v=Z0h6KDPakxs
❷ <권감각> 결혼 전으로 돌아갔다
https://www.youtube.com/watch?v=lscaRi5z1Kk
❸ <중년 게이머 김실장> 게임사가 돈을 벌기 위해 이용하는 5가지 핵심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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