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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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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으로 적어냈지만 우리 아빠의 직업은…” 뮤지션 에이트레인의 가족, 치유 그리고 음악

9년차 뮤지션 에이트레인(A.TRAIN)의 플레이리스트
등록 2025-10-02 20:52 수정 2025-10-11 02:52
에이트레인 3집 앨범 재킷. 에이트레인 제공

에이트레인 3집 앨범 재킷. 에이트레인 제공


 

“뒤에서부터 걷어간다면 나의 가난을 들킬까. 회사원으로 적어냈지만 우리 아빠의 직업은 택시드라이버.”(에이트레인 ‘가정통신문’ 중에서)

서울 홍익대 앞 작은 라이브 무대. 첫 곡을 마친 뮤지션이 관객에게 말을 건넨다. “제가 어느덧 데뷔 9년을 맞이했습니다. 처음엔 상도 받았으니 금방 유명해질 줄 알았죠.” 다음 곡 ‘식물’을 소개하며 말을 이었다. “성공하지 못한 뮤지션이라는 좌절에서 치유를 얻은 건 가족이었어요.”

치유의 근원인 가족 이야기를 담은 2집 앨범 ‘사적인 분홍’(Private Pink)으로 한국대중음악상을 받은 에이트레인(A.Train, 본명 신지환). 3집 앨범 ‘포비돈 오렌지’(Povidon Orange)에서는 사회문제와 개인 간 연대라는 더 넓은 세계로 시선을 확장하고 있다.

 

—지극히 사적인 가족 이야기를 음악에 담은 이유는 뭔가요?

“‘가정통신문’은 제가 어릴 때 느낀 부끄러운 감정이에요. 아버지 직업이 가난의 상징처럼 느껴졌거든요. 예술가는 절대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어려운 형편에도 부모의 지원 덕분에 ‘좋은’ 대학 입학과 대기업 입사에 성공했다. “드디어 아빠의 가난으로부터 벗어난다 생각했죠. 1년 일해보니 회사 생활의 끝이 보였어요. 때마침 소속사도 얻고, ‘쇼미더머니’ 콘서트 오프닝 무대에도 서고 음악에 발 뻗을 곳이 보였죠.” 전업 뮤지션이 될 결심으로 퇴사했지만 성공은 쉽게 따라오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1인분도 못하니 무력감에 침대에 종일 누워 있던 때가 있었어요. 그때 가족이 ‘음악은 네가 한 선택이고, 우리가 함께 짊어질 것이다. 쓰레기 같은 거 먹지 말고 음식만큼은 좋은 것을 먹어라'라고 하셨죠.” 그는 그때부터 다른 사람의 곡을 기다리지 않고, 직접 음악을 공부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로 음악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사적인 우리 가족의 이야기가 보편적 공감을 끌어냈다고 생각해요. 베트남 호조(HOZO) 페스티벌에서 1만 명 앞에서 공연했을 때도 관객이 한국어로 공감과 지지의 메시지를 주더라고요.”

인간 신지환이 남기고 싶은 유산이 있다면?

“‘마음을 불태워라. 이를 악물고 앞으로 나아가라.'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대사인데, 저에게 이 말은 부모님 삶을 떠올리게 해요. 원하는 것을 다 못 누려도, 처절하게 소임을 다하는 삶. 이따금 음악을 그만두고 싶을 때, 아직 음악으로 소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멈출 수 없었어요. 그러다 교육방송(EBS) ‘스페이스 공감’ 무대에서 부모님을 객석에 모시고 ‘가정통신문’의 마지막 가사 ‘당신의 아들로 살 수 있어서 영광이었어요. 아빠'로 마무리하며 무대를 가족에게 바쳤어요. 나의 모든 것을 쏟아내고 한동안은 예술가의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했어요. 이제는 고개를 들어 시선을 바깥으로 향하게 되더라고요. 3집 앨범을 통해서는 사회문제와 개인 간 연대에 대해 말하며 계속 소임을 지키고 싶어져요.”

—3집 앨범에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학교에서 뛰어놀다 넘어져 양호실에 가면 항상 ‘빨간약'을 발라주잖아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주황색에 가까운데, 그 약이 포비돈(Povidone)이에요. 지금 세상은 디스토피아 같아요. 여러 선택지가 있을 거예요. ‘이러면 안 돼’ 라는 태도 혹은 ‘망했다고? 막 살아야겠다’는 선택도 있고요. 그래도 우리가 ‘처절하게' 뭐라도 해보자, 상처를 방치하지 말고 오렌지색 약을 치덕치덕 바르고서라도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고 전하고 싶어요.”

 

김수진 컬처디렉터

 

에이트레인(@a.train.tosugarhill)의 플레이리스트 

 

*남플리, 남들의 플레이리스트: 김수진 컬처디렉터와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가 ‘지인’에게 유튜브 영상을 추천받아, 독자에게 다시 권하는 칼럼입니다. 격주 연재.

 

❶ A.TRAIN-SELL FISH

어슴푸레하게 흥얼거림이 흘러나왔을 때, 시간이 꽤 지나서도 잊지 못해 그 흥얼거림에 노랫말을 붙였을 때, 동료들이 이 노래의 완성을 위해 기꺼이 헌신해줬을 때, 노래를 녹음하며 씩씩한 울음이 터져나왔을 때, 나의 처절한 음악 항해가 비디오에 아름답게 담겼을 때, 이 모든 순간 나는 언젠가 이 노래로 유명해질 것이라 확신했다.

 

❷ Bon Iver-Perth

존경하는 본 이베어의 고 히스 레저 추모곡. 생전 히스 레저가 가진 영화에 대한 열망과 에너지 넘치는 태도를 치하하는 듯하며, 내 음악에 대한 열망 또한 치하받는 듯하다. 무엇보다 음악 수준이 너무 높아서 평생 나는 오르지 못할 계단으로 보이기에 음악을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이 노래를 들으며 마음을 다잡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이 수준이 되지 않는 한 음악을 그만둘 자격이 없다.

 

❸ Half Moon Run-Warmest regards

죽음을 통해 삶의 소중함을 바라보는 고약한 습관이 있다. 아직은 살아 계신 부모님을 생각할 때도 이 방식이 통한다. 이렇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욱 애틋하게 마음에 간직하면 애정이 어쩔 수 없이 배어나온다. 표현하지 않는다고 사랑이 폄훼되는 것은 아니지만 오해할 수는 있으니까 최대한 어루만지는 방향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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