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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 아 유?” 짧은 문장에 눈물이 터져나왔다

건강은 운이고 마음은 수련이니까…다정한 카르마를 뿌리기로 결심한 간호사 정은영의 플레이리스트
등록 2026-01-08 16:19 수정 2026-01-15 14:08
타이 꼬팡안에서 요가 수련 7일째를 맞은 정은영씨가 미국인 친구들과 함께 간 현지 카페에서 요가 동작을 하고 있다. 정은영 제공

타이 꼬팡안에서 요가 수련 7일째를 맞은 정은영씨가 미국인 친구들과 함께 간 현지 카페에서 요가 동작을 하고 있다. 정은영 제공


미국 시카고 마라톤을 완주하고, 몸에 좋은 음식을 먹고, 스스로 스트레스를 조절할 줄 안다고 믿었던 내 오랜 친구 은영에게 건강은 ‘노력의 결실’이자 ‘자부심’이었다. 하지만 2025년 6월, 원인 모를 배아픔으로 입원하며 체중이 6~7㎏ 빠지면서 그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사람이 이유 없이 아플 수 있다는 것, 건강조차 결국 ‘운’의 영역이라는 것을.

“사람 마음이라는 게… 아프니까 결혼하고 싶더라. 수술을 앞두고 보호자가 필요한데, 나이 든 부모님을 오시게 하는 게 너무 죄송한 거야. ‘남편’ 전화번호를 적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동안 부모님이 결혼 잔소리를 하면 ‘내 인생 내가 알아서 살게’ 하며 날을 세웠는데, 처음으로 그 말이 정말 나를 위한 걱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확신이 무너진 자리에서 은영은 마음을 달래는 훈련을 시작했다. 잠시 쉬기로 결정하고 퇴사했다. 그리고 오래도록 꿈꿔온 요가 지도자 자격증을 따기 위해 타이 꼬팡안으로 떠났다. 눈을 뜨면 요가를 하고 명상하며, 전세계에서 온 낯선 이들과 아이처럼 천진하게 어울리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곳에는 매주 한 번, 수련생들이 둘러앉아 자신의 상태를 이야기 나누는 ‘서클 샬라’ 시간이 있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지목해 질문을 건네고, 답을 들은 뒤 다시 다음 사람에게 질문을 넘기는 방식이었다. 질문은 단 하나였다. “하우 아 유?”(How are you·어떻게 지내?)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던 무미건조한 대답, “아임 파인, 생큐”(I’m fine, thank you·응 괜찮아, 고마워)는 그곳에서 통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네 영혼이 어떤지 진심으로 묻고, 너 또한 가면을 벗고 진심으로 답해야 했다. 질문이 돌아가던 중, 선생님이 은영을 지목하며 다정하게 물었다.

“은영, 하우 아 유?”

그 짧은 문장이 은영의 마음에 닿는 순간, 참아왔던 눈물이 터져나왔다. 기쁨과 슬픔, 해방감이 뒤섞인 눈물이었다.

은영은 이제 보이지 않는 것들에도 마음을 열기로 했다. 얼마 전 봉은사에서 5천원을 주고 산 ‘건강’이라고 적힌 작은 부적도 그 증표 중 하나다.

“그걸 산다고 건강해지는 건 아닌데, 그냥 갖고 싶더라. 노력하면 얻을 수 있는 것들도 있지만, 건강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 예전엔 사람들이 왜 사주팔자를 믿고 종교에 기대는지 이해가 안 됐거든. 근데 이제는 알 것 같아. 아무리 애써도 닿지 않는 영역이 있을 때, 그렇게라도 마음을 기대야 버틸 수 있다는 걸.”

수술을 잘 마치고 회복한 은영은 다시 일을 찾았다. 간호사 면허가 있지만 병원 일을 피해왔던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집 근처 요양원을 선택했다. 환자로 지내며 의료진의 말 한마디가 가진 힘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병원에 있어보니 ‘밥 맛있게 드세요’ ‘수술 잘 받고 오세요’ 같은 평범한 말들이 두려움 가득한 나에겐 너무 고마운 거야. 그러면서 돌아보게 됐어. 나는 그럴 때 얼마만큼 친절했지? 짜증부터 내진 않았나? 불교에 내가 한 만큼 돌려받는다는 ‘카르마’(업보)라는 말이 있잖아. 나도 그냥 선함을 베풀고 싶어졌어. 내 말 한마디가 따뜻함으로 다가간다면 그건 정말 보람된 일이라는 생각이 이제야 들더라. 20대 때 나이팅게일 선서 할 때는 아무 생각 없었는데.”

2026년 1월부터 은영은 요양원으로 출근한다. 완벽하진 않더라도, 예전과는 다른 마음으로. 은영이 뿌릴 선한 카르마가 그의 2026년을 더 환하게 비춰주길 바랄 뿐이다.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궁금한 건 당신’ 저자

 

*남플리, 남들의 플레이리스트: 김수진 컬처디렉터와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가 ‘지인’에게 유튜브 영상을 추천받아, 독자에게 다시 권하는 칼럼입니다. 격주 연재.

정은영 제공

정은영 제공


정은영(@eunyonita)의 플레이리스트

 

①나우니스(NOWNESS)

삶을 더 잘 살아가기 위해서 달린다는 Shimei. 젊음은 신체의 기능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라고 말한다. 좋아하는 달리기를 매일 하면서 ‘내일은 뭐 할까?’라는 단순하고도 행복한 고민을 하며 움직이고 싶은 대로 움직이는 그의 일상이 내가 꿈꾸는 삶과 많이 닮아 있다.

 

②파타고니아 코리아

각자 달리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다양하지만 달리는 동안은 모두가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행복하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로렌 정의 달리는 이유를 보며 나 또한 왜 달리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③포울 브래커(Poul Bracker)

클라이밍 사고 이후 프리다이빙을 통해 시련을 극복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내면을 수련하는 이야기. 인생에서 시련은 피할 수 없지만 그것을 대처하는 강인한 마음은 훈련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

한겨레 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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