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바뀌는 것을 느끼면서 요 며칠은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처음 병원에 다니고, 진단받고, 병원에 입원한 것이 지난해 딱 이맘때였다. 그늘 밖으로 나가면 따갑게 내리쬐는 햇살이, 피부에 와닿는 차가운 공기가 그때를 상기시킨다. 2019년 9월27일에 진단받았으니까, 다카야스동맥염(Takayasu’s arteritis)과 기묘한 동거를 시작한 지 정확히 1년이 되었다.
진단받은 다음 날, 어지러워서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응급실을 통해 입원했고, 혈압이 너무 높고 과호흡이 와서 준중환자실에 사흘 정도 들어가 있었다. 입원한 지 꼭 8일 만에 퇴원했다. 퇴원하고 나흘 정도 지나 학교에 갔다. 목요일 첫 교시, 도덕. 주제는 공교롭게도 ‘고통’이었다. 수업에서 기억이 남는 내용은 불교에서 ‘고통은 욕심에서 나온다’고 가르쳤다는 거였다. 병으로 잃은 것에 대해 우울해하지 않는 법, 다 잊고 웃기만 하는 법, 고통을 없앨 방법은 모르겠다. 아프지 않고 싶다는 욕심을 버리면 될까? 그건 나에게 가능한 영역이 아 니다.
1년간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은 ‘괜찮아?’였다. 나는 괜찮지 않다. 병에 걸리기 전 나의 세상은 아름다웠다. 힘든 일도 있었지만 대체로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안일했지만, 내가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럴 수 있는 것은, 스스로 보편적이라고 믿을 수 있는 것은 특권이었다. 사회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병에 걸리고 나서 정상이 아닌 곳으로 ‘내려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드라마 <스카이 캐슬>에 나오는 명대사처럼, 지구는 둥글지 피라미드 모양이 아니니까. 다만 나의 세계가 얼마나 좁고 단편적이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내가 외면한다고, ‘나는 그런 거 몰라’ 하고 지나친다고 사라지는 게 아닌 삶이 분명히 있다. 내가 생각한 ‘보편성’이란 것은, ‘누구나 다 그럴 거야’라는 생각은 삶의 얼마나 작은 부분만을 담고 있었는지.
병을 진단받고 나 자신과 약속한 것이 있었다. 절대 억울해하지 않기. 왜 아파야 하지? 왜 불편해야 하지? 왜 전에 누리던 걸 누릴 수 없게 됐지? 이런 의문을 갖지 않는 것. 내가 누리던 모든 것이 당연하지 않은 삶도 많고, 이렇게 질문해봤자 달라지는 것도 없었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앞으로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의젓하게 행동해야겠다, 단단하게 버텨야겠다’ 다짐은 할 수 있어도 내가 어떤 마음인지 들여다볼 엄두는 나지 않았다. 의연한 척 참아내는 마음 안에 초라하고 이기적인 마음이 있어, 스스로에게 실망하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1년간 많이 아팠고 많이 울었고 가끔은 더 이상 헤어날 수 없을 만큼 마음이 난자당하는 듯했다. 병 때문에 놓친 것들은 선명하고 가까웠다. 돌고 돌아서, 무너진 마음을 몇 번이고 다시 쌓은 뒤에야 조금 솔직해질 수 있었다. 나는 아프기 싫다. 병에 걸리고 싶지 않다. 진단받기 전으로 돌아가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 해서 병을 막고 싶다. 악몽을 꾼 것처럼 말끔하게 잊어버리고 싶다. 나는 아픈 동안 많은 것을 잃었다.
1년 동안 엄마는 입버릇처럼 누구에게나 고통은 0 아니면 100이라고 말했다. 누구든 자기 손톱 밑의 가시가 가장 아픈 법이라고. 가시가 있거나 없거나 둘 중 하나인데, 나는 아직 가시 없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결심했다. 남의 가시를 멋대로 판단하는 사람은 되지 말자고. 누구나 다 그럴 거라는 협소한 잣대 하나를 멋대로 세워놓고 거기에 맞춰 세상을 바라보지는 말자고. 병은 나에게서 많은 것을 앗아갔고, 나는 병에 걸린 것이 싫다. 내 아픔이 내 세상에서는 가장 큰 아픔이다. 하지만 그건 모두 다 같다는 것을 안다. 모두 자기의 아픔을 가장 아파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다. 황정은 작가의 소설 제목(<계속해보겠습니다>)처럼, 사람들과 함께 ‘계속해보겠습니다’ 하고 말하는 것.
신채윤 고1 학생
*‘노랑클로버’는 희귀병 ‘다카야스동맥염’을 앓고 있는 학생의 투병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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