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양해승씨가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파미르 고원 일대에서 가장 높은 산인 레닌피크(7134m)를 등정하며 찍은 사진. 양해승 제공
제주도에선 사흘 만에 운전면허를 딸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반신반의하며 학원에 등록했다. 기능시험에 합격해 겨우 차를 움직일 수 있게 됐지만, 도로주행 수업에서 해변가 6차선 도로에 나가 운전대를 잡으려니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무엇보다 옆에 앉은 강사님이 걱정됐다. “제가 실수해서 선생님 죽으면 어떡해요?” “그래서 강사 중에 젊은 사람이 잘 없어요.” 강사는 웃으며 말했다. “내 목숨도 하나니까, 믿고 해봐요.”
20년 넘게 초보 운전자를 가르쳐온 그는, 두려움을 없애려 하기보다 그 안으로 들어가보라고 말했다. 가장 무서운 순간은 언제나 시작 직전이고, 막상 해보면 “별거 아니네” 싶은 순간이 온다는 것이다. 고산 등반이 취미라 히말라야에도 여러 번 다녀왔다는 그는 산을 예로 들었다. “무섭지 않은 것도 무서울 수 있고, 무서운 것도 무섭지 않을 수 있어요. 즐거움 속에 무서움이 있고, 무서움 속에도 즐거움이 있으니까요. 결국 산이 무서운 게 아니라, 내 안의 공포와 싸우는 거더라고요.”
도로주행 코스를 몇 바퀴 돌고 나서야 긴장이 풀려 스몰토크를 할 여유가 생겼다. 산에도 가시냐고, 힘들게 올라가면 다시 내려와야 하는데 뭐가 그리 재밌냐고 묻자, 갔다가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오는 게 재미란다. 자연을 즐기되 그 상태 그대로 두고 오는 것. 도시의 삶이란 늘 무언가를 남기고 증명하고 기록하는 쪽이라면, 산은 나를 지우고 비워내고 그저 다녀가는 공간이었다.
“자연은 일단 말이 없잖아요. 바람 소리, 새소리, 물소리뿐인 그곳에 들어가면 비로소 내 모습이 보여요. 사회에서는 내가 아닌 모습으로 살아갈 때도 많고 늘 무언가를 해야 하잖아요. 직장을 가져야 하고, 에어컨을 틀면 전기세도 내야 하고, 혼자 있어도 카톡이 울리고. 산에선 그런 게 없어요.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아요. 그게 좋아요.”

양해승씨가 중앙아시아 타지키스탄 레닌피크에 오르기 전 베이스캠프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빙하지대에서 장비를 시험하고 있다. 양해승 제공
그는 자신이 이겨내지 못했던 감정, 말하지 못했던 순간을 산속에서 떠올리고 무언가를 다짐하며 돌아온다고 했다. 다짐하지 않았을 때보다 다짐하고 돌아온 삶이 늘 조금은 나았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그는 산을 놓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번 가을엔 네팔 안나푸르나 서킷 완주도 계획 중이다. 거기서 얻은 이야기를 수강생에게 들려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운전 강사를 시작할 때는 내 지식이 부족함을 느꼈어요. 학원 수강생들의 학력이 높았거든요. 수능을 막 끝낸 학생, 취업을 앞둔 청년…. 인생의 어떤 전환점에서 면허를 따러 오니까 고졸인 나도 뭔가 공부해야겠더라고요, 이들과 소통하려면. 그래서 등반을 더 열심히 한 것 같아요. 두려움을 극복하고 도전하다보면 나도 더 나눌 수 있는 게 많아지지 않을까? 운전 강사가 운전만 가르치는 거 아니냐 싶지만, 하나의 삶 속에서 서로의 인생이 얽히는 순간이기도 하니까. 면허를 취득하러 오는 단순한 과정 속에 못했던 걸 해내는 기쁨, 단계별로 시험을 통과해가는 긴장과 환희가 있죠. 처음 핸들을 잡고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순간에 소리 지르는 사람, 격려해주는 사람 등 다양한 강사가 있을 텐데 나 양해승은 어떤 강사가 될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다 세월이 흘러 여기까지 왔네요.”
그 덕분에 나는 무사히 합격했고, 제주도에서 받은 면허증을 들고 서울로 돌아왔다. 그리고 마음속엔, 운전보다 더 오래 남을 가르침이 생겼다.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궁금한 건 당신’ 저자
①한국방송(KBS) ‘영상앨범 산: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
https://www.youtube.com/watch?v=RH4I5wTWGlA&feature=youtu.be
대자연은 우리가 얼마나 위대하고도 나약한 존재인지 깨닫게 해줍니다. 그 경이로움을 눈으로 보고 마음에 담으면 일상에서도 평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평소 떠나고 싶었던 곳이나 마음의 쉼이 필요할 때, 이 영상은 당신을 파타고니아로 이끌어줄 것입니다.
②‘산악인 김홍빈의 산 너머 삶’
열 손가락 없이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산악인 김홍빈 대장의 이야기.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할 때 단 1%의 가능성에 기대 끝까지 나아간 사람. 그의 마지막 등반과 그 너머의 삶을 따라가다보면 ‘나에게도 넘지 못할 산이 있나’ 되묻게 됩니다.
③한국인을 읽는다
기후위기, 코로나19 이후 사회 변화, 경제 불확실성. 이 시대를 살아가며 생기는 질문에 석학들이 답해주는 책. 삶이 갈피를 잡지 못한다고 느낄 때 ‘어떻게 살 것인가?’ 영감을 주는 책입니다.

*남플리, 남들의 플레이리스트: 김수진 컬처디렉터와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가 ‘지인’에게 유튜브 영상을 추천받아, 독자에게 다시 권하는 칼럼입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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