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에게 쉽게 말하지 않는 비밀을 말하자면, 나는 모서리를 들여다보는 걸 좋아한다. 내가 생각하는 모서리는 물론 수학적으로 말하면 ‘꼭짓점’이다. 수학 용어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런 호칭이 불편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꼭짓점을 모서리라고 부르는 것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영향이 크다. 직사각형 식탁의 꼭짓점에 앉으면 할머니 할아버지는 모서리에 앉지 말라고 하신다. ‘복 나간다’고.
모서리에 배를 부딪히면 아프기도 하고, 아마 식탁에서 사람들이 앉는 곳은 대부분 번듯한 직선으로 된 자리일 것이다. 어엿한 자리가 아닌 곳에 앉지 말라고, 그런 곳에 앉기를 자처하면 네가 그래도 괜찮은 사람인 줄 알고 널 그렇게 대할 수도 있다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설명해주신 적이 있다.
어릴 때부터 사물을 관찰해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모서리부터 눈길이 갔다. 다른 친구들이 쉽게 눈길을 주지 않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관심 없는 곳, 중심이 아닌 것들을 오랫동안 쳐다봤더니, 점점 선과 선이 한 점으로 모이는 모서리가 좋아졌다. 모서리에서는 나에게 그저 하나의 대상이었던 것들, 종종 ‘세상’이라는 한 단어로 뭉뚱그려지곤 하는 것들이 사실은 저마다 테두리가 있고 곡선과 직선을 가졌다는 사실이 뚜렷해진다. 당장 내 앞의 벽과 책장과 그 책장에 꽂힌 노트의 스프링이, 노트의 내용과 책장을 만든 나무 종류와 상관없이 위에서 아래로 내지른 선들로 돼 있다는 것, 노트의 스프링이 만드는 그림자가 요철처럼 울퉁불퉁하다는 것. 모서리를 보다보면 이런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가끔 혼자서 ‘모서리 보기 놀이’를 한다. 모서리는 반드시 어느 곳에나 있기 때문에 아주 쉽고 효율적인 놀이다. 놀이하는 법은 어디든 모서리에 시선을 집중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사물의 모서리에 눈을 확 집중하는 식이다. 그러다보면 깨진 담벼락에 묻은 노란색 페인트 얼룩, 아주 작은 곳에서 아주 낮게 피어오른 민들레처럼 나에게 새로운 생각의 주춧돌이 되는 것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그냥 재미있기도 하다. 쉽게 차들이 들락거리는 지하주차장 입구를 둘러싼 담벼락에, 누가 분홍색 이불을 가져다가 널어놓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지 않은가? 그런 걸 발견하면 기분이 좋다. 모서리에서는 예상치 못한 일이 남몰래 일어나기 마련이다. 애니메이션 <마루 밑 아리에티>에서 소인(小人) 아리에티 일가족이 살림을 차리는 것과 같은 신비로운 일도 모서리에서 처음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제는 간만에 밖으로 나가서 ‘모서리 보기 놀이’를 했다. 그 놀이를 하려고 나간 건 아니었다. 혼자 나간 것도 아니었다. 언니와 집 앞을 걷고 있었다. 우리 집 앞에는 나무데크로 된 짧은 길이 있는데 그 주변에 벤치도 있고 나무도 있어서 그쪽으로 걷는 걸 좋아한다. 그 길을 지나는 건 아주 잠깐이지만 내가 걸을 때마다 나무가 쿵쿵 울리는 소리가 좋다. 오랜만에 그 길을 걷는데 모서리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모서리마다 낙엽이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가을이 되면 모서리는 노랗고 붉은 낙엽에 폭신하게 덮이곤 한다.
계절의 변화가 가장 먼저 드러나지는 않지만, 계절의 색깔이 가장 많이 묻어 있고 오랫동안 남아 있는 곳도 단연코 모서리다. 봄에는 꽃잎이 쌓이고 곤충들이 기어나오는 곳, 여름에는 풀이 무성히 자라 초록색으로 덮이는 곳, 겨울에는 눈을 모아놓아서 봄 직전까지 눈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어제의 모서리를 보면서 내가 가을의 한가운데에 있음을 알았다. 가을에만 볼 수 있는 선들이 모서리로 모였기 때문이다.
신채윤 고2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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