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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배터리가 ‘펑’…집에 불이 났을 때 대처법

피해자에 공감하되 객관성을 지켜야 하는 손해사정사, 김창남의 플레이리스트
등록 2025-12-18 22:35 수정 2025-12-25 07:50
손해사정사 김창남의 추천 플레이리스트 ‘오지브로’의 한 장면. 오지브로 유튜브 갈무리

손해사정사 김창남의 추천 플레이리스트 ‘오지브로’의 한 장면. 오지브로 유튜브 갈무리


며칠 전 집에 불이 났다. 새로 산 보조배터리를 컴퓨터 유에스비(USB) 단자에 꽂아 충전해뒀는데, 새벽에 ‘펑’ 소리를 내더니 그 자리에서 불이 붙었다. 잠결에 프라이팬에 물을 부어 급히 껐지만 화재경보기는 멈추지 않았고, 결국 119를 불렀다. 다행히 벽이 조금 그을리고 컴퓨터와 스탠딩 데스크가 망가지는 선에서 상황은 마무리됐다.

보조배터리 회사는 즉각 보상을 약속했다. 사람 마음이란 게 보상해준다니 최대한 ‘받아내고’ 싶어졌고, 동시에 어디까지를 피해로 적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물건 구매 시기와 가격을 적으라는데 기억은 흐릿했고, 세입자라는 위치 때문에 집주인까지 개입하면서 상황은 더 복잡해졌다. ‘피해자’인데, 어느새 중간에서 죄인처럼 느껴졌다. 그때 회사에서 연결해준 손해사정사 김창남을 알게 됐다.

그와 연락이 닿자 상황은 한결 명료해졌다. 망가진 물건은 새 제품 가격이 아니라 사용 연한을 반영해 감가상각을 적용한다는 점, 며칠에 걸쳐 직접 한 청소는 보상 대상이 아니지만 청소 인력을 쓴 비용은 검토할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기준이 생기자 무엇을 요구하고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가 보였고, 그제야 마음도 가라앉았다. 돌이켜보면 사고 이후 문제였던 건 불보다 기준 없이 판단해야 했던 시간인 것 같았다.

김창남은 손해사정사를 “객관적 기준에 따라 손해액의 적정성을 평가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교통사고가 났을 때 손해액의 적정성을 평가하는 일부터, 사회적 재난처럼 보상 기준이 모호하고 영역이 방대한 순간에도 손해사정사가 투입된다. 그는 섬진강댐 방류로 수천 명이 피해를 봤을 때도 지방자치단체의 의뢰를 받아 손해액을 평가했다.

그럼 변호사처럼 의뢰한 쪽에 유리하게 돈을 늘리거나 줄이는 방식으로 손해를 사정하는지 묻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윤리에 어긋난다고 했다. 손해사정사는 피해자의 마음에 공감하되, 그 감정에 기대어 손해를 계산하지 않는다. 대신 왜 이만큼인지 납득하도록 설명하는 게 핵심 역할이다.

이 일을 하며 가장 기억에 남은 순간은 언제일까. 그는 잠시 말을 고르다가 말했다. “사실은요, 빨리 잊고 싶어요.” 사건을 오래 붙잡고 있으면 힘들다. 교통사고로 사람이 죽거나 사지마비에 이르는 경우도 적잖이 봐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은 신체 피해 사건보다는 재물 피해를 주로 맡는다. ‘사람의 손해’에는 감정이 섞이지만, 재물은 상대적으로 냉정하게 평가할 수 있어서다.

인터뷰 말미에 김창남은 당부했다. 모든 사고가 보험으로 해결되지는 않지만 최소한의 대비는 필요하다고. 자동차보험은 기본이고, 가해자가 됐을 때를 대비한 운전자보험, 일상생활배상책임보험, 갑작스러운 질병에 대비한 실손의료보험 등이 그 ‘대비’가 될 수 있단다. 공공보험이 충분치 않은 사회에서 사고 이후 책임을 모두 개인이 떠안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봐왔다고 한다.

‘작은 불’이었지만 잠시 일상을 잃었다. 그러나 불을 꺼주러 와준 소방관부터 보험회사, 보조배터리 회사, 판매처, 불탄 조립 컴퓨터의 부품 가격을 하나하나 정리해준 컴퓨터가게 사장님, 그을린 벽을 다시 원상복구해준 인테리어 관계자까지,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무탈하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손과 운이 겹쳐야 가능한 상태인지 알게 됐다. 모두의 무탈을 빈다.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궁금한 건 당신’ 저자

 

*남플리, 남들의 플레이리스트: 김수진 컬처디렉터와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가 ‘지인’에게 유튜브 영상을 추천받아, 독자에게 다시 권하는 칼럼입니다. 격주 연재.

 

손해사정사 김창남.

손해사정사 김창남.


손해사정사 김창남의 플레이리스트

 

①모칠레로

요트 한 척으로 세계를 항해하는 한국 청년의 도전과 낭만이 공존하는 항해 기록.

 

②오지브로

홀로 산 정상에 올라 비화식으로 하룻밤을 보내는, 모험심 가득한 청년의 오지 캠핑기.

 

③유슬비

튀르키예 여행 중 만난 한국 청년과 튀르키예 여성이 결혼해 일상을 전하는 채널. 한국과 튀르키예, 두 나라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소개하고, 튀르키예 처가를 깜짝 방문하는 장면까지 담은 사랑스러운 커플 이야기. 다시 20~30대로 돌아간다면 후회 없이 세계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 설령 은퇴 후라도 이런 도전적인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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