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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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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 감정 정치의 탄생

한국 사회의 자살에 대한 성찰적 연구 <숭배 애도 적대>
등록 2021-12-26 13:49 수정 2021-12-27 03:25

모든 죽음은 충격적이다.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단절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자살은 더 충격적이다. 돌발적 사태일 뿐 아니라 죽음의 이유와 그것이 남긴 메시지가 산 자들을 오래 붙들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자살에는 사회적 타살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한국의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사회안전망 붕괴로 인한 죽음뿐 아니라 정치적 함의가 짙은 자살이 도드라진다. 이때 자살은 소멸인 동시에 발화이다. 극단적 방식으로 말을 하고(發話) 불꽃을 댕기는(發火) 목적의식적 행위다.

 자살은 철학, 심리학, 사회학, 의과학, 보건학 등 여러 분야에서 연구와 분석 대상이다. 문화비평가 천정환 교수의 신간 <숭배 애도 적대>(서해문집)는 한국 사회의 자살에 대한 성찰적 연구로 주목된다. <자살론-고통과 해석 사이에서>(2013)에 이어 8년 만이다. 전작이 근대화 이행기에 나타난 사회경제적 병리 현상을 살폈다면, 이번 연구는 1970년대 이후 민주화운동과 신자유주의 고착화 과정에서 두드러진 “어둠의 심연”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그 정치적 맥락에 귀 기울인 “애도문”이다.

‘자살과 한국의 죽음정치에 대한 7편의 하드보일드 에세이’(부제)가 시기와 주제에 따라 세 부분으로 짜였다. 1부는 ‘열사의 정치학’의 기원부터 소멸까지를 시대 상황으로 살핀다. 2부는 노무현·노회찬·박원순 등 정치인과 공직자들의 죽음을 둘러싼 ‘애도의 정치, 증오의 정치’를 다룬다. 3부 ‘잔혹한 사회, 취약한 인간’에선 2000년대 이후 부쩍 늘어난 연예인 자살 사건을 통해 한국 사회의 ‘잔인성 체제’를 고발한다.

지은이는 먼저 전태일의 분신(1970년)부터 1990년대까지 죽음으로 내몰리며 항거한 노동자들을 다시 호명한다. 어떤 죽음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극대화하며 엄청난 트라우마와 부채감을 남긴다. ‘1980년 5월 광주’는 충분히 애도되기는커녕 오래도록 억압받고 모욕당했다. “광주의 희생은 1980년대 운동의 가장 원초적인 윤리적·정서적 동기를 제공”했다.

1980~90년대 숱한 청춘들의 ‘정치적 순교’는 일종의 “애도와 계승의 제의”였다. 이를테면 “그들의 타나토스(죽음-본능)는 너무 뜨거운 에로스(삶-본능)가 순간 바뀐 것”이다. 2000년대 ‘민주정부’ 들어서도 노동자는 계속 죽었지만 그 죽음은 점점 뜨거움에서 고독함으로 추방되고 있다. 물리적 폭압에 세계화의 덫과 법과 제도의 폭력도 더해졌다.

가장 충격적인 정치적 자살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었다. 극단적 감정 정치의 분열도 이때 싹텄다. “간교하고 힘센 지배동맹은 증오·공포·조롱을 정치적, 법적으로 조직”했고, 다른 쪽에선 “죄의식, 우상화, ‘애도를 이용하기’”가 팽배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퇴행이 불러온 ‘촛불 혁명’은 증오정치와 진영논리의 악무한을 끊을 절호의 기회였지만 “문재인 정부의 사람들은 그럴 능력이 없었다”.

연예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는 사건이 잇따른 것은 “이 사회의 잔인함과 문화의 얄팍함을 보여주는 어둠”이다. 정치권력과 언론권력이 무명의 연예인을 능욕하고 대중이 관음증으로 소비한 ‘장자연 사건’은 “갈취·착취라는 표현도 부족할” 극단적 사례다.

지은이는 극단적 선택을 ‘자기책임주의’로 돌리는 위험성과 기만을 지적하며, “고통이 생겨나 퍼지는 곳을 직시하고 낮지만 강한 목소리로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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