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TBC 누리집 갈무리
태초에, 아니 2000년대에는 조인성이 있었다. SBS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 망나니 같은 재벌 2세 캐릭터를 맡아, 결핍 있는 남자주인공의 등장을 알렸다. 사랑받고 싶지만 사랑받지 못하고, 사랑을 갈구하다 오히려 사랑으로부터 멀어지는 캐릭터의 등장은 가히 파격적이었다. 조인성은 SBS 드라마 <봄날>에서도 유사한 캐릭터를 연기하며 ‘결핍 남주’ 이미지를 굳혀갔다.
몇 년이 지나 곧 현빈의 시대가 왔다. MBC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현빈은 레스토랑 사장 현진헌으로 분했다. 극 중에서 현진헌은 자신의 실수로 난 자동차 사고로 형을 떠나보낸 뒤 정신적 고통에 시달린다. 겉보기에는 싹수없고 무례하지만, 사실은 아픈 사연을 가진 ‘외강내유형 남주’의 등장이었다. 그는 SBS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는 폐소공포증을 앓는 남자주인공을 연기하며 조인성과 같은 결의 캐릭터 라인을 구축했다. 이후 드라마 속 남자주인공은 점점 진화를 거듭했다. K-드라마가 한 장르에 갇히지 않는 복합장르형으로 발전하면서, 남자주인공의 직업과 스펙 역시 업그레이드됐다. 첩보원, 재벌 2세에 이어 ‘외계인’까지 등장했으니 나올 건 다 나왔다 싶었다. 드라마 <알고있지만,>이 나오기 전까지는.
이 드라마의 남자주인공 박재언(송강 분)은 ‘여우’다. 모두에게 친절하고 모두에게 열려 있다. 썸은 타고 싶지만 연애는 하기 싫어한다. 어정쩡한 태도를 여자주인공 유나비(한소희 분)가 지적하자 그 맑은 눈망울을 순진한 척 빛내며 당당하게 말한다. “사귀는 거 아니면 친하게 지내지도 못하는 거야?” 모름지기 로맨틱코미디 장르의 핵심은 ‘일편단심 남주’에 있다. 외계인이든 첩보원이든 재벌이든 간에 여자주인공에게 한번 매료된 다음부터는 그 마음을 잃지 않고 한 사람만을 바라보는 게 이 장르의 규칙이다. <알고있지만,>의 등장으로, 절대 불변할 것 같았던 룰마저 깨졌다. 바야흐로 ‘폴리아모리형 남주’의 등장이다. 유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엔 같은 과 동성 친구들 사이 묘한 ‘썸’의 기류도 미묘하게 담겼다. 적당히 위험한 걸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매력적인 이 드라마, 앞으로 어디로 튈지 모르겠다.
천다민 유튜브 <채널수북> 운영자
관심 분야 문화, 영화, 부귀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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