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프트 론칭’(연애를 은근히 티내기) 중 손만 보이기(hands only) 예시를 보여주는 이미지. 틱톡 화면 갈무리
‘남자친구가 있다는 게 이제 부끄러운 일일까?’
2025년 10월 미국의 패션라이프지 보그(Vouge)에 올라온 샹테 조지프의 칼럼 제목이다. “누군가 소셜미디어에서 ‘내 남자친구’라고 한마디라도 하면 바로 차단당하죠”로 시작하는 이 글은, “싱글이든 기혼이든 여성 모두에게서, 관계의 종류와 상관없이 남성과 함께 있는 것에 죄책감이 든다는 압도적인 인식”이 퍼져 있다고 말한다. 이 글은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커뮤니티에서도 공감을 얻었다.
조지프는 이성애자 여성들이 커플임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대신 남자친구와 같이 운전대에 손을 얹거나 저녁 식사 때 잔을 부딪치는 소리를 들려주거나 애인의 뒷모습을 살짝 보여주는 등 미묘한 신호를 보내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모습을 가리켜 ‘소프트 론칭’(Soft Launching)이란 용어도 등장했다. 소프트 론칭은 원래 제품이나 서비스를 공식 출시하기 전 한정된 대상과 지역에 소규모로 선보인다는 뜻이지만, 이제는 소셜미디어에서 애인의 존재를 은근슬쩍 티 내는 행위를 말하게 됐다. 조지프는 이를 두고 파트너가 있다는 사회적 이점을 누리면서도 남자친구에게 너무 집착하는 것처럼 보여 ‘문화적으로 실패자’가 되기 싫은 심리라고 지적했다.
조지프는 이 현상을 “오랫동안 우리가 ‘남자친구 나라’에 살았다는 느낌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한다. 전통적으로 여성이 남성을 만나고 그 관계를 유지하는 능력으로 사회적 지위를 규정했던 이성애 중심 문화에 대한 문제의식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의 누리꾼들도 이 칼럼을 두고 여러 해석을 내놓았다. 남자친구의 잘못된 과거나 유해한 행실이 폭로될 때 그런 남성을 분별하지 못한 여성의 안목, 그리고 그를 미화함으로써 나쁜 행실에 일조하게 되는 ‘남자 리스크’를 언급했다. 당장 남자친구에게 잘못이 없어도 그를 전시하는 행위 자체가 “봐, 나 안전한 남자 찾았어”라며 자신은 예외임을 과시하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어떤 기혼 여성은 남자친구가 창피하다면 남편은 더 심할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마치 스키니진이 금지된 것처럼 충격적이다.”
남자친구나 남편이 여성의 가치를 높이거나 여성의 매력을 확인해준다는 이성애 중심 문화가 약화되는 것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싱글처럼 보여야 한다는 새로운 압력이 등장했다는 점에서, 싱글이냐 커플이냐는 상태를 통해 여성의 매력을 규정하는 전제는 그대로다. 그래서 싱글이어도 매력적이지만 ‘자발적으로’ 연애하지 않는 것처럼 비쳐야 한다.
‘필연적 혼자의 시대’의 저자 김수영 교수는 “비혼 직장인의 커리어 중심적인 삶은 경쟁적인 노동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연적인 결과”라고 주장했다. 과거 농경사회에서 산업자본주의 사회로 변화할 때 가족경제 모델이 남성 생계 부양자 모델로 전환됐듯, 고용 불안이 보편화된 신자유주의 시대에 ‘혼자 사는 노동자’는 “노동시장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남자친구의 존재가 낡은 일이 된 건 누군가와 친밀해지고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상태가 취약한 일이 됐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이지 않으려면 연애하는 걸 티 내더라도 여성이 완전히 그 관계를 주도하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
이는 지난 칼럼에서 다룬 ‘중년 남미새’ 밈에 깔린 모성 혐오와도 연결된다. 자기 몸을 희생하고, 의존적인 상태가 되고, 누군가를 돌보고 헌신하는 일 자체에 대한 혐오다. 그 와중에 남들이 봐도 불편하지 않거나 장려받는 연애나 관계는 소수의 전유물이 되고 있다. 그 소수는 어떤 이들일까?
도우리 작가·‘우리는 중독을 사랑해’ 저자
*모두가 단일하게 매력적이기를 기대받고 또 기대하는 시대, 매력의 재발명을 고민하는 칼럼입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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