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유튜브 알고리즘 추천에 깐깐하게 구는 편이다. 알고리즘은 내가 어떤 콘텐츠에 잠시 호의를 비치면 드디어 인생 취향을 찾았다는 양 피드를 도배해버린다(얼마 전엔 날 매드몬스터에 미친 사람으로 크게 오해한 것 같다). 유튜브라는 넓디넓은 세계에서 한사코 벽을 쌓는 기분이다.
반면 사람이 하는 추천에는 관대하다. 섬에 툭 떨군 듯 맥락 없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지난해 본 영상 톱10에 드는 ‘편의점 알바하면 찾아오는 진상들이 한번에 다 온다면?’(사진)도 이종범 웹툰 작가의 추천이 없었다면 절대 가닿지 않았을 미지의 세계다.
이 영상은 인터넷방송계의 화석이라 불리는 게임 스트리머 우왁굳의 유튜브 채널 <우왁굳의 게임방송>에서 조회수가 가장 많다. 합동방송할 때 단골 출연하는 고멤(‘고정멤버’의 줄임말)들이 가상현실 게임 ‘VR챗’으로 만든 ‘아바타 상황극’이다. 45분 길이의 영상인데 무려 543만 뷰에 정주행만 n번째라는 간증이 댓글에 수두룩하다. 처음엔 제목만 보고 편의점 ‘진상’이 관전 포인트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이 ‘진상’들이 살인마로 돌변하는 ‘고시원 스릴러’를 위한 밑밥이었다! 웹툰 <타인은 지옥이다>를 패러디한 일명 ‘고멤은 지옥이다’(이하 ‘고멤 지옥’). 1인칭 게임 방식으로 바꾸고 스릴러에 개그 코드를 때려넣었다.이 영상이 레전드에 등극한 이유는 따로 있다. 시청자 참여를 넘어 유튜버와 시청자의 위치를 완전히 전복했다는 점이다. 캐릭터, 대사, 연출, 플롯, 배경(맵)을 모두 고멤이 준비하고 직접 출연한다. 고멤은 NPC(Non-Player Character·게임에서 플레이어가 직접 조종할 수 없는 캐릭터)이고, 우왁굳이 게임 플레이어인 셈이다. 고멤이 우왁굳과 사전에 어떤 정보도 공유하지 않고, 심지어 우왁굳이 웹툰을 본 적이 없어서 그의 살아 있는 리액션을 보자면 묘한 쾌감이 든다.
‘고멤 지옥’은 그런 작가가 스토리텔링 면에서 영감받은 영상이다. 기민한 웹툰 작가는 웹툰이 유튜브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변화를 그저 포맷의 차이라 여기지 않고 야무지게 영감받는다. 동시에 작가가 누차 강조해온 스토리 원칙인 ‘동경과 공감의 균형’이 유튜브 월드에서도 건재하다. 이 원칙에 따르면 수십 년 지기 소꿉친구가 알고 보니 숨겨진 능력자였다거나, 완벽한 선배가 술주정할 때 감정이입이 더 잘된다고 한다. ‘고멤 지옥’에서도 나와 비슷한 줄 알았던 고멤의 대활약에 동경을 느끼고, 동경하던 우왁굳이 시청자가 되자 친근함이 폭발하며 몰입도가 쭉 올라갔다. 동경과 공감의 균형을 맞추는 대상이 화면 밖으로까지 확장된 것이다.
당연하게도 변치 않는 것과 변하는 것은 늘 공존한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변치 않는 것에, 또 누군가는 변하는 것에만 관심을 준다. 휩쓸리지 않으면서 유연할 것. 기존 스토리텔링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 사례가 이종범 작가의 체계에 어떻게 자리잡을지 궁금하다.
김주은 유튜브코드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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