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재용씨는 거주 공간 로비에 포스트잇으로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어 이웃 간 메시지를 주고받는 ‘공간’을 만들었다. 서재용 제공.
도시의 거리는 송년 모임으로 북적이지만, 집 복도는 시리도록 고요하다. 택배와 배달 음식 소리가 복도의 유일한 생동감이 된 시대. 커뮤니티가 범람해도 정작 현관문을 닫는 순간, 우리는 각자 방으로 고립된다. 이웃이 ‘멸종위기’다.
삭막한 도시에서 다정한 이웃 실험을 시작한 사람이 있다. 서울살이 4년차, 홍익대에서 공부하며 서울 마포구에 둥지를 튼 엔지니어이자 디자이너 서재용이다. 거주 공간 로비에 포스트잇으로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어 이웃들이 메시지를 주고받게 하고, 집들이 100명을 목표로 삼은 그의 다정한 이웃 실험이 궁금해졌다.
—서울에 갓 왔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요?
“자취방에서 느낀 서울은 거대한 ‘개미굴’ 같았죠. 저녁이면 모든 사람이 에너지 없이 휴대전화만 보며 굴 속으로 기어 들어가는 개미처럼 보였거든요. 저도 그중 하나였고요. 그러다 드라마 ‘청춘시대’를 보고 코리빙하우스(공유주거) ‘맹그로브’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인생의 변곡점을 만났어요. 어느 날 옥상에서 고기 파티를 제안했는데 슬리퍼를 신고 이웃 12명이 모였거든요. 여느 네트워킹 파티처럼 성공을 증명해야 하는 빳빳한 명함 대신 그냥 ‘인간 동물 친구’로서 안부를 묻고 삶을 공유했어요. 사람들과 함께할 때 그 충만함을 느끼며 ‘맹가족’이 됐고, 이웃에 대한 감각은 거기서 시작됐어요.”
—직접 코리빙 커뮤니티를 만들어보는 건 어때요?
“새로운 커뮤니티를 만들면 좋겠지만, 저는 코리빙의 좋았던 시간이 소수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 사회 전체의 ‘보편적’ 이야기였으면 했어요. 이웃이라는 이유만으로 서로를 응원해줄 수 있는 감각 말이죠. 물론 보편성을 지향한다는 건 늘 즐겁지만은 않은 싸움이에요. 제가 먼저 대화를 걸어도 가치관이 너무 다르면 불편할 때가 있거든요. 그 순간들까지 견디며 ‘모두와 이웃이 될 수 있을까’를 실험하는 중이에요.”
—디자인과 공학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 유학을 준비 중이라고요.
“인간의 보편적 가능성을 넓히는 비시아이(BCI·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술에 매료됐어요. 지금 우리가 인공지능(AI)에 밀리는 건 지능이 낮아서가 아니라, 뇌라는 ‘슈퍼컴퓨터’를 가졌음에도 키보드나 마우스라는 한정된 툴로만 소통하기 때문이거든요. BCI는 결국 보편적 인간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기술이에요. 모든 이가 신체적 한계를 넘어 세상과 더 평등하게 연결되길 바라니까요.”
—기술이 없어도 지금 하는 다정한 사회 실험들이 이미 보편적 디자인 같아요.
“맞아요. 복도에 포스트잇 트리를 만드는 것도, 마라톤에 참여해서 모르는 사람을 응원하는 경험도 이웃의 감각이죠. 예전에 오스트레일리아 마라톤에 참가했을 때 전날 발을 삐끗했는데, 길가에서 제 이름을 부르며 응원해주는 사람들을 연료 삼아 완주할 수 있었거든요.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의 응원이지만 신기하게 아픈 발을 한 걸음 더 내딛게 되더라고요. 응원은 인간 본능에 새겨진 성선설의 증거 같아요.”
그동안 나에게 커뮤니티란 늘 ‘결이 비슷한 사람들만의 안전한 정원'이었다. 하지만 재용은 ‘누구나 이웃이 될 수 있는 보편적 공간'을 디자인하자고 말한다. 그가 건네준 ‘멸종위기 이웃’ 구출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주변에 응원을 기꺼이 보내는 용기. 그것이 우리를 다시 연결할 것이다.
김수진 컬처디렉터
*남플리, 남들의 플레이리스트: 김수진 컬처디렉터와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가 ‘지인’에게 유튜브 영상을 추천받아, 독자에게 다시 권하는 칼럼입니다. 격주 연재.

서재용. 본인 제공
1. Jeon Intern_Off Line
‘맹가족’이라는 이웃을 여실히 함께 즐겨준 크리에이터 전인턴이 운영하는 채널. 맹그로브에서 우리의 시작을 담아준 고기 파티 영상과 코리빙에 관한 다양한 생각이 담겨 있다.
2. 조제리
이 세상 모든 이와 이웃이 될 수 있을까? 조제리는 그렇다고 답한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스몰토크를 하며 우리가 이웃이라는 증거를 세상에 보여준다.
3. 빠더너스 BDNS
우리가 느끼는 많은 감정이 오글거린다는 말로 퉁쳐지는 요즘, 진심을 담아 상대방에게 전하는 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주는 채널. 입안에서 오물거리던 그 말이 전해질 때 우리가 얼마나 가까워질 수 있는지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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